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공산제국이 붕괴된 후 동구의 위성국가들이 모두 자유를 선택한 데도 불구하고 북한이 명맥을 유지해온 데에는 특히 김일성 왕조의 3대 세습이 가능했던 배후에는 중국의 물심양면의 지지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중국 정부의 만류에도 말을 안 듣고 김정은이 제3차 핵실험을 감행한 이후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서의 대북 제재강화에는 일단 반대를 하면서도 중국의 대북한 자세가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다.
2월28일자로 영국의 경제지 파이낸셜 타임스지의 기고문이 주요한 단서인 것 같다. 우선 “중국은 제멋대로인 북한을 버려야 마땅하다”(Beijing should abandon wayward North Korea)라는 제목이 자극적이다. 그 기고문 필자의 신원은 더욱 더 충격을 준다. 중국 공산당에는 간부들을 양성하거나 재교육시키는 중앙당교가 있고 당교의 기관지인 학습시보가 있는바 바로 그 학습시보의 부편집인인 덩 위원이 쓴 글이기 때문이다. 당교의 위상은 현 중국 공산당 총서기인 시진핑이 바로 얼마 전까지도 그 당교의 교장이었다는 사실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니까 덩 위원의 글은 중국 최고위층과의 교감을 거친 후 쓰인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또 그 기고문이 중국 내에서 발표되지 않고 파이낸셜 타임스에 게재된 것도 중국 권력층의 심기 변화에 대한 시사일 수 있다.
좌우간 덩 부편집인은 중·북 관계를 재평가해야 되는 이유를 다섯 가지 들었다. 필자가 파이낸셜 타임스에 실린 글을 직접 읽어보고 싶었지만 돈이 들어 한국 신문들에 보도된 내용을 옮겨 본다. “첫째 이데올로기(사상)에 근거한 양국 관계는 위험하다”면서 사상만 따지자면 “현재 중국과 서구와의 관계는 존재하지 못한다. 비록 중국과 북한이 사회주의 국가이지만 양국의 격차는 중국과 서구의 격차보다 크다”고 지적한다.
그 기고문 집필자는 “두 번째로 북한을 중국의 지정학적 안보 동맹으로 간주하는 전략은 시대착오적이다”라 주장하면서 “미국이 북한의 핵개발로 국가안보의 위협을 느껴 북한을 선제 공격 하더라도 중국은 북한을 동맹이라는 이유로 도와서는 안 된다”라는 중대 선언을 포함시켰다.
세 번째 이유로는 북한이 결코 개혁과 개방을 하지 않을 것임을 들었다. 그는 “2011년 국제사회는 김정은이 개혁을 추진하리라는 기대를 품었다. 비록 김정은 자신은 낮은 수위의 개혁을 밀어붙일지라도 북한의 지배층이 이를 거부한다. 북한이 개혁되면 북한 정권이 전복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왜 중국이 조만간 무너질 정권과 유대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덩 부편집인은 중국이 북한을 혈맹관계로 대우했지만 북한은 그렇지 않다는 점을 대북한 정책의 재평가 필요성의 넷째 이유로 지적한다. 1960년대 초에 북한은 김일성을 신격화하는 과정에서 6.25 전쟁에서 수십만의 중공군들이 희생되었다는 사실을 삭제하고 김일성의 영웅성 하나로만 북한이 미 제국주의에 대해 승리한 것으로 부각시켰다는 것이다. 그 집필자의 다섯 째 이유는 더욱 놀라운 주장이다. “북한이 일단 핵무기를 가지면 중국에 사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2009년 평양에 갔을 때 김정일은 “미국이 북한을 지속적으로 돕는다면 북한은 중국에 대항하는 강력한 요새가 될 수 있다는 제안을 했다”는 (도청으로나 간파했을)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핵무장한 북한이 중국에서 자신들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할 때 중국을 엉망으로 만들 수 있다는 우려를 중국 고위층이 하고 있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덩 학습시보 부편집인은 “이런 논거를 고려하면 중국은 북한을 버려야 한다”면서 또 깜짝 놀랄만한 발언을 첨부했다. 북한을 포기하는 최상의 방법은 북한과 남한의 통일을 능동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는 “한반도 통일은 중국을 압박하는 한미일의 전략적 동맹을 느슨하게 하면서 대만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부언함으로써 중국 장래와 연결시켰지만 한국과 북한에게 획기적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중국이 한반도의 통일을 반대하거나 방해하는 정책을 쓴다는 것이 정설처럼 여겨져 왔다. 따라서 파이낸셜 타임스지의 기고문이 시진핑의 새 발상을 담고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은 대단한 관심거리다. 한반도 통일의 중대 변수가 중국인데 중국이 능동적으로 움직인다면 멀지 않은 장래에 이루어질 일이 아닐는지…
한국과 북한에서 전문가들은 파이낸셜 타임스의 기고문을 분석 평가하느라고 분주할 만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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