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의 단순한 날갯짓이 날씨를 변화시킨다는 이론이 있다. 나비효과이다. 브라질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미세한 차이가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다는 이론이다.
‘2012년 올해의 책‘ 리스트를 보면서 나비효과를 생각했다. 모국의 조선일보, 동아일보, 그리고 중앙일보가 ‘2012년 올해의 책’ 으로 각각 10권을 발표해 모두 30권의 책이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책은 우리가 어떤 고민을 하고, 무엇에 관심을 두고,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가를 반영하므로 시대의 흐름을 보여준다.
‘올해의 책’에 치유에 관한 책이 다수 오른 걸 보면 우리는 모두 아프고, 치유가 필요하다는 걸 말해준다. 몸이 아니라 모두 마음의 치유를 다룬 책들이다. 이 중, 성공신화에 던지는 경고장이라고 평가되었던 책 ‘피로사회’는 세 신문사의 리스트에 모두 올랐다. 이 책은 “왜 우리는 여전히 진정 자유롭지 못한가?” “왜 우리는 행복하지 못한가?”라는 질문을 놓고 분석하며 답을 제시해준다.
우울증이야말로 긍정성 과잉에 시달리는 이 시대의 질병이라고 말하는 ‘피로사회’의 저자는 현대사회를 ‘성과 사회’ ‘자기 착취 시대’라고 규정하면서 “곳곳에서 ‘넌 할 수 있어’라고 외치는 과도한 긍정성 때문에 죽을 때까지 일하면서도 스스로 착취한다는 인식을 못하는 것이다” 라고 말한다. ‘존재하려면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명제에 사로잡혀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가 쏟아진다고 지적하면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자기 삶을 소진하게 만드는 성과사회의 폐해라고 말한다.
나비효과는 미국의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츠가 처음 발표한 이론으로 그가 컴퓨터를 사용하여 기상현상을 수학적으로 분석하는 과정에서 초기 조건의 미세한 차이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점 커져서 결국 그 결과에 엄청나게 큰 차이가 난다는 것을 발견하면서 정리한 이론이라고 한다. 나비효과는 이렇게 과학이론에서 시작했으나 점차 경제학과 일반 사회학 등에서도 광범위하게 쓰이게 되었다. 가령 1930년대의 대공황이 미국의 어느 시골 은행의 부도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본다면, 이것은 나비효과의 한 예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너도 나도 치유가 필요한 지금의 우리 마음의 피폐함을 나비효과라는 이론으로 추적해보면 언제 어디서 무엇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결과가 나올까? 나는 그 답을 우리가 읽지 않은 책에서 찾아보려고 했다. 답은 시집이었다. 지난 3년 동안 ‘올해의 책’ 리스트에 시집은 꼭 한 권 올랐다. 2009년부터 2011년 까지는 한 권의 시집도 오르지 않았고, 올해 동아일보 리스트에 한 권이 올라왔다. 우리가 시를 읽지 않는다는 말이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교수는 우리가 인류의 일원이기 때문에 시를 읽는다고 했다. 박완서 작가는 “등 따습고 배불러 정신이 돼지처럼 무디어져 있을 때 시의 가시에 찔려 정신이 번쩍 나고 싶어” 시를 읽는다고 했다. 김지하 시인은 “시란 어둠을 어둠대로 쓰면서 어둠을 수정하는 것”이고 “쓰면서 저도 몰래 햇살을 이끄는 일”이라고 했다. 이문재 시인은 더 꼭 집어서 이렇게 지적해준다:
“우리는 시가 더 필요하다. 새와 벌레, 달과 별을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가 더 많아야 한다. 내가 나를 내가 너를 만나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와 더 가까워져야 한다. 시를 필요로 하지 않으면서 우리는 외로워졌다. 시가 부족해지면서 가난해졌다. 시를 멀리 하면서 작아졌다....” (류시화의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
그렇다면 우리는 인류의 일원이 되기 위해, 등 따습고 배부르지만 정신이 번쩍 나기 위해, 햇살로 나가기위해, 내가 나를 만나고, 내가 너를 만나기 위해, 외롭지 않기 위해, 풍요로워 지기 위해, 크기 위해, 시를 읽어야 한다는 말이다.
2012년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유일한 시집, 장석남 시인의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에 실린 시 ‘망명’을 조근조근 음미해보는 일로 새해의 첫 날갯짓을 해보련다. 시를 읽으면 일어나는 나비효과를 기대하면서.
“어둡는데/ 의자를 하나 내놓으면/ 어둠 속으로 의자는 가겠지/ 어둡는데/ 꽃 핀 화분도 하나 내놓으면/ 어둠 속으로 꽃도 잠겨가겠지/ 발걸음도 내놓으면 가져가겠지/ 어둠은 그렇게 식구를 늘려서 돌아가/ 어둠을 오가는 넋에게도 길 닦아주고/ 견고한 잠 속에는 나라를 세우고 나머진/ 빛으로 돌려 보낼 터/ 어둡는데 길을 나서면/ 한 줌 먼동으로 돌아올 터/ 어둠에 살을 준다/ 사랑에 살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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