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01년 부터는 교서를 문건으로 의회에 회부, 1913년에 연설 형태로 복귀
금년도 연두교서 일정이 지난 금요일에 확정이 되었다. 2013년 2월 12일이다. 원래 연두교서연설 날자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1월 하순을 관례로 하고 있으나 금년은 대통령 취임식이 있는 해로서 행사가 겹치게 되니만치 붐빔을 피해 2월로 이월이 되었다고 전해 지고 있다. 대통령 취임식은 1월 20이 법정행사일로 고정이 되어 있는데 20일이 일요임으로 21일로 하루 늦쳐진것이다. 대통령취임일은 고정된 날자임으로 연두교서일이 결국 미루어 진것이다
연두교서 연설은 초대 대통령인 죠지 워싱턴이 1790년 1월 8일에 처음 시작을 하였다. 그때는 연두교서를 “The President Annual Message to Congress”라고 하였는데, “의회에 보내는 대통령 연차 메시지”라는 뜻이 되겠다.
초대 와 2대 대통령은 “연두 교서 연설”을 상,하원 합동 의회에서 했는데 제3대 Thomas Jefferson대통령때는 본인이 국회에 출두 하지는 않고 “교서”를 문서로 만들어서 따로 따로 “상원”과 “하원”에 보냈다.
의회에서 연두교서 연설을 한다는 것은 3권 분립의 공화제도하에서는 적절치 않다고 생각을 했고,또 영국 냄새가 너머 난다고 해서 중단을 하였다는 것이다. 1801년의 일이다.이후 내내 이러한 형태로 연두교서가 이어저왔는데 1913년 28대 Woodrow Wilson대통령 때 다시 “연두교서 연설”이 복구 되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때까지도 “연두교서”를 내내“The President Annual Message to Congress”라고 했는데,제32대 대동령(1933~1945) Franklin D. Roosevelt임기중인 1935년 연설부터 State of the Union이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23년까지는 연설내용이 일반 대중에게 전달될 수 잇는 길은 신문밖에 없었는데, 제30대(1923~1929) Calvin Coolidge대통령때 부터는 라디오 중계방송이 가능 해 졌으며 제33대(1945~1953) Harry S. Truman대통령때부터는 TV로 시청할 수 있게 되었다.
연두 교서 연설시의 합동 의회에서도 일반 회의 때나 마찬가지로 민주당 의원석과 공화당 의원석이 따로 따로 갈라져있었는데, 2011서부터는 콜로라도주 출신 Mark Udall이라는 상원의원 제의로 민주, 공화 양당의원들이 서로 섞여서 착석하게 되었다. 여러가지 의미가 있지만 양당의 분열이 눈에 뛰우지 않아서 좋다는 의견이 압도적이다.
20세기초까지의 연두교서는 주로 정부 각 부처의 실적보고와 예산 그리고 경제문제가 주였는데, 구체적인 예산이나 경제문제는 따로 “예산 교서”와 “경제교서”라는 문건으로 연두교서와는 관계없이 별도로 의회에 회부하게 하엿고 연두교서의 내용을 좀더 포괄적인 시정연설로 전환을 하였다.
“예산 교서”는 Budget Message라고 하며 “경제교서”는 Economic Report라고 한다.
이러한 변화는 연두교서를 문건으로 하던것을 연설로 부활을 한 Woodrow Wilson 대통령 때에 생겼다. 대통령이 의회에 대해서 본인의 정책을 설득하는 무대가 되도록 노력한 것이다.Woodrow Wilson은 1차대전후의 세계질서를 확립하는데 주역을 한 특출한 대통령이다. “벨사유”의 평화협정에서 불란서의 Clemenceau와 영국의 Lloyd George와 더불어서 국제무대를 주름잡은 사람중의 하나이다.
지금은 연두교서가 행정부의 실적보고, 총괄적인 국내,외 정세의 설명, 미국과 국제사회가 당면하고 잇는 문제점, 문제 해결을 위해서 필요한 정부의 시정 방침과, 입법부에 대한 요구 등 대통령의 “비젼”을 정확하게 정의하고 국민에게 전달하는 연설이라고 할 수 있다. Radio라던가 TV, Internet등 통신기술의 발달과 더불어서 이 연설은 대통령이 본인 소속당의 정견을 국민에게 이해시키고 국민의 후원을 요청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연두교서를 통해서 발표된 시책중에는 국제정치에 큰 영향을 준 역사적이 것도 있다.첫째로 제5대 대통령인 James Monroe가 1823년의 연두교서에서 발표한 미국의 외교 방침인데, 세계적으로 ‘몬로주의(Monroe Doctrin)’ 또는‘몬로선언’ 이라고 알려진 외교 시책이다. 6.25사변전에 대학이나 사관학교 등의 입학 시험문제에서 빠지지 않던 문제이기도 하다. 내용은(1) 유럽 여러나라의 분쟁에 간섭치않는다.
(2) 남북 아메리카 대륙에 만들어 놓은 유럽의 식민지를 현상대로 승인하지만 간섭은 않할것이며 그 이상의 식민활동을 원하지 않는다. (4) 스페인식민지 여러곳에서 독립을 하고 있고 갈망하고 있는바 이에 대한 간섭은 미국을 위협하는 행위이니 용납치 않겠다 (당시 스페인 치하에 잇던 남미 각지에서 한참 독립운동이 벌어지고 있을 때임). 남미 스페인영에서 Mexico, Venezuela, Guatamala, Equador, Brazil(Portugal에서) 등은 1821~1822 사이에 독립을 했고 이어 여러나라가 독립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둘째번으로는 Abraham Lincoln 제16대 대통령에 의한 노예석방 취지가 1862년 연두 교서에서 강조 되엇다. 링컨대통령이 대통령으로 당성된것은 1860년 11월6일인데, 이어 60년 12월 20일부터 South Carolina, Florida,
Mississippi, Alabama, Georgia, Louisiana, Texas등 7개주가 미국으로부터 탈퇴하고 61년 2월1일에 “아메리카 연합국(Confederate States of America)”이라는 새로운 국가를 만들고 Jefferson Davis라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추대하였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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