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뉴욕시 공립초등학교의 한 한국계 교사가 4학년 학생들에게 내어 준 숙제가 논란이 되었다. 문제가 된 숙제는 노예가 채찍으로 맞는 것과 배에서 반란을 일으켰다가 죽임을 당하는 것을 거론하며 덧셈과 곱셈으로 채찍 맞은 수와 살아 남은 노예수를 계산하도록 했는데 4학년 학생들, 특히 흑인 학생들에게 줄 수 있는 나쁜 영향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뉴욕시 공립학교 당국은 이 교사와 더불어 같은 숙제물을 내주려고 했던 또 다른 교사 둘 다 징계를 하겠다고 한다. 본인들의 진정한 의도와는 상관 없이 인종적으로 민감한 부분에 사려깊지 못한게 되어버린 것이다.
한인 교사의 나이가 이제 30대 초인데 모쪼록 이번 일로 좌절하지 말고 뼈아픈 경험이지만 부디 꼭 딛고 일어나 훌륭한 교육자로 거듭나 주기를 바란다.
나도 오래 전에 내 의도와 상관 없이 무지(無知)로 인해 실수한 적이 있다. 내가 버지니아 주 훼어팩스 카운티의 교육위원에 처음으로 당선되어서이다. 교육위원회 의장을 선출하게 되었다.
의장은 12명의 교육위원들 중 1년 임기로 자체적으로 선출한다. 당시 교육위원회는 민주당계가 8명으로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의장은 민주당계에서 나오게 되었다. 그런데 백인 여자와 흑인 남자 이렇게 두 명의 민주당계 위원들이 의장직에 도전했다.
그 중 백인 후보와는 내가 교육위원으로 선출되기 바로 전 6개월간 임명직 교육위원으로 있으면서 같이 일해 보았다. 그러나 흑인 후보는 여러 해 교육위원 경험은 있으나 내가 같이 일해 본 적이 없고 개인적으로 잘 아는 사이도 아니었다.
나는 당연히 내가 같이 일해 본 경험이 있는 후보를 지지하기로 했다. 그러한 결정은 후보들의 인종적 배경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그저 좀 더 잘 아는 후보가 편했던 것이었다.
결국 백인 후보가 의장으로 당선된 후 흑인 후보가 나에게 자신을 지지해 주지 않은 이유를 물어 왔다.
그런데 그 때 나의 대답이 인종적으로 민감한 부분을 건드릴 줄은 몰랐다. 의장으로 선출된 후보와 같이 일해 보아 그의 지도력과 일하는 스타일을 잘 아는 반면 당신과는 그런 경험이 없기에 앞으로 의장이 되려면 당신의 유능함을 “증명”해 주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 흑인 위원은 정색을 하며 흑인들은 자격을 갖추어도 인종적 편견으로 인해 항상 “증명”을 해 왔어야만 했다고 하는게 아닌가. 자신이 과거에 여러해 동안 교육위원으로 봉직했었는데 흑인이기에 또 다시 증명을 해보여야만 주위에서 인정해 준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뜻이 아니고 단지 개인적으로 같이 일해 본 경험이 없어 이제 같이 일하면서 당신의 능력을 볼 기회가 있어야 한다는 뜻에 불과하다고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역사적으로 흑인들이 미국 사회에서 인정을 받기위해 겪었던 여러가지 어려움들에 대해 아는 것이 부족했던 나의 의도적이지 않았던 어휘 선정이 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할 줄 몰랐다. 그 후 그 교육위원이 나의 진심을 알아주고 그 때의 대화가 가져다 주었던 어색함을 극복하는데 2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훼어팩스 카운티 공립학교는 매년 2월을 ‘흑인 역사의 달’로 지정해 미국 사회에서의 흑인들의 공헌과 그들의 아팠던 역사와 문화를 배우는 기회를 학생들에게 많이 제공하도록 노력한다. 그래서 지난 주 토요일에는 흑인들의 전통을 기리는 컨퍼런스가 열리기도 했다.
그 날 컨퍼런스 프로그램 마지막으로 “과연 정의는 색맹인가”를 주제로 패널토론이 있기도 했다. 인구에 비해 훨씬 더 높은 비율의 흑인과 히스패닉들이 범죄자가 되는 현실이 과연 공정하다고 볼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경찰 간부, 법원 행정 간부, 그리고 변호사로 구성된 패널의 결론은 구조적 차원에서 의도적 차별은 더 이상 없지만 구조의 룰이 적용되며 나타나는 현실과 개인적 차원에서는 아직도 차별이 존재한다였다.
이 날 토론을 지켜보며 바로 전 날 훼어팩스 카운티 공립학교에서 36년간 가르치다 은퇴했다는 흑인 교육자와 나눈 대화가 생각났다.
이 분은 흑인 교사들과 백인 교사들 사이에 흑인 학생들을 대하는 것에 일반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체rP적 차별은 없지만 은연중의 행위나 겉으로 emfj나지 않는 마음 속에서의 편견이 흑인 학생들의 학업 성취와 행동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했다. 흑인 부모들도 다른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자식들에게 거는 기대치는 마찬가지라고 하며 교사들도 그래야 할 것이라 했다.
학생의 피부색이 교사의 학생을 향한 학업성취 기대치에 차이를 주는 현실이 흑인 학생들로 하여금 갖고 있는 잠재력을 제대로 발휘지 못하게 한다고 했다. 내가 이 흑인 교육자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 하지 않더라도 14년간 교육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이런 생각을 하는 흑인들을 많이 보아왔기에 인종적으로 민감한 부분에 좀 더 조심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서로 다른 배경을 갖고 태어난다. 그러나 태생적 차이에 상관 없이 우리 모두 행복을 추구하고, 또한 그러한 태생적 차이로 인해 마음에 상처나 불이익을 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자칫 실수로 필요 없이 다른 사람 마음에 아픔을 안겨 주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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