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도 300여편의 영화를 봤지만 해마다 연말에 나의 베스트 텐을 고르자면 여간 애를 먹는 것이 아니다. 해마다 같은 경우이지만 보고나서도 오랫동안 가슴에 남아 생각하면 심장의 박동을 뛰게 만드는 영화는 그리 많지 않다.
2012년도는 지난해보다 관객 수와 흥행수입이 5%나 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화의 질이 그만큼 향상됐다고는 할 수 없다. 흥행 호조는 사람의 감관을 유린하다시피 하는 블록버스터 영화 덕택이다. 블록버스터 현상 때문에 인디 영화들이 맥을 못 추게 된 것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메이저들의 이런 한탕주의식 사고방식은 관객들을 우중화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할리웃 황금기에는 스튜디오들이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고루 만들어 관객들이 편식을 피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 할리웃은 더 이상 옛날과 같은 영화들을 만들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나의 베스트 텐을 알파벳순으로 적는다.
*‘사랑’(Amour)-뇌졸중으로 전신불수가 된 아내를 돌보는 남편과 아내와의 관계를 통해 노부부의 사랑과 상호 존경과 공존의 감사를 지극히 아름답고 숭고하게 그린 프랑스 영화. 고통스럽고 참담한 내용을 부드럽고 연민의 정 가득히 그려 오히려 영혼이 들려지는 느낌을 갖게 된다.
*‘아고’(Argo)-카터 대통령 때 이란 시민들에 의해 점령된 이란 주재 미 대사관에서 도주한 일단의 대사관 직원들을 구출하기 위해 CIA 직원이 파견된다. 실화를 긴장감 있게 재현했다.
*‘시저는 죽어야 돼’(Caesar Must Die)-이탈리아 교도소의 장기수들이 셰익스피어의 연극 ‘줄리어스 시저’를 옥중 무대에 올리기 위해 연습하고 연기하는 모습을 다큐드라마 식으로 그렸다. 말의 막강한 힘을 느끼게 된다.
*‘클라우드 아틀라스’(Cloud Atlas)-환생과 인간 경험의 총체에 관한 철학적이요 감정적인 대하드라마로 시공을 초월한 6개의 얘기가 6악장의 3시간짜리 교향곡처럼 직조됐다. 배두나의 할리웃 데뷔작인데 유감스럽게도 비평가들의 시큰둥한 반응과 함께 흥행서 참패했다. 그러나 반추 할수록 작품의 메시지와 감정적 파랑을 깊이 느끼게 된다.
*‘쟁고 언체인드’(Django Unchained)-해방된 노예가 헤어진 아내를 찾기 위해 벌이는 복수혈전. 퀜틴 타란티노 감독의 천재적 상상력이 유혈낭자하게 화면을 적시는 폭력적이요 코믹한 스파게티 웨스턴.
*‘실버 라이닝스 플레이북’(Sliver Linings Playbook)-정신적 상처를 입은 두 젊은 남녀가 사랑을 통해 구원 받는다. 유머와 페이소스가 잘 배합된 매력적인 작품.
*‘누나’(Sister)-스위스의 알프스 지역 달동네에 사는 어리나 생활력 강한 소년과 그의 방종한 누나의 탯줄처럼 감긴 사랑과 생존투쟁을 돌보는 마음으로 그린 스위스 소품.
*‘투린의 말’(Turin Horse)-황무지에 사는 남자와 그의 딸 그리고 이들의 생계수단인 말의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상을 통해 삶의 인고를 뼈마디가 쑤시도록 생생하게 묘사한 흑백영화. 헝가리의 벨라 타 감독 작품. (사진)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에밀리 브론테의 소설이 원작. 영국 요크셔를 무대로 주어다 하인으로 기른 히드클립과 주인집 딸 캐시의 금단의 사랑을 로맨티시즘을 배제하고 거칠도록 아름답고 야생적으로 그렸다. 히드클립으로 흑인을 썼다.
*‘제로 다크 서티’(Zero Dark Thirty)-빈 라덴 살해작전을 강건하고 사실적으로 그렸다.
비평가들의 호평과 흥행서도 순항을 하고 있는 ‘링컨’과 ‘레 미제라블’은 내겐 장황하고 부담이 가는 영화. 이밖에 올해 기억에 남는 영화들은 다음과 같다.
*‘임포스터’(The Imposter) *‘서칭 포 슈거맨’(Searching for Sugarman) *‘치코와 리타’(Chico & Rita) *‘테이크 디스 월츠’(Take This Waltz) *‘비연드 더 힐스’(Beyond the Hills) *‘바바라’(Barbara) *‘굿바이 퍼스트 러브’(Goodbye First Love) *‘낫 페이드 어웨이’(Not Fade Away) *‘컴플라이언스’(Compliance) *‘섬싱 인 디 에어’(Something in the Air).
올해는 탐 크루즈와 브래드 핏의 불운의 해다. 크루즈의 ‘락 오브 에이지즈’(나는 재미있게 봤다)가 흥행서 죽을 쑨데 이어 현재 상영 중인 게으른 타작 ‘잭 리처’도 비평과 흥행이 모두 안 좋고 핏의 허세 부리는 스릴러 ‘킬링 뎀 소프틀리’도 개봉하자마자 철시했다. 그리고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한 ‘커브볼에 약해’도 이들과 마찬가지 운명.
한편 올 베니스 영화제서 황금사자상을 받아 한국 영화 사상 최초로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 오를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모았던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가 후보에서 탈락됐다. 최후의 궁극적 구원이 있기까지의 잔혹과 염세성이 오스카 회원들의 취향에 맞지를 않는다.
<박흥진 편집위원/ hipark@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