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의 해돋이를 맞으며 나는 다시 내 나이를 잊고 부지런을 떨어 본다.
그래서 나는 새봄에 개관될 예정인, 내 기념관에 전시할 사진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책상머리에 뚝 떨어진 사진 한 장 ! 나는 그 사진을 책상 위에 올려 놓고는 보고 또 보고 있다.
사나운 맹수도 죽을 때가 가까워 오면 그가 달려왔던 초원과 건너온 강줄기를 어진 눈길로 되돌아 보듯이, 어쩌면 나도 내 노경에서 지나온 그 세월의 발자취를 되돌아 보듯 이 사진 한 장에 담겨진 사연을 되씹어 보고 있는지 모른다.
나에게 있어서 추억의 사진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한 장의 사진은 지금으로부터 49년 전인 1964년, 내가 한국에 있을 때, 아동극단 ‘새들’의 제2차 일본 순회공연 당시, 그 두 번째 공연지였던, ‘히메지’ 시(市)의 ‘히메지’ 성 앞에서 찍은 기념사진이다.
그런데 그 사진 속의 한 사내 놈이 유난하게도 내 눈길을 끈다. 그가 바로 나의 데뷔작이자, 그 순회공연 작품이었던 ‘토끼전’에서 주역인 거북 역을 맡았던 오늘날의 국민배우인 12살 때의 안성기 군이다.
그런데 내가 이 사진을 바라보면서 품어보는 두 가지 생각은 다름 아닌, 성기 군도 이 사진을 가지고 있을까 하는 의문과, 한편으로는 우리가 첫 번째 공연지였던 ‘사가시’ 공연을 끝내고 찾아갔던 ‘사가시’ 근처 도시인 ‘뱃부시’의 뱃부 온천에서, 그 유명한 수나브로(모래뜸질 온천)를 즐겼을때, 따끈한 모래에 파묻힌 채, 얼굴만 빼곰히 내밀고 누워 있던, 그 우스꽝스런 그 때의 모습을 성기가 아직도 기억하고 있을까 하는 그 점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공연은 ‘히메지’시와 ‘나고야’ 그리고 우리 교민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일본의 제2 도시인 ‘오오사카’에서 초만원의 관객이 보는 가운데 막이 내려졌다. 이어 우리는 마지막 공연지인 ‘도쿄’를 향하여, 일본이 세계에 자랑하는 고속 열차인 ‘신칸센’에 몸을 실어 ‘도쿄’역을 향하여 달려 갔다. ‘도쿄’역에는 우리 일본공연 초청단체인 민단본부의 정동화 부단장과 간부들이 우리를 마중 나와 있었다. 그 때 ‘프랫홈’에서 우리를 환영하는 뜻에서 전해준, 정 부단장의 꽃다발을 ‘새들’단원을 대표하여 성기 군이 나붓이 절하며 받든 모습을 담은 또 한 장의 사진도 지금 내 앨범에 꽃혀 있다.
우리의 ‘도쿄’ 공연은 1차 공연 때와는 달리, 비교적 가난한 생활의 교민들이 살고 있는, ‘도쿄’ 북쪽인 ‘아다찌‘ 구(區)에서 막이 올려졌다. 1964년 그 당시만 해도, 본국의 연예단체의 일본 공연이 거의 없었던 시기였기에, 우리 공연은 교민 1세들에게는 떠나 온 본국에 대한 향수를 느끼게 했고, 2, 3세대에게는 그들이 가보지 못한 그들 조국 말의 아름다움을 맛보게 했었다. 그래서인지 우리 공연을 지켜 보던 1세들이 많이도 울고 있었다.
우리의 두 번째 ‘도쿄’ 공연은 한일간 아동극의 교류 차원에서 ‘도쿄’ 근교의 교육중심 도시인, ‘세다가야’ 구에 있는 명문 사립학원인 ‘세이죠’ 학원 초등부 강당에서 이루어졌다. 이 학교는 아동극을 정과(정규과목)로 채택하고 있는, 일본 학교극의 메카이기도 한 학교이다. 그런데 우리가 ‘도쿄’ 공연과 공연 후의 관광을 위해 머무는 동안에 일어났던 아름다운 ‘에피소드’ 하나가 있었다면, 그건 단원 중 나이 어린 초등학교 3학년 여자학생이, 비교적 장기간의 공연과 난생 처음으로 부모와 떨어져 지낸 딴따라 생활에서 오는, 피로와 외로움에서인지 그만 이불에다 실례를 하자, 성기 군이 그 이불을 손수 들고 가, 여관 베란다 난간에 걸쳐 놓고 말린 사건이다.
이 에피소드는 두고 두고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성기의 어릴 적부터의 이러한 행위는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는 말대로, 그를 오늘 날 호평 받는 국민배우의 반열에 서게 했을 뿐 아니라, 가난한 나라의 어린이들을 돕는 자선단체인 ‘유니세프’에 흔쾌히 몸을 담는 밑거름이 되지 않았나 싶다.
나는 얼마 후, 내 기념관 개관 준비를 위해 한국에 나갈 것이다. 그 때 90살을 바라 보는 나와, 성기 그도 60 고개를 넘어 선 시점에서, 우리는 동화 속의 과거를 비쳐 보는 신비의 거울을 바라 보듯이, 반세기 전의 우리들의 추억이 담긴 이 추억의 사진 한 장을 ‘테이블’에 놓고는, 서로 쳐다보며 빙그레 웃음 지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둘은 ‘알라딘’의 그 마법의 돗자리 같은 회상의 돗자리를 타고 우리 둘 만의 그 추억의 강 저편으로, 멀리 멀리 날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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