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을 보면서 늘 푸짐하게 사는 채소 중의 하나가 파이다. 파를 좋아하는 남편이 늘 장을 보기 때문이다. 두 아이를 기르며 직장생활을 하던 결혼 초에 가사분담을 하면서 남편이 장보기를 맡았는데 지금까지 그렇게 하고 있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지 않는가.
그런데 지난 주 그로서리 봉지에는 파가 달랑 두 단 밖에 없었다. 파 값이 엄청 올랐더라고 했다. 열 단에 1달러이던 것이 두 단에 50센트더라고 했다. 경제동향에 늘 관심을 두고 분석하는 철두철미한 남편은 어떻게 한 주 사이에 물가가 250%가 오를 수 있느냐고 자못 흥분해했다. 많이 사올 때는 구박(?)덩이던 파가 이번 주에는 애지중지 사랑을 받았다. 나물 무치는데도, 국 끓이는데도 조금씩 아껴서 넣어야 했다.
주먹구구로 하는 내 경제관념은 남편과 조금 다르다. 내게 얼마나 행복을 가져다주는 가하는 것이 내게는 그 물건의 가치가 되는 것이다. 스타벅스의 카푸치노 값을 보자. 커피 한 잔에 5달러나 되지만 그 5달러가 내게 주는 행복은 친구들이 그 몇 배를 내고 하는 매니큐어 이상으로 크다. 그래서 내게는 스타벅스 커피가 조금도 비싸지 않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사 제품을 구상하고 가격을 매기는데 우선 염두에 둔 것이 그 제품이 고객에게 가져다 줄 행복이라고 했다. 과연, 한 손에 꼬옥 쥐어지고 연필처럼 가벼운 아이팟에 들어있는 1000곡도 넘는 노래가 내게 주는 행복은 아이팟 가격의 몇 백 배를 넘는다. 타주에 사는 돌잡이 손녀딸의 얼굴과 재롱을 어디에서나 볼 수 있게 해주는 미니 아이패드의 가치도 돈으로 환산할 수가 없다.
함민복 시인은 자신의 시집의 고료를 두고 그 가치를 이렇게 노래하기도 했다.
“시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듯한 밥이 되네/ 시집 한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긍정적인 밥’ 부분)
마크 트웨인의 클래식 ‘톰 소여의 모험’의 주인공 톰은 또 어떠했던가. 개구쟁이 톰은 어느 날 이모를 속이고 학교를 땡땡이 치고 게다가 친구와 싸워 옷이 엉망이 돼서 집에 온다. 이모는 벌로 톰에게 토요일에 집 울타리 페인트칠을 하게 한다. 울타리에 페인트를 칠하려면 하루가 꼬박 걸릴 것을 아는 톰은 한숨을 쉰다. 주머니에 들어있는 구슬, 딱지 등 자신의 재산으로 친구들을 꼬드겨 그 일을 시킬까, 하는 생각을 잠깐 하지만 그러기에는 턱도 없이 모자라는 자신의 재산을 생각하고 포기를 한다.
그러다가 기묘한 발상을 해낸다. 친구들이 토요일인데 놀지도 못하고 집안일을 해야 하는 톰을 안 되하면서 말을 걸어도 톰은 대꾸도 안 하고 페인트칠하는 데만 열중한다. 친구들은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톰이 붓질하다가 페인트 작업에 감탄하면서 즐기는 듯한 모습을 한동안 바라보면서 일이 즐거우냐고 묻는다. 톰이 반문한다. “너는 이걸 일이라고 생각하냐? 평생 우리한테 이런 페인트 칠 할 수 있는 기회가 몇 번이나 찾아오는데?”
친구들은 갑자기 그 일이 멋있어 보인다. 그 일생의 기회를 맛보기 위해 톰한테 자기들이 페인트 칠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사정하면서 먹고 있던 사과, 들판에 나가서 신나게 날리려던 연, 장난감 등을 주겠다고 한다. “우리 이모가 까다로워서 아무렇게나 하면 안 되는데.....”하면서 톰은 마지못해 하며 붓을 건네주고 그늘에 앉아 뇌물로 받은 사과를 즐기며 친구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페인트칠하는 걸 감독한다! 톰의 친구들이 귀하디귀한 간식, 장난감 등과 맞바꾼 것은 노동이 아니라 ‘평생 얻기 어려운’ 기회였던 것이다.
이러한 기발한 톰의 발상이 스티브 잡스에게는 저절로 찾아왔었다. 아이팟 TV 광고에 유명 연예인들이 자신을 무료로 광고에 써달라는 청을 해왔었다고 한다. 한 편에 억! 소리 나는 광고료를 마다하고 그런 청을 하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스티브 잡스가 눈앞에 보이는 이윤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고객의 만족감과 행복을 줄 수 있는 완벽한 미래의 제품 만들기에 열정을 쏟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파 한 단의 가격 인상이 스티브 잡스의 위대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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