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저마다 말한다. ‘내 지나온 삶을 얘기 하자면 소설로 써도 몇권은 될꺼야’ 라고. 사실 이말은 어느 정도 맞는다. 길다면 긴 인생을 얘기 하자면 구구절절 저마다의 얘기가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로스모어라는 은퇴자의 마을은 이런 면에서 단연 톱이다. 우선 각양각색의 인종들이 모여 사는 곳이기 때문에 더 많은 얘기꺼리들이 있다.
며칠 전 친구들과 함께 피아노 콘서트를 갔다. 쇼팽과 멘델스죤과 드비시의 음악이 감미롭게 그 피아니스트의 손길을 통해 흘렀다.
음악만큼 사람의 마음과 영혼에 직접적으로 전달되는 것은 아마 없을 것이다. 며칠 동안 춥고 음울했던 날씨 때문에 마음이 움추려졌는데 마치 환한 햇살이 비추듯 음악의 선율은 그런 마음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쇼팽과 멘델스죤의 음악은 나를 옛날의 대학시절로 돌아가게 해주었다. 마침 휴강이 있는 날은 신촌에서 버스를 타고 광화문의 르네상스나 명동의 돌체라는 음악실로 달려가서 클라식 삼매경에 빠졌다가 강의 시간에 늦어 허둥대면서도 그날들은 젊음으로 인하여 얼마나 빛났던가! 주머니엔 동전 몇잎이 전부였어도 세상이 내것인 양 마음만은 또 얼마나 부자였던가! 시를 쓴다고 이대와 연대의 숲속을 헤메면서도 풋내기 시인은 시를 쓰는 그 자체만으로도 또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 날들은 벌써 오십년도 넘게 어느듯 멀리 멀리 흘러가 버렸다. 내가 지금 있는 이 지점엔 사방을 둘러보니 머리가 하얀 노인들만 가득하다. 저들도 아마 음악을 들으면서 지난 날의 빛나던 그 시절들을 추억하고 있을까. 누군가는 이 삶에 만족하고 누군가는 지나간 날이 그리워 눈물 짓고 외롭고 아프고 하루하루의 삶이 고달플지도 모른다. 삶이란 아마 이런 것일께다.
젊으면 어느날 늙음이 오고 행복했던 기억 뒤엔 고독이 있고, 건강했던 육체가 어느날 부터인가 병이란 불청객을 맞아 마음대로 되지 않다가 갑자기 죽음이 찾아와 영원한 작별을 하게 된다. 말하자면 인생은 여러가지 모양의 무대로 나뉘어졌다가 끝맞춤을 하는 것인가 보다.
그렇다고 늙은 사람들의 인생이 그리 허무하거나 슬픈 것만은 아니다. 여기저기서 분홍빛 로맨스 그레이의 소식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팔십 먹은 여자가 구십세의 남자 친구와 지금 십년째 열애 중인 사람도 있다. 그 남자는 얼마전 자신의 자식들과 똑같이 팔십세인 여자친구에게도 유산을 주기로 벌써 법적인 절차도 끝마쳤다고 한다.
내가 만난 중국계 여자와 월남 여자도 이곳에 들어온 지 한달만에 그들의 소원대로 남자 친구들을 만나 모두다 열애 중이다. 손을 잡고 산책을 하거나 영화관에 자주 모습을 나타낸다. 또 재미있는 얘기는 돈 많은 여자들을 만나러 일부러 남자 꽃뱀들이 이곳을 넘겨본다는 얘기도 있다.
내가 사는 이웃에 얼마전 백세가 넘어 102세가 된 밀튼이라는 남자가 있는데 폐렴에 걸려서 이젠 그의 수명도 다 된 것이라고들 생각했는데 웬걸, 며칠 동안 병원 신세를 졌다가 곧 퇴원을 하고 내가 병문안을 갔을땐 침대에 앉아 세금정리를 하고 있어서 놀란 적이 있다. 친구 몇이서 그를 찾아가 생일 축가를 불러주고 찬송가도 불러주고 했더니 굉장히 기뻐했다. 그에 비해 그의 아내인 베티는 요즘 치매기가 있는지 정신이 오락가락 한다. 나를 만날 때마다 ‘네 아이들이 몇이지?’하고 계속 묻는다.
지난 여름 막내 아들네서 남편의 생일 잔치를 할때 그들 부부를 모셔 간 적이 있다. 우리 아이들 넷과 손주들 몇명이 모여서 재롱을 떠는 것을 보고 우리 부부가 정말 복받은 사람들이란 얘기를 만나기만 하면 했다. 꼬마들이 너무 귀엽다고 부러워 했다.
그들 부부는 사십대에 재혼을 했는데 베티의 전 남편 소생들은 모두 젊어서 병을 얻어 죽고 밀튼의 아들들은 만나주지를 않는다고 했다. 모두를 가진 것 같은 그들 부부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있는 것을 보고 모두를 갖춘 사람들은 정말 이 세상에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아침마다 하는 육통권이란 운동에 나오는 사람들이 사십여명 되는데 이들 또한 알고보면 모두들 한 인물들을 했던 사람들이다. 목소리가 늘 한 옥타브가 높은 마지는 전직 오페라 가수였고, 내 옆에서 늘 살며시 웃는 조세핀은 컴퓨터 프로그래머, 지금 94세이면서도 언제나 원기왕성한 애니는 비행기 부품 조립원이었고, 그 중에는 간호장교며 학교 교사들, 대학 교수며 작가들과 시인 그룹들이 아직도 모임들을 갖고 활동 중이다.
나는 그들의 삶을 다 알 수는 없지만 한때 모두들 한가닥 하면서 자신들의 삶을 아름답게 색칠하며 살았을 것이다. 태어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듯이 일할 때가 있으면 쉴 때가 있는 법이다. 이제 이곳에 사는 많은 노인들이 자신의 불타던 삶의 현장을 떠나서 모두들 조용하고 평안하게 마지막 인생을 살고 있다. 그들의 마지막 여행도 그렇게 조용하고 평안한 것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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