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버지니아주 하원의장의 의사진행 결정이 큰 뉴스가 되었다. 주상원에서 결의해 하원으로 다시 보내온 주상원선거구 조정 법안을 의장직권으로 상정치 않겠다고 한 것이다. 상원안이 하원에서도 그대로 가결되어 법으로 확정되면 오랫동안 버지니아주 상원의 판도가 자신의 당에게 유리하도록 바뀔 수 있었다. 그러기에 자신의 소속당 당원들로부터는 배반자라는 비난을, 그리고 상대 당으로부터는 당리당략을 떠난 위대한 결단이었다는 찬사를 받게 되었다. 하원의장은 그러한 어려운 정치적 결단을 내리면서 그 근거를 회의진행규칙에 두었다. 상원 안이 원래의 하원 안에 직접적 연관성(germaneness)이 없으며 이는 회의 진행규칙 위반이라고 지적한 것이다.
내가 1995년 버지니아주 훼어팩스 카운티의 교육위원이 된 후 우선적으로 배워야 했던 것이 회의 진행규칙이었다. 모든 중요한 사안들이 회의를 통해 결정되는데 교육위원회 회의에서 사용되는 규칙에 대해 아는 게 없었던 것이다. 물론 나는 한국에서 자라면서 학생 때 나름대로 많은 회의를 주재해 보았다. 그러나 미국에서의 정식회의 진행규칙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었다. 기초적인 용어마저 생소했다.
그래서 라버츠 규칙(Robert’s Rules)이라고 불리는 규칙을 배우게 되었다. 이 규칙은 헨리 마틴 라버트(Henry Martyn Robert)라는 사람이 연구해 만들었다고 한다. 라버트는 육군대령이었던 1863년 우연히 어느 교회의 회의를 주재하게 되었다. 그런데 회의 진행규칙을 너무 몰라 회의를 주재하기에 상당히 미흡함을 느꼈다. 그래서 회의 진행규칙을 배워야 되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그 후 여러 단체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는데 단체마다 다른 규칙들을 적용하고 적절치 못한 규칙들로 인해 단체의 활동이 오히려 지장을 받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모든 단체들이 따를 수 있는 합리적인 규칙의 필요를 느꼈다. 그 결과 1876년에 제정된 이 규칙은 그 동안 여러차례 수정을 거쳐 2011년에 11판이 나오기까지 이르렀다.
이 규칙 가운데 한인 단체들도 배웠으면 좋겠다고 느낀 부분이 여럿 있다. 그 중 몇 가지만 소개한다. 우선 안건에 대한 동의, 개의 절차이다. 예를 들어, 미니밴 한 대를 3만불 미만으로 구입하자는 안을 A가 냈다고 하자. 이에 B는 미니밴 보다는 트럭이 좋겠다고 한다. 그리고 C는 둘 다 사지 말자는 의견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가 라버츠 규칙을 배우기 전에는 A안을 동의안, B안을 개의안, 그리고 C안을 재개의안으로 처리하고 모두 함께 표결에 부쳐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안건을 채택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할 때 세 안건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하기에 차선에 대한 의사 표시를 할 방법이 없다는 문제가 생긴다. 예를 들어 C안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지만 C안이 채택 안될 경우 A안보다는 B안이 낫다는 의사 표시를 표결시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라버츠 규칙은 차선에 대한 의사 표시를 표로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위의 상황을 라버츠 규칙을 적용해 회의를 진행한다면 이러하다. 미니밴 한 대를 3만달러 미만으로 구입하자는 A의 동의안이 제출된 후 B가 개의를 한다. 그 때 B의 개의 안은 이러할 것이다. “동의안에서 미니밴을 트럭으로 바꾸도록 개의한다.” C의 아무것도 사지 말자는 안은 라버츠 규칙 상 제출될 필요가 없다. 왜 그런지는 곧 이해가 될 것이다.
그 후 표결에 들어갈 때 일단 개의 안부터 한다. 즉, 회의 참석자 모두에게 우선 미니밴을 트럭으로 바꾸자는 안에 대해 과반수의 찬성이 있는지 보는 것이다. 즉, 회의 참석자들 가운데 미니밴과 트럭 중 어느 것을 선호하는지 파악한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최종안이 미니밴을 사자는 것인지 아니면 트럭을 사자는 것인지 결정된다. 그 다음에 이 최종안에 대해 표결한다. 이렇게 라버츠 규칙을 적용하면 사는 것에 반대하지만 굳이 미니밴과 트럭 사이에서 선택하라면 트럭을 선호한다는 의사 표시를 할 수 있다. 즉, B의 개의 안에 찬성하고 최종안에 반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 쉽게 배워 적용할 수 있는 규칙이 번안동의에 관한 것이다. 일단 결정이 된 사안을 재심하려면 동의안의 다수 편에 가담하였던 사람만이 번안동의를 제출할 수 있다. 그리고 일단 번안동의가 나오면 제청을 거쳐 이에 대해 토의를 한 후 이 동의안에 과반수 찬성이 있을 경우 재심을 한다. 여기서 일사부재리 원칙은 적용되지 않는다.
또한, 번안동의가 과반수로 통과되었다고 원래 결정된 사안이 자동적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다. 다시 이에 대한 토의를 거친 후 표결을 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언급할 규칙으로 토론종결 동의이다. 어떤 사안에 대해 토론이 너무 오래 지속되고 있다고 느낄 때 제출할 수 있는 동의안으로 제청이 있으면 참석자 3분의 2이상의 찬성으로 토론을 종결시킬 수 있다. 물론 3분의 2이상의 찬성이 없을 경우에는 토론이 계속될 수 있다.
거의 20년 가까이 공직생활을 하며 참석했던 많은 회의에서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라버츠 규칙을 보면서 한인사회 단체의 회의에서도 중요한 부분은 배워 적용시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처음에는 좀 번거롭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배워보면 합리적인 부분이 많아 단체 운영이나 회의 진행에 유익하다는 것을 쉽게 터득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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