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심리학회가 며칠 전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노인들의 경우 비관론자가 더 건강하게 오래 산다는 내용이다. 긍정의 힘, 믿는 만큼 이루어진다, 적극적 사고방식 … 낙관주의가 인생의 정답이라는 주장에 너무 오래 젖어온 우리에게는 좀 당황스런 결과이다.
이번 연구는 독일의 한 대학에서 4만 명(18~96세)을 대상으로 1993년부터 2003년까지 10년 간 진행된 방대한 프로젝트이다. 연구진은 실험 대상자들을 직접 만나 현재의 삶이 얼마나 만족스러운 지, 5년 후의 삶에 대해 어떤 기대를 가지고 있는 지를 알아보았다. 그리고는 5년 후 2차면담에서 이들이 앞서 했던 예상과 현실을 비교했다.
그 결과 노년층(65~96세)의 경우 앞날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적인 노인들은 장애나 사망 위험이 오히려 높고, 비관적인 노인들이 더 건강하고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앞날에 대해 비관적이면 그만큼 건강을 관리하고 안전대책을 마련하며 조심성 있게 살아가기 때문”일 것으로 연구진은 분석했다.
삶에 대한 긍정적 태도가 심신을 건강하게 하면서 장수를 이끈다는 이전의 연구결과들과는 거리가 있고, 낙관주의에 대한 기존의 통념을 흔드는 내용이다.
미국문화에서 적극적 사고 혹은 낙관주의가 대세를 이룬 것은 1950년대 즈음부터였다. 이전까지 미국에서는 노동과 검약을 강조하는 청교도적 전통이 강했다. 그 고지식한 전통을 흔들어 놓은 것이 노만 빈센트 필 목사였다. 그의 저서 ‘적극적 사고의 힘’이 인기를 얻으면서 긍정과 낙관은 기독교 신앙과 합쳐져 거의 ‘복음’ 수준으로 미국인들을 사로잡았다. 이런 흐름은 로버트 슐러, 릭 워렌 등 초대형 교회 목사들을 중심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적극적 사고는 한마디로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믿음이다. 사업을 하든 대학 진학을 하든 하다못해 다이어트를 하든 긍정적 이미지를 머릿속에 그리며 ‘나는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하면 실현이 된다는 것이다. 자기 최면일 수도 있고 세뇌일 수도 있다.
그 도도한 낙관의 물결이 근년 저항을 받기 시작했다. 지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등 금융위기가 지나친 낙관주의의 산물일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오면서 긍정의 힘을 재평가하는 연구들이 나오고 있다. 현실은 무시한 채 적극적 사고를 너무 남발한 게 문제라는 지적이다. 그와 함께 비관주의 혹은 부정의 힘이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다.
낙관주의와 비관주의는 어떻게 다른가. 많은 사람들이 많은 이야기를 했다. “비관주의자는 기회가 올 때마다 어려움을 보고, 낙관주의자는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기회를 본다” - 윈스턴 처칠의 말이다. 도넛을 앞에 놓고 낙관주의자는 도넛을 보고, 비관주의자는 가운데 뚫린 구멍을 본다는 말도 있다.
똑같은 상황에서 밝은 면을 보느냐 어두운 면을 보느냐의 차이인데, 이런 차이를 만드는 것은 우선 타고난 성향이다. 매사를 밝게 보는 낙천적인 사람이 있고 항상 뭔가 잘 안될 것을 생각하는 비관적인 사람이 있다.
아울러 나이가 요인이 된다. 앞의 독일 대학 연구에서 5년 후에 대해 젊은 층은 대단히 낙관적 전망을 한 반면 중년층은 거의 정확한 예상을 했고 나이가 듦에 따라 비관적 전망이 높아졌다. 인생을 살아보면 바라는 대로 되는 일보다 안 되는 일이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과 관련, 마크 트웨인이 재치 있는 말을 했다. “48살 이전에 비관주의자이면 뭔가 너무 많이 아는 것이고, 더 나이 들어서도 낙관주의자라면 도무지 뭘 모르는 것이다.”
낙관주의와 비관주의의 근원은 삶의 불확실성이다. 삶이 수학문제처럼 공식대로 풀려나가면 좋을 텐데 인생은 예측 불허의 커브볼이다. 예상치도 못한 돌발 사태들이 툭툭 터지니 이에 대한 대처방식으로 낙관주의를 택하기도 하고 비관주의를 택하기도 한다.
낙관주의자는 ‘하면 된다’는 긍정의 힘에 집중해 발전과 성취를 추구하고, 비관주의자는 ‘잘못 되면’이라는 부정적 사고에 근거해 문제를 바로 잡으며 안전을 추구한다. 낙관주의자는 ‘비행기’를 만들고 비관주의자는 ‘낙하산’을 만드는 것이다. 이 사회에 둘 다 필요하다.
인생의 목표는 행복이다. 행복을 좌우하는 것은 삶의 조건이 아니라 그에 대한 태도이다. 어떤 상황이든 따뜻하게 바라보는 긍정의 시각이 있으면 대개는 견딜 만하다. 아울러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는 부정의 시각이 균형을 이루면 행복은 보장된다.
새해 들어 벌써 두달이 지났다. 그 사이에 벌써 예상치 못한 일들이 주변 사람들에게 일어나곤 했다. 인생의 항해는 가도 가도 쉬워지지가 않는다. 낙관의 돛을 높이 올리고 비관의 닻을 갖춘 채 묵묵히 항해를 계속할 뿐이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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