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정부의 빈 라덴 살해작전을 그린 ‘제로 다크 서티’(Zero Dark Thirty·사진)가 CIA의 알카에다 요원 고문장면 때문에 미 의회와 인권단체 및 일부 언론 등으로부터도 사실을 왜곡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영화는 지난 2010년 ‘허트 라커’로 각기 오스카상을 받은 감독 캐스린 비글로와 각본가 마크 보알이 다시 손잡고 만든 것으로 CIA의 집요한 빈 라덴 소재지 파악과 미 해군 특전사 네이비 실즈의 빈 라덴 살해작전을 튼튼하고 실감나게 그렸다. 비평가들의 격찬 속에 작품과 감독 등 4개 부문에서 골든 글로브상 후보에 올랐고 여러 개의 주요 부문에서 오스카상 후보에도 오를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 영화가 초반부에서 묘사한 CIA의 테러리스트에 대한 고문장면 때문에 미 연방 의원들로부터 맹렬한 비판을 받으면서 다시 한 번 할리웃의 극적 효과를 위한 사실 왜곡과 고문의 실효성이 매스컴에 의해 집중 조명되고 있다.
문제된 것은 CIA 요원이 알카에다 요원에 대해 워터보딩(얼굴에 헝겊을 덮고 그 위에 물을 붓는 것)과 구타를 하고 작은 상자 속에 알몸상태로 집어넣는가 하면 소음과 빛으로 신경을 곤두세우게 만들고 또 성적으로 수치심을 일으키게 하는 고문장면.
영화는 이런 고문행위가 주효해 수감자로부터 빈 라덴 살해작전이 성공할 수 있는 중요한 정보를 제공 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한편 최근 캘리포니아주 출신의 다이앤 파인스타인(민주)과 존 맥케인(공화) 등 연방 상원 정보위 소속 의원 3명이 영화의 배급사인 소니에 “CIA 보고서를 검토한 결과 고문은 사실과 다르니 이를 시정해 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이들은 “영화가 고문은 효과적이라는 신화 같은 소리를 영속화 할 것과 함께 미국인들의 여론을 불온하고 오도하는 방향으로 이끌고나갈 것이 우려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정보위는 CIA가 영화를 위해 빈 라덴 살해작전 자료를 조사한 비글로와 보알에게 국가기밀을 제공했는지에 대해 조사하기로 하면서 ‘제로 다크 서티’를 둘러싼 논란이 일파만파로 퍼지고 있다.
이에 대해 비글로와 보알은 자신들의 영화는 어디까지나 정부 자료에 의한 것이라고 대응했고 소니 측도 아직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지에 대해 언급이 없다.
대미 테러리스트에 대한 고문은 부시 정부 때 허락된 것이다. 이런 정책의 주도자는 딕 체니 부통령으로 그는 테러리스트에 대해선 증강된 심문기술 즉 고문을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었다. 표면상으로는 “미국은 고문을 하지 않는다”면서 실제로는 법을 어기고 고문을 해도 좋다고 정부가 수락을 한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지난 2011년 5월 당시 CIA 국장이었던 레온 E. 파네타가 존 맥케인 의원에게 보낸 서한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편지는 “빈 라덴의 연락책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 일부 알카에다 요원들은 증강된 심문기술에 처해졌다”고 적고 있다.
‘제로 다크 서티’에는 대통령 후보에 출마한 오바마가 TV 인터뷰에서 “미국은 고문을 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콧방귀를 꾸었다. CIA가 테러 용의자들에 대해 온갖 수단의 잔인한 고문을 자행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우리가 보고 들은 뉴스에 비하면 영화의 고문 장면은 오히려 중화된 것이다.
CIA가 목숨을 내걸고 임무를 수행하는 알카에다 요원들에게 신사적으로 대해 원하는 정보를 얻어낼 수가 있다고 믿을 정도로 순진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오바마가 “미국은 고문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해서 실제로 고문이 없어졌다고 믿을 사람도 없을 것이다. 끊임없이 테러의 위협에 시달려야 하는 미국으로선 그 것은 어쩌면 자기 보호를 위한 필요악일 수가 있기 때문이다.
고 김근태 전 민청련 의장에 대한 경찰의 잔혹한 고문행위를 다룬 영화 ‘남영동 1985’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인권유린을 통치수단으로 삼은 군사 독재정권 하에서 오래 산 탓인지 나는 정부가 하는 말은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잘 믿지를 않는다. 거짓말과 오리발은 정치인들에게는 생태적인 인자여서 나는 선거 때면 ‘가장 덜 나쁜 거짓말쟁이’에게 표를 던지곤 한다. 오바마가 부시보다 덜 나쁜 거짓말쟁이라고 믿고 싶다.
한편 연방 상원의원들의 ‘제로 다크 서티’에 대한 비판으로 인해 영화의 이미지가 실추돼 이 영화의 오스카상 수상 가능성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막강한 의원들이 최근의 국가적 숙원사업을 다룬 영화의 진실 여부를 따졌다는 것이 결코 수상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분석했다.
미 정부와 의회 의원들 그리고 인권단체들은 이 영화로 인해 미 시민들은 물론이요 나아가서 세계적으로도 미국은 고문을 자행하는 국가라는 개념이 굳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정말 “미국은 고문을 하지 않는가.”
<박흥진 편집위원/ hipark@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