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전날까지도 승패를 가늠하기 어려웠던 한국 대선이 드디어 막을 내렸다. 때가 되면 백일하에 드러나는 결과가 그 전까지는 무슨 수를 써도 알 수 없는 것이 세상사이다. 시간만이 답을 가지고 있다. 흘러갈 것들이 흘러가야 모습이 드러난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한국의 새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보수·진보, 산업화 세력·민주화 세력으로 갈라져 나라 전체가 격렬하게 대립했던 아수라장은 이제 이긴 자들의 환호와 진 자들의 ‘멘붕’(심리적 붕괴)으로 정리되었다. 승자인 박 후보가 얻은 표는 약 1,580만 표, 패자인 문재인 후보가 얻은 표는 약 1,470만 표. 거의 반반으로 갈렸다. 계층, 세대, 지역 별로 갈등의 골이 얼마나 깊은 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 나라 두 국민이다.
박근혜 당선인은 20일 대국민 인사를 하면서 대통합의 정치를 약속했다. “과거 반세기 동안 극한 분열과 갈등을 빚어왔던 역사의 고리를 화해와 대탕평책으로 끊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정확히 반세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 자리에는 그의 부친인 박정희 대통령이 있다. 1962년 12월17일 박정희 대통령의 제3공화국이 출범했다.
그리고 1979년 10월26일 그가 부하의 총탄에 맞아 서거했을 때 국민들의 반응은 극과 극이었다. 한쪽에서는 18년간 나라를 이끌며 보릿고개를 끊어낸 위대한 지도자의 죽음에 통곡했고, 다른 한쪽에서는 독재의 시대가 끝나고 ‘서울의 봄’이 열린다는 기대에 환호했다. 이번 대선 후의 ‘환호’와 ‘멘붕’은 10.26 당시의 극명한 대립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밖에 없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민 절반의 높은 기대와 다른 절반의 깊은 우려는 근본적으로 박정희 시대 평가에 따라 갈라지기 때문이다. 박 당선인이 ‘통합’을 최우선 과제로 삼은 것은 당연하고도 불가피한 일이다.
한국에서는 연말모임이 한창인 요즘 ‘소화제!’라는 건배사가 인기라고 한다. “소통과 화합이 제일!”이라는 뜻이다. 박 당선인이 추진하는 ‘통합’도 시작은 ‘소화제’이다. 먼저 소통이 되어야 화합이 되고 국민 대통합의 길도 열린다. 여기서 가장 걸리는 것이 그의 ‘불통’ 이미지이다.
‘소통’이란 마음과 마음이 열려서 이 마음이 저 마음에 가서 닿는 것. ‘불통’은 마음의 빗장이 너무 단단해서 도무지 열리지 않는 상태이다. 마음에 빗장을 만드는 것은 많은 경우 상처이다. 상처받은 마음들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박 당선인은 상처가 많은 삶을 살아왔다. 보통사람은 상상하기 어려운 비극들을 겪었다. 육영수 여사가 서거했을 때가 대학 갓 졸업한 22살.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며 그는 “심장이 잘려 나가는 듯한 고통에 몸서리 쳤다”고 했다. 그리고 5년 후 아버지마저 총탄으로 잃었으니 그 고통은 심장뿐 아니라 온 몸이 잘려나가는 듯 혹독했을 것이다.
성장기와 청년기를 보낸 고향 같은 청와대를 나와 두 동생과 함께 사저에서 생활하며 그가 경험한 것은 뼛속 깊은 배신감이었다. 유신 세력들이 앞 다투어 박정희 비판에 나섰고 전두환 정권 당시 국립묘지 추모식도 허락되지 않았다. “사람이 사람을 배신하는 일만큼 슬프고 흉한 일도 없을 것”이라고 그는 자서전에 썼다.
정계로 나서기 전까지 근 20년 그의 삶은 말 그대로 와신상담(臥薪嘗膽)이었을 것이다. 마음의 빗장을 단단히 채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상처를 치유하는 한가지 방법은 다른 사람의 상처를 보는 것이다. “나만 아픈 것이 아니라 너도 아프구나” 느낄 때 마음의 벽은 허물어진다. 마음이 문을 열면 치유가 가능하다.
‘통합’을 위해 박근혜 당선인이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반대편에 선 국민들의 상처를 보는 것이다. 선거운동 기간 그는 박정희 시대에 대해 사과했었다. “5.16, 유신, 인혁당 사건은 헌법 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의 정치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그 말에 얼마나 진심이 담겼을 지는 알 수 없다. 아버지의 무덤에 침을 뱉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표를 의식한 제스처로 보는 의견이 많다.
대통령에 당선된 지금 그는 새로운 눈으로 ‘아버지의 시대’를 바라봐야 할 것이다. “내 기준에서 아버지는 나라를 지키는 정의의 사도”였지만 그 이면에서 민주와 자유에 목마른 많은 사람들은 투옥 당하고 목숨 잃으며 절망했었다는 사실을 끌어안아야 한다. “저들의 상처 또한 나의 상처보다 가볍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통합의 정치, 상생의 정치는 가능하다. 최초의 여성 대통령, 어머니 같은 대통령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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