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님과 함께 테네시 월츠에 맞춰 춤을 추다가 옛 친구를 만났지요. 그래서 친구를 내 애인에게 소개했어요. 그런데 둘이 춤을 추는 사이 내 친구가 내 님을 나로부터 훔쳐갔어요.” 참으로 몹쓸 애인이자 친구로구나. ‘테네시 월츠’는 생전 ‘노래하는 격정’이라 불린 패티 페이지가 지난 1950년에 불러 무려 13주간이나 빌보드 차트 탑을 지킨 그녀의 대표곡이다.
이 노래와 함께 자기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 애인의 결혼식에 가서 눈물을 흘리면서 “굿바이 마이 해피네스”라며 남의 축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아이 웬트 투 유어 웨딩’과 춤을 추다 보니 님 떠난 내 품이 허전해 다시는 파트너를 안 바꾸겠다는 ‘체인징 파트너’는 모두 체념적 분위기의 노래들이어서 슬픈 것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에겐 더욱 어필하는지 모르겠다.
‘아이 웬트 투 유어 웨딩’은 내가 술 한 잔 하면 즐겨 부르는 18번으로 페이지의 노래는 멜로디가 따라 부르기 쉽고 서글픈 듯이 감미로워 청승맞기까지 하다. 그런데 나는 ‘아이 웬트 투 유어 웨딩’을 부를 때마다 노래하는 사람의 슬픔의 대상이 남자인지 아니면 여자인지 잘 분간이 안 갈 때가 많다.
페이지의 많은 노래들은 뒤에서 베이스가 “쿵작작 쿵작작”하며 반주를 하는 월츠풍으로 약간 뽕짝 분위기마저 갖췄다. 한 많은 노래사연과 이런 멜로디 탓인지 ‘월츠의 여왕’ 페이지는 한국의 ‘트로트의 여왕’ 이미자를 떠오르게 만든다.
패티 페이지(사진)가 새해 첫 날 캘리포니아주 엔시니타스에서 85세로 타계했다. 페이지의 음성은 팝과 컨트리의 장르를 넘나드는 그녀의 노래처럼 서민적이다. 다소 낮은 음성인 알토로 부르는 그녀의 노래는 편안하고 따뜻한데 듣고 있자면 풍성한 소리의 품에 안기듯이 아늑하다. 페이지의 노래를 어릴 때 들으며 자란 ‘올디스 벗 구디스’ 팬인 나는 지난 1998년 세리토스 공연예술 센터에서 ‘아이 웬트 투 유어 웨딩’ 등 그녀가 부르는 추억의 노래들을 들으며 감개무량해 한 바 있다. 당시 71세였던 페이지의 음성은 레코드로 듣던 것과는 차이가 있었지만 여전히 달콤하고 넉넉하며 또 안정됐었던 기억이 난다.
그로부터 몇 년 후 나는 페이지가 다시 같은 곳에서 공연했을 때도 찾아갔었다. 페이지는 청중 사이를 돌아다니며 올드팬들과 악수를 하면서 ‘테네시 월츠’를 불렀는데 고음부분에서 음성이 오르지를 못하고 내려앉고 말았었다. 난 ‘아, 나이란 어쩔 수가 없구나’ 하고 아쉬워했었다.
페이지의 노래들을 들으면 자기가 자기와 함께 이중창을 하면서 아름다운 화음을 자아내는 것을 알게 된다. 당시로선 혁신적인 이 취입방법은 페이지의 이른 후원자였던 미치 밀러(유명한 합창단 지휘자)의 독려로 시도한 이중녹음이었다.
페이지의 또 다른 히트곡들로는 ‘다기 인 더 윈도’ ‘모킨 버드 힐’ ‘디투어’ ‘크로스 오버 더 브리지’ 및 영화 주제가 ‘허쉬, 허쉬, 스윗 샬롯’ 등이 있다. 그런데 진짜로 은근한 무드가 연무처럼 스멀대며 가슴을 헤집고 들어오는 노래는 장소와 로맨스를 연결한 발라드풍의 두 노래 ‘올드 케이프 카드’와 ‘알러게니 문’이다.
나는 이 노래들을 들을 때면 늘 미 동부의 깊고 오랜 멋을 지닌 풍경화와도 같은 정경을 그리워하곤 한다. 특히 “바다가 보이는 창가에 앉아 랍스터 스튜의 맛을 보고 싶거나 케이프 카드만의 달빛을 바라보며 저녁을 보내고 싶다면 분명히 오래된 케이프 카드를 사랑하게 될 거에요”라는 가사를 들을 때면 매번 매서추세츠주의 해변도시 케이프 카드를 언젠가 꼭 한 번 찾아 가리라고 다짐하곤 한다. 정말로 가서 바다가 보이는 창가에 앉아 랍스터 스튜를 맛볼 테다.
지난 1940년대 말부터 50년대 중반까지 미 팝의 여왕으로 군림하면서 생애 모두 80곡의 싱글을 차트에 올린 페이지는 80대에 들어서도 연 50일 공연을 하며 끊임없이 노래를 부른 평생 가수였다. 그런데 팬들의 사랑과 수많은 히트곡에도 불구하고 페이지는 지난 1997년 가수생활 50주년을 기념해 가진 카네기홀 공연을 취입한 ‘라이브 앳 카네기홀: 50주년 기념 콘서트’로 단 한번 그래미상을 탔다.
오클라호마주 클레어모어의 전기도 없는 가난한 집에서 11남매 중 하나로 태어난 페이지의 본명은 클라라 앤 파울러. 어릴 때부터 노래를 불렀는데 18세 때 털사의 한 라디오 방송국의 페이지 밀크회사가 후원하는 쇼에 출연, 노래 솜씨를 자랑하면서 패티 페이지라는 예명을 얻었다. 페이지는 레코드뿐 아니라 라디오와 TV 쇼의 호스트로도 활약했으며 버트 랭카스터가 날사기꾼 전도사로 나와 오스카 주연상을 탄 ‘엘머 갠트리’(1960) 등 몇 편의 영화에도 나왔지만 연기력은 신통치 못했다.
페이지의 노래는 늘 만날 때마다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이웃집 여인과도 같아 친근하다. 슬픈 노래들마저 부드럽고 달콤 쌉싸름하게 불러 더욱 간절하고 간드러지기까지 하다. 아무 흔적을 남기지 않는 음성인데도 가슴을 느낌으로 채워 주는 목소리다. ‘굿바이 패티!’
<박흥진 편집위원/ hi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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