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대통령의 연두교서가 있었던 그 다음 다음 날 워싱턴 포스트에는 재미있는 사진 하나가 실렸다. 상하 양원 합동회의장의 맨 앞줄에서 오바마의 연설을 듣던 중 조는 정도가 아니라 머리를 푹 숙이고 잠들어 있는 것 같은 모습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원 판사 사진이었다. 바로 그 옆에 앉았던 스티븐 브라이어 대법원 판사도 눈을 감은 모습이었다.
긴즈버그는 주로 민주당 의원들의 25번이 되는 기립 박수 등의 시끌거리는 소리에도 깨는 기색이 없었다는 게 알 카멘 칼럼니스트의 지적이다. 긴즈버그 자신도 연두교서 때 잘 조는 자신의 습관을 자인하면서 지금은 퇴임한 데이비드 수터가 동료였을 때 그는 긴즈버그의 옆구리를 찌르는 역을 했었노라고 농담할 정도다.
사실 대통령의 ‘연방의 상태(State of Union)’에 대한 보고서란 연설이 20세기에 들어와서는 대통령이 속한 정당의 단결 대회쯤으로 타락했다고 보는 비평자들의 시각으로서는 연방 대법원 판사들이나 합참의장 등 군 수뇌부의 참석이 비헌법적으로 비칠 수 있을 것이다.
그 비평자들 중 하나가 조지 윌이란 보수적 칼럼니스트다. 자신의 해박한 지식에다가 보조원들의 연구를 첨가하여 보통사람들이 미처 짐작하지 못한 것을 깊이 있게 조명하는 것으로 유명한 윌의 연두교서에 대한 칼럼 역시 연두교서의 역사를 배우게 한다.
윌의 연두교서 전통 특히 프랭클린 루즈벨트 이후의 그것은 민주주의의 영웅숭배 즉 대통령 숭배 또는 대통령 신격화나 다름이 없다고 단정한다. 한걸음 더 나가 대통령이 이 정책 저 정책을 나열하면 다 이루어지는 것으로 믿고 따르는 소아병적 믿음의 발로란 주장이다.
사실 연방 헌법에는 대통령이 의회에 ‘때때로’ 연방의 상태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그가 필요하고 마땅하다고 판단하는 조처들을 의원들이 고려하도록 추천할 수 있다고만 나와 있다. ‘때때로’가 1년에 한 번씩일 필요도 없고 또 대통령이 직접 의회로 와서 연설하도록 되어있는 게 아니라는 점을 그는 지적한다.
미합중국 초기 정치 전통이 자리잡기 시작했을 때 조지 워싱턴과 제 2대 대통령 존 아담스는 직접 의회에 가서 보고하고 추천하는 ‘실수’를 했다고 윌은 주장한다. 그러나 3대 대통령인 토마스 제퍼슨은 자신의 목소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은데다가 대통령이 의회에 가서 강연을 한다는 게 최고위층이 아래 사람들에게 교훈을 하는 군주정치의 유산쯤으로 여겼기 때문에 자기 생각이 담긴 서면 보고서를 제출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같은 전통은 100년 이상 지속되어왔었지만 우드로 윌슨이 1913년에 의회에 참석하여 연두 연설하기 시작함으로써 서면 보고가 없어졌다. 윌슨이 뇌졸중 때문에 1919년과 1920년에는 연두 연설을 못했지만 현재처럼 연초에 대통령이 국회의사당에서 연설하는 전통을 재확립시킨 사람은 1932년에 당선되어 세 번 더 당선되었다가 사망한 프랭클린 루즈벨트다.
그리고 역시 배우 출신답게 매스 미디어 이용에 특출났던 로날드 레이건 대통령이 방청석에 사람들의 칭찬 대상이 되는 인물들을 초대하는 전통을 추가시켰다. 예를 들면 레이건의 첫 연두교서 직전에 내셔널 공항을 떠나 플로리다로 향하던 비행기가 포토맥강에 추락하여 대부분의 승객들은 희생되었지만 몇 사람들은 구조된 사건이 있었다.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던 생존자들을 구하기 위해 그 추운 물속으로 뛰어들어갔던 사람이 영웅 대접을 받았음은 물론이지만 레이건이 연두교서 연설중 그를 언급하여 박수갈채를 받게 한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이 제안할 정책이나 법안을 예시하는 사람들도 퍼스트 레이디 부근에 자리 잡는다. 금년도에는 작년 12월 코네티컷 뉴타운 초등학교에서 희생된 어린아이들의 부모들도 방청석에 초대되어 총기 규제법안의 필요성을 침묵 가운데 역설하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이번 오바마의 연두교서 발표 중 민주당 의원들은 여러 차례의 기립 박수들로 대통령의 실적 보고내지 장래에 대한 청사진을 지지했지만 공화당 의원들은 앉아있거나 박수를 안치는 경우가 많았다. 부시 대통령 시절 민주당 의원들의 반응과 흡사한 것은 물론이다. 양당이 예산 절감과 증세에 관한 팽팽한 대결을 타파하지 못한 결과로 3월1일부터 연방 예산액 중 850억불이 자동적으로 깎이는 시퀘스터란 묘한 단어가 현실화되었다.
윌의 주장대로 연두교서 전통이 대통령의 신격화에 필수적일지는 몰라도 시퀘스터는 대통령의 권한 행사와 효과에 있어서 신의 경지는커녕 인간 제도의 취약점과 한계를 여지없이 드러내는 한 예일 것이다. 긴즈버그나 다른 사람들이 연구교서 연설을 듣는 가운데 졸림을 못 참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듯하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