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막내아이가 겨울 방학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갔다. 대학교 4학년이니 마지막 겨울 방학이었고 한 학기만 지나면 졸업이다.
언제 학교를 다 마쳐 내가 좀 홀가분해지나 했었는데 이제 몇 달 후면 대학을 졸업한다고 생각하니 어디 한 구석 허전한 감이 찾아 오는 듯하다. 잔소리 할 기회나 학비 댈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는게 왠지 섭섭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나는 아들만 둘 있다. 딸을 키워 본 적이 없어 딸의 경우는 어떤지 모르겠다. 그러나 두 아들 녀석들에게 언제서부터인가 정확히 얘기를 할 수 없지만 아버지인 나의 권위가 예전처럼 받아 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적어도 고등학교 때부턴 확실히 그랬던 것 같다.
둘째 녀석의 경우에는 아마 그 전부터 아니었겠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아니 어쩌면 둘째에 비해 상대적으로 순종적인 느낌을 주었던 큰 애도 겉으로 표현을 안해서 그랬을 뿐이지 사실 속으로는 이미 둘째와 마찬가지로 고등학교 전부터 그랬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두 애들 모두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같은 집에 살면서 항상 얼굴을 대하니 싫어도 할 수 없이 내 말을 들어 주는 척이라도 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애들이 대학에 들어가면서 집을 떠나자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마 집을 떠나는 것은 애들도 무척이나 기다렸을 것이다. 부모의 간섭 없이 자유를 만끽하며 살 수 있다는 것처럼 스릴있는 것도 없을런지 모른다.
그런데 나는 애들이 대학에 들어가 그들의 평소 생활 모습과 생각을 쉽게 접할 수 없게 되고 내가 해 줄 수 있는 부분이 적어지자 나의 아버지로서의 적절한 역할이 무엇인지 혼돈이 오기 시작했다. 그냥 관망하는 것이 최선인지 그래도 가끔 무엇인가 한 마디는 던져야 되는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가 많아졌다.
큰 애가 대학교 4학년에 들어서면서 졸업 후의 진로를 놓고 씨름할 때도 사실 그 당시의 고용시장이나 대학원 진학 사정에 대해 그 애보다 훨씬 제한된 정보 밖에 갖고 있지 않는 나로서는 뚜렷하게 방향을 제시하거나 조언을 해 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의 한계는 앞으로 갈수록 더욱 심해 질 것이라고 생각하니 나름대로 무력함을 절실히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아마 이는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내가 노력한다고 달라질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둘째 애는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다고 한다. 본인이 공부하고 싶은 분야와 가고 싶은 대학원을 얘기하는데 그 분야 공부에 대해 사실 아무런 정보가 없는 나로서는 그냥 들을 뿐이지 도움이 될 수 있는 말을 해 줄 수 있는 입장이 아님을 확실히 깨달았다.
또한, 내가 평소에 생각했던 학교들과 전혀 동 떨어진 학교들이 둘째의 지원 학교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는 게 이제 나는 애들에게 뒤처져 있음이 분명했다. 사실 이것은 단지 나에게만 국한된 일은 아닐 것이다.
내 자신이 대학에 들어 갈 때나 대학 졸업 후의 진로를 놓고 고민했을 때 나의 부모님들도 비슷하게 느끼셨을 것이다. 그리고 가끔 부모님이 그에 대해 한 두 마디 말씀 하시려면 나 자신도 별로 달갑지 않게 받아들인 적이 있었음을 새삼 깨닫는다.
이 번에 둘째가 학교로 돌아간 시점은 사실 겨울방학을 그래도 며칠 남겨 두고 있을 때였다. 둘째를 그래도 며칠이라도 더 보고 싶은 욕심에 지금 학교로 가 보았자 기숙사 식당 문도 열지 않아 식사 해결도 쉽지 않을테니 그냥 집에서 며칠 더 푹 쉬고 가지 않겠냐고 물어 보았다.
그랬더니 둘째의 대답이 예상 밖이었다. 학교로 돌아가야 정말 쉴 수 있단다. 이제는 집보다는 자신의 학교 기숙사가 더 쉴 수 있는 곳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 사이 학교가 진정한 “집”이 되어 버리고, 집은 이제 그냥 부모의 집에 불과한 것이다. 어쩌면 방학 때 부모 집에 오는 것이 “집”에 돌아 온다기 보다는 부모를 방문하는 것이 되어 버렸는지 모른다.
둘째의 그 대답에 어떻게 반응을 보여야 될 지 몰랐다. 그러면서 나도 과거 대학 시절 방학때 집에 돌아 왔을 때 느꼈던 것들이 새삼 떠올랐다. 아마 첫 학년이 지나면서 바로 그랬던 것 같다.
부모님 집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것은 설레고 포근한 느낌을 주었지만 그래도 내가 정작 있어야 할 곳은, 그래서 나의 “집”이 되어 버린 곳은, 학교였던 것이다. 쉬어도 학교 기숙사에서 쉬어야 제대로 쉬는 것 같았고 부모님 집에 돌아와 있을 때는 항상 무언가 해야 할 일을 뒤에 남겨둔 채 그냥 도피하고 있는 느낌이었던 것이다.
비록 나와 한 집에서 같이 살지만 대학을 졸업한지 이제 3년이 되어가는 큰 애나 이제 가을에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는 둘째 모두 더 이상 내 “품 안”의 자식은 아닌 것이다.
그들을 훨훨 날아 갈 수 있도록 내버려 두어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이치인데 아직 내 마음이 거기까지 와있지 않다. 이게 바로 내가 아직 아버지로서 성장, 성숙하기 위해 겪는 고통인 모양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