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쇼트트랙 500m 경기. 한 선수가 레이스도 끝나기 전에 들어가 버렸다. 한바퀴 앞서 달리던 다른 선수가 골인하자 자신도 경기가 끝난 줄 알고 코스 안쪽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었다. 코치들이 “한바퀴 더! 한바퀴 더!” 안타깝게 외쳤지만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실격 당한 서른 살의 임화정 선수는 “아직 두 종목이 더 남아있다”며 멋쩍게 웃었다. 거기서 메달을 따면 된다는 것이다.
‘눈 위의 육상’ 스노슈잉 경기 중에는 결승선을 코앞에 두고 ‘딴 짓’을 하는 선수들도 있었다. 완주는 까맣게 잊고 사진 찍는 자세를 취하는 선수가 있는 가하면 자원봉사자를 두 팔 가득 안아주느라 달리기를 멈춘 선수도 있었다. 다른 동료와 같이 가기 위해 결승선 앞에서 기다리는 선수도 있었다.
보통 경기장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하지만 여기서는 지든 이기든 모두가 신나고 모두가 즐겁고 모두가 뿌듯하다. 평창에서 열리고 있는 스페셜올림픽 경기장 풍경이다.
지적 장애인들을 위한 아마추어 스포츠 축제인 스페셜 올림픽은 몇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 우선은 꼴찌가 가장 많은 박수를 받는다는 점. 가장 똑똑하고, 가장 빠르고, 가장 잘 하고 … 무엇이든 ‘1등’만 최고로 여기는 데 익숙한 우리에게는 흔치 않은 경험이다. 승패보다는 애쓰고 도전하는 데 무게를 두다보니 꼴찌는 더 더욱 열렬히 응원을 받는다. 꼴찌를 갓 면한 한 선수의 어머니는 “스페셜 올림픽에 꼴찌가 어디 있느냐”고 말한다. 1등부터 8등까지 전부 우승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래서 1등부터 3등에게는 메달을, 나머지 참가자들에게는 리본을 달아주는 꼴찌 없는 대회이다.
다음은 엄청난 칭찬과 격려. 선수가 잘 하든 못 하든 연습 때나 경기 때나 칭찬이 끊이지 않는다. 가족은 물론 선수마다 배정된 자원봉사자들이 “힘내라” “긴장하지 마라” “참 잘 했다”는 말을 수시로 해준다. 칭찬의 릴레이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특별한 것은 선수들의 동작 하나 하나가 애끓는 눈물의 결정이라는 사실이다. 자녀를 키우면서 눈물의 기도를 드려보지 않은 부모가 없겠지만 장애아 부모들은 삶 자체가 눈물이고 기도이다. 아이가 태어나서 때 되면 앉고 걷고 말하는 지극히 자연스런 발육이 장애아 부모들에게는 피 말리는 소망이고 기적이다. 외부사람들의 차가운 편견은 그 위에 추가되는 또 다른 아픔이다.
스페셜 올림픽 자체도 사실은 이런 아픔을 밑거름으로 탄생했다. 대통령과 상원의원들을 배출해낸 케네디가의 맏딸이 지적장애인이었다. 딸에 대해 쉬쉬하면서도 케네디가는 지적장애아와 가족을 돕는 재단을 만들었고, 유니스 케네디 슈라이버가 재단을 맡으면서 스페셜 올림픽이 만들어졌다. 1963년 그가 언니와 다른 지적장애인들을 집으로 초청해 수영파티를 연 것이 차츰 발전해 1968년 스페셜 올림픽으로 자리 잡았다.
자폐, 다운증후군, 정신박약 등 지적 장애아들이 스포츠를 하게 된 것은 그 활동이 주는 특별한 효과 때문이다. 지적장애아로 미국에 입양되었다가 이번에 미국 스페셜 올림픽 스노보드 국가대표로 한국에 온 선수가 있다. 헨리 미스(24)라는 청년이다. 그의 미국인 어머니는 “아들이 스노보드를 할 때는 장애를 잊는다”고 설명했다. 지적 장애아들이 많은 부문에서 적응을 못하지만 운동 등 특정 분야에서는 완전히 몰입하면서 실력을 발휘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틈을 찾는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영화 ‘말아톤’의 실제 주인공 배형진씨 케이스이다. 그의 어머니 박미경씨는 자폐증 아들이 달리기를 할 때면 다른 사람처럼 생기가 나는 모습을 보고는 마라톤을 시켰다. 영화에서 주인공 초원이 어머니와 나누던 대사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 “초원이 다리는?” “백만불짜리 다리” “초원이 몸매는?” “끝내줘요” - 숱한 좌절을 극복하며 칭찬과 격려로 아들을 훈련시키는 과정이 깊은 감동을 주었었다.
자폐아 아들을 키우며 허브농장을 운영하는 한 어머니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그는 허브를 키우면서 “어느 식물 한 가지도 세상에 그냥 태어난 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의 친정아버지는 인삼장사를 했는데 언젠가 아주 보잘 것 없는 풀을 가리키며 ‘저게 설사 막아주는 이질풀’이라고 가르쳐주더라는 것이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저마다 신이 주신 달란트가 따로 있는데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할 뿐이지요.”
아이의 고유한 재능을 찾아 길러주는 것 - 평창에 모인 부모들이 피눈물 나는 노력으로 해낸 일, 자녀를 키우는 모든 부모들이 해야 할 일이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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