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드라마 ‘학교 2013’을 참 재미있게 봤다. 서울 강북의 한 고등학교 2학년 2반의 학생들과 두 담임 선생님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리얼하고도 감동적인 에피소드를 보며 웃기도 하고, 눈물도 흘렸다.
KBS 방송국 홈페이지에는 이 드라마의 기획의도가 이렇게 올라와 있었다. “학교는 불행하다. 학교는 이제 괴물이라 불린다. 그런데 학교는 정말 괴물일까?” 섬뜩했다. 학교와 괴물을 결부시키다니.
다행히 드라마에서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보여주면서 한 줄기 희망을 준다. 희망이 전혀 없어 보이는 문제 청소년 오정호 학생의 입을 통해서 나는 들었다. 담임선생님의 진심어린 사랑과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끝내 졸업을 못하고 퇴학당하게 되는 불량청소년 오정호가 담임선생님한테 퉁명하게 던지던 마지막 한 마디가 내게 큰 희망으로 남았다.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 나쁘게는 안 살게요.”
퇴학을 당하지만 앞으로 바르게 살도록 노력하겠다는 각오를 그렇게 전한다. 나쁘게 사는 게 어떤 것인지 안다는 말이 아닌가. 그 학생에게 학교가 없었다면, 진심으로 자신을 걱정해주는 선생님이 없었다면, 그런 각오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렇게 학교가 한 아이에게라도 바르게 살겠다는 마음을 심어준다면 학교는 괴물이 아니다. 입시지옥의 현장은 될지언정.
이 드라마를 보면서 문득 몇 년 전에 뉴스를 통해 들었던 라스베가스의 한 학교를 생각하게 되었고 그 학교의 근황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그 학교 사이트에 들어가 보고, 뉴스를 검색했더니 드디어 고등학교 졸업생을 배출했다고 한다. 게다가 36명의 1회 졸업생 전원이 대학에 진학했다고 한다. 라스베가스의 가장 열악한 학군에 있는 그 학교에서 작은 기적을 만들어낸 것이다.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 안드레 애거시가 2001년에 설립한 이 공립 대안학교는 처음 유치원에서 3학년까지의 과정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곧 8학년까지 확장했고, 다시 몇 년 후 고등학교 과정까지 갖추게 된 학교이다. 그리고 드디어 1회 고등학교 졸업생을 배출한 것이다.
애거시는 “교육만큼 아이들의 성장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없다”는 믿음으로 테니스계에서 은퇴한 후 자신의 ‘안드레 애거시 자선재단’을 통해 이 학교를 세웠다고 하는데, 애거시 재단이 150만 달러, 주택도시 개발국이 145만 달러, 그리고 주정부가 60만 달러를 투자했다고 한다.
전교생의 95%가 흑인인 이 학교는 특별한 시험 없이 매년 2월에 컴퓨터 추첨으로 입학허가를 받는데, 일반 공립학교에 비해 수업시간이 매일 2시간 길고 일 년에 10일이 더 많다고 하고. 학급 정원은 25명 이하이고, 우수 교사를 채용하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학생, 학부모, 교사들은 모두 계약서를 써야하는데 학생의 경우 “아침 7시25분까지 등교 하겠습니다” “토요일에도 나오겠습니다” “필요하다면 여름 보충수업도 받겠습니다” “매일 밤 숙제를 하겠습니다” “이해가 안 되면 손을 들고 질문을 하겠습니다” “옷차림을 단정히 하겠습니다” “모든 사람을 존경하겠습니다” 등이 포함되어있다.
또한 부모들이 지켜야하는 준수사항은 학교에서 일 년에 12시간의 자원봉사를 하고, 매일 밤 자녀의 숙제를 검사하고, 적어도 하루에 20분은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며, 아이의 행실은 전적으로 부모책임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 등이라고 한다.
이렇게 교사, 학부모, 지역사회가 한 마음이 되어 추진한 이 교육사업은 좋은 결과를 가져와 학교가 문을 열 당시 그 학군에는 교육부가 정한 평균학력에 미치는 학생이 단 한 명도 없었는데, 불과 2년 안에 학생들 모두가 평균학력 이상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언젠가 애거시에게 인생에서 후회되는 일이 있었느냐고 질문하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이 자선단체를 좀 더 일찍 시작하지 않은 것이 후회스럽다.”
애거시는 테니스 선수로서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고, 은퇴 후 교육에 공헌한 업적으로 타임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오르기도 했지만 나는 무엇보다도 이 학교를 보며 그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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