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만물의 영장이라고 불리우는 인간들은 짐승과는 달리 동정심과 연민의 정을 가지고 있다.
레미제라블 영화를 보면서 그것이 19세기 당시의 불쌍한 사람들에 대한 소설에 근거한 것임을 뻔히 알면서도 눈물을 흘리는 것도 그 까닭이다.
시리아 사람들이 아사드 정부군과 반군과의 살육전을 피해 피난민 수용소들을 넘치도록 만드는 불쌍한 남녀노소들, 특히 어린 아이들의 고통을 보면서 도울 방법이 없나를 안타까워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 갖가지 원조 기관들의 이름을 떠올리지만 원조 기관을 통해 기부했을 때 실제로 얼마만큼이나 피난민들의 구제에 쓰일지에 관해서는 확신이 안서는 것이 현실이다.
얼마 전 아내가 워싱턴 포스트 일요일 판에서 먼저 읽고 감동적이라면서 나에게 읽도록 권한 저널리스트겸 작가인 애미 윌렌츠의 ‘맥켄리를 찾는 과정’이란 기고문에서 원조기관들과 난민들의 단순치 않은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2010년 1월 아이티를 엄습한 45초 동안의 지진으로 23만명이나 목숨을 읽고 130만명이 홈리스가 되었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새롭다. 그런데 윌렌츠 여사는 지진 발생 며칠 후에 진원지를 찾아가 ‘국경이 없는 의사들’이란 구호 단체의 응급실을 방문한다.
그곳에서 약 세살도 못된 맥켄리가 중상을 입고 엄마의 무릎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한다.
자기집 벽이 붕괴되면서 자기 누나는 죽고 맥켄리의 왼손이 잘렸고 오른 팔도 팔꿈치까지 잘려진 상태로 기다리는 중이었는데 진통제마저 없이 더 심한 중상자들이 넘쳐나기 때문에 몇 시간 후에 다시 와 보아도 기다리는 상태였단다. 20년 이상 아이티에서 일하거나 그 나라에 관해 글을 써 왔던 윌렌츠 여사는 보통은 기자로서의 (재난 피해자들에 대한) 거리를 유지해 온 편이지만 이 경우에는 불가능했단다.
맥켄리와 그의 엄마를 자기 차에 태워 수도 근교에 있는 미국인 경영의 병원에 데려다 치료를 받게 해 주고 아이 엄마에게 약간의 돈도 쥐어 주었다는 것이다. 며칠 후 그들을 찾아보았지만 그들은 이미 고향으로 돌아간 다음이었다.
윌렌츠 여사는 아이티에 관한 책을 쓰면서 맥켄리의 침묵과 양손이 없는 상태가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아 그에 관한 것을 포함시키게 된다.
“그러면서 나는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맥켄리를 위해 무엇을 해 주었던가? 내가 저술하던 책의 일부는 구호와 재건 기관들이 아이티 지진 피해자들을 계산하여 구호 자금을 모으는데 이용해먹고는 실제로 (피해자들을) 돕거나 의미있는 재건을 추진하고 있지 않은 것을 맹비난하는 것인데 사실 나도 맥켄리에 대해 꼭 같이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는 나의 책임과 (그에 대한) 이용의 무게를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맥켄리를 찾으려는 노력이 시작된다. 윌렌츠는 여러 차례 아이티를 방문하여 그 아이를 찾으려 했지만 실패했고 LA에 있으면서 여러 기관이나 사람을 통해 수소문해 보았지만 돈을 요구하기만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윌렌츠는 개인이나 단체들이 “현금을 요구”하는 구조 작업을 하는 바, 기부금을 많이 모으지만 실제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한 푼도 못 받는다고 개탄한다. “그 대신 돈은 원조 기관 종사원들의 주택 비용, 원조 기관들의 차량들, 그리고 미국이나 외국의 계약업자들 등에게 돌아간다.”
그 결과로 유엔, 적십자사, 클린턴, 부시 재단 또는 세계은행이 지진 이후에 아이티에 75억 달러를 쏟아 부었지만 아직도 35만명의 아이티 사람들은 열악하기 짝이 벗는 천막촌에 기거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윌렌츠는 지난달 맥켄리를 찾으러 또 아이티에 가게 된다. 맥켄리의 고향으로 가서 수소문하는 과정에서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단다. 맥켄리의 버림을 받았거나 굶고 있는 것은 아닌지? 또는 자기 자신이 아이티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상상하는 소위 제국주의적인 백인 여자 증세를 보이는 것은 아닌지?
윌렌츠는 아이티 친구 한 사람과 맥켄리의 집을 찾아 나선다. 다행히 그 동네 중심의 정자에서 그의 식구를 아는 노파를 만나 설명을 듣고 찻길을 벗어나 이 밭, 저 밭을 거쳐 바나나 밭 옆에 방 하나짜리인 맥켄리의 집을 발견한다. 맥켄리는 약간은 영양실조인 것으로 보였지만 동기간들, 사촌들, 그리고 친구들에게 둘러 싸여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지진 발생 얼마 후 죽었고 아버지가 돌보고 있었다.
지진 직후에 맥켄리를 수도 부근의 병원으로 데리고 갔었던 사람이라고 자기를 소개한 후 맥켄리를 위해 도움을 베풀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당신에게 달렸습니다”라는 대답이 돌아 왔단다.
“그래서 나는 이제 내 자신의 소규모적인 국제 구조기금을 갖게 되었다. 아직까지는 모금을 할 필요가 없었다. 맥켄리를 찾는 비용도 내 돈이었다.” 맥켄리가 의수를 맞출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와 그의 이모를 병원으로 데리고 왔다 갔다 할 사람도 구해 놓았다.
윌렌츠는 자신이 맥켄리에게 그리고 아이티에게 갚아야 할 빚이 있는 것으로 판단하여 스스로의 개인적인 책임 부과를 한 셈이다.
‘나는 딱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실질적으로 돕는 행동을 하고 있는가’라고 자기 성찰을 하게 하는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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