우리가 살면서 주위를 둘러보면 참 소중한 인연들이 많이 있다. 가족은 물론이려니와 매일처럼 얼굴을 맞대고 사는 이웃들, 친구들과 학교 동창생들, 교회 멤버들과 아침마다 함께 운동을 하는 사람들까지 일일이 셀수가 없을만큼 많다. ‘한번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우리 모두 고국을 떠나서 이 거대한 미국에서도 캘리포니아, 또 샌프란시스코의 교외인 베이 아리아에 함께 살고 있다는 것만도 대단한 인연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행복도에 대한 연령별 조사를 했는데 한국의 노인들은 나이가 들어 갈수록 그 행복도가 떨어진다고 했다. 몸은 늙어 약해지고 거기다 노후 보장이 된 사람들은 약 30퍼센트밖에 안된다고 하니 가히 짐작할만 하다. 늙은 것도 서러운데 돈도 없고 자식들마저 몇년을 소식도 모르고 지낸다니 그 아픔이나 외로움은 상상할만하다.
그런것에 비하면 미국에 살고 있는 노인들은 행복한 편이다. 아무리 가진 것이 없어도 정부에서 최소한의 생활 보장은 해주기 때문에 죽을때까지 인간의 존엄성은 지키고 살 수가 있다. 작은 아파트와 온갖 건강 보험은 물론이려니와 아프면 도우미까지 쓸 수가 있다. 아무리 미국이 지금 불경기라해도 온 세계를 다 다녀봐도 이 미국 같은 나라는 없다. 동네 슈퍼마켓만 가봐도 산떠미처럼 쌓인 식품들과 넘쳐나는 물건들, 큰 감자 한포대기에 달랑 돈 삼불이면 살수 있는 나라는 아마 이 지구상에 별로 없을 것이다.
내가 한국에서 몇년간 살때 바로 이맘때쯤인 이른봄에 감자 서너개를 산적이 있는데 한개에 거의 천원을 주고 사오면서 너무 비싸 기절할 뻔했던 적이 있다. 요즘 한국뉴스를 보면서 상추며 오이, 애호박 등이 가격이 상상을 초월할만치 비싸 도대체 한국 사람들은 무얼 먹고 어떻게 살까를 생각해 보았다.
며칠전 이웃 친구들과 커피를 마시면서 얘기 끝에 현재의 우리 팔자가 참 상팔자다 하면서, 우리처럼 아침 일찍 운동을 함께 하며 건강도 지키고 수다도 떨면서 여생을 별 걱정없이 지낼수 있으니 이것보다 무얼 더 바라겠냐며 웃은 적이 있다.
우리들이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적당히 먹을꺼리가 있고, 할일이 있으며 이젠 자식들 걱정도 별로 없다보니 매일처럼 챙기는 것은 건강밖에 없다. 건강한 두다리로 걷고, 아직은 내 손으로 밥해 먹고 살수 있으며 누구 신세를 지지 않아도 가고 싶은 곳을 운전해서 갈 수 있으니 이 정도면 살만하지 않은가!
거기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주위의 친구들이 가장 소중한 인연임을 깨닫는다. 이웃 사촌이라고, 멀리 살고 있는 사람들은 비록 가족이라도 필요할때 도움을 줄수가 없다. 얼마전 잠깐의 실수로 팔을 다친 분이 있는데 비록 그 분은 팔은 좀 아프겠지만 대신 그 분의 집이 요즘은 우리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우리들은 그 집을 참새들의 방아간이라고 이름 지었다. 아침 운동이 끝나면 모두들 그 집으로 몰려가 커피도 마시고 간식도 나누면서 참새들처럼 서로의 얘기를 하느라 어느땐 듣는 사람은 없고 서로 입이 아프게 짹짹댄다.
그러나 별 영양가 없는 시시한 이야기라도 우리들은 즐겁고 신이난다. 왜냐하면 우리가 나누는 것은 서로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떡 한조각 빵 한쪽이라도 나누려는 마음은 행복을 가져온다. 한두시간 떠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늘 즐겁다. 파아란 하늘과 산들거리는 봄바람과 사방에 핀 꽃들은 마음을 풍성하게 해주고 나는 참 부자로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한다.
지난날을 생각해 보면 참으로 소중한 인연들을 많이 만났다. 그 속엔 긴 만남도 있고 짦은 만남도 있다. 어느땐 짧은 만남이라도 더 아쉬운 사람도 있다. 오래 알았다고 해서 더 소중하다고 할수는 없다. 왜냐하면 짧았지만 서로의 코드가 맞았다고 해야할지 서로의 마음과 영혼을 나누어 가졌던 사람들은 오랫동안 잊을 수가 없다.
내가 한국에 귀국해서 몇년간 살때 남편과 나는 영어를 가르쳤기 때문에 어린 아이들과 그들의 엄마들을 만날 기회가 많이 있었다. 그중에 우리 내외를 마치 그들의 멘토인양 좋아하고 따르는 동생 같은 딸 같은 젊은 여자들이 있었다.
아직도 남편과 나는 가끔 그들을 이야기하고 그들과 보낸 시간들을 그리워 한다. 마지막 이별의 시간이 닥쳐 왔을때 그들은 정말 슬퍼했다. 그중에는 공항까지 배웅하며 울고 돌아간 이들도 있었다.
우리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인간관계는 우선 진실함과 신뢰 속에 이루어 진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고 따뜻한 정을 보여줄때 싫다는 사람들은 없다. 진실함과 따뜻한 배려는 늘 서로의 마음을 열게 하고 사랑을 싹트게 한다. 우리 세살배기 손자도 내가 가면 미루타라는 남미계의 네니를 떠밀고 내게 달려와 안긴다. 아직은 지 할미가 더 미덥고 좋다는 표시일 것이다. 왜냐하면 철없는 꼬마라도 벌써 눈치가 빤해서 누가 저를 더 사랑하고 진실한가를 알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이웃이 늙어가며 더 소중한 것은 이젠 우리 모두 죽을때까지 이곳 라스모어에서 살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젠 다시 이사갈 힘도 열정도 남아 있지 않지만 비록 작은 오두막 집이라도 이곳은 천국이기 때문이다. 좋은 공기와 좋은 물, 좋은 이웃들, 완벽하게 마련된 모든 설비들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을 비울줄 알기 때문이다.
마음을 비우면 그때부터 평안이 찾아오고 그 평안은 소박한 행복을 가져온다. 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물질이 아니라 사람들과의 소중한 인연임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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