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보면 누구든지 깜짝 놀라며 측은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게 될 것이다.” - 맹자가 말하는 측은지심이다. 아이의 부모에게 잘 보이려는 것도 아니고, 이름을 날리기 위한 것도 아니며, 비난을 받을 까봐 그런 것도 아니고 그저 마음이 움직여서 달려가 아이를 구하게 되는 것, 그것이 인(仁)의 시작이라고 맹자는 가르친다.
사람에게는 남의 어려운 처지를 보면 그냥 보아 넘길 수 없는 원초적 마음의 싹이 있다는 것이다. 기원전 4세기 인물 맹자는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고 판단했다.
21세기 오늘 만약 어린아이가 우물 혹은 강물 빠진다면 사람들의 반응은 어떨까. 여전히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가서 아이를 구하게 될까? 만약 물이 너무 깊어서 자신도 생명을 잃을 위험이 있다면 어떨까? 어린아이가 아니라 어른이 괴한의 습격을 받고 쓰러져 있다면 어떨까?
지난 3일 뉴욕에서 참변을 당한 한기석(58)씨 사건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들이다. 25년 전 미국에 와서 퀸즈에 살고 있던 한씨는 이날 여권을 갱신하러 뉴욕 총영사관에 가던 길이었다고 한다. 오후 12시30분쯤 맨해턴 지하철역 승강장에서 흑인 노숙자와 말다툼이 벌어졌고, 흑인 청년이 떠밀어 선로로 떨어지면서 그는 어처구니없는 최후를 맞았다.
추락한 후 10~20초 그는 승강장으로 올라오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했지만 누구도 그를 돕지 않았다. 곧 이어 전동차가 돌진해 들어오고 승강장 벽에 붙어 오도 가도 못한 그의 아득한 절망감은 한 장의 사진으로 전해졌을 뿐이다. 현장에 있던 프리랜서 사진기자가 사진을 찍어 다음날 뉴욕포스트에 커버 사진으로 실었다.
그의 죽음은 이 사회의 몰 인간성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고 있다. 생사기로에 처한 사람을 구하는 대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 사진기자, 죽음의 순간 사진을 ‘이 사람은 곧 죽는다’는 자극적 제목과 함께 대대적으로 실은 선정주의 언론, 현장에서 두 손 놓고 구경만 하고 있었던 목격자들 … 누구에게서도 맹자가 말한 측은지심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 선한 마음의 싹이 솟아오르기에는 타자에 대한 우리의 마음의 밭이 콘크리트처럼 굳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도시의 메마른 인간성이 처음 주목을 받은 것은 1964년 키티 지노비스 사건 때였다. 퀸즈의 한 술집에서 일하던 20대 여성이 새벽 3시에 귀가하다 괴한에게 살해당한 사건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살인사건으로 묻힐 뻔했던 이 사건이 전국적 주목을 받은 것은 담당경관이 뉴욕타임스 기자에게 개인적 충격을 털어놓으면서였다.
괴한은 지노비스를 한 차례도 아니고 두 차례나 공격했고 그 30여분 동안 주변 아파트의 많은 주민들이 여성의 비명소리에 잠이 깨서 불을 켜고 내다보았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밖으로 나와 여성을 도와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는 사실에 경관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사건을 뉴욕타임스가 심층보도하면서 대도시 생활의 익명성, 거기서 파생된 무관심과 냉담은 ‘지노비스 증후군’으로 불리며 사회심리학적 연구의 주제가 되었다.
도시 환경의 특성은 ‘구경꾼’의 양산이다. 낯모르는 수많은 사람들과 수없이 스치며 부대끼며 사는 환경은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만들며 서로가 서로에게 방관자가 되게 한다. 길거리에서 고통에 신음하는 사람이 있어도 모르는 척 눈을 돌리는 것이 도시생활의 수칙처럼 되었다. 괜히 끼어들었다가 낭패를 당할까봐 혹은 누군가 다른 사람이 돕겠지 하는 생각에 방관만 하는 ‘방관자 효과’이다.
그 결과 지난 2010년 뉴욕에서는 한 ‘선한 사마리아인’이 거리에서 죽어갔다. 과테말라 태생의 한 청년이 괴한에게 쫓기는 여성을 돕다 오히려 칼에 찔려 중태에 빠진 사건이었다. 청년은 피를 흘리며 길거리에 한시간 이상 쓰러져 있었는데 20여명이 그 곁을 지나가면서도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결국 청년은 숨졌다.
측은지심이라는 마음의 싹이 고개를 들기에는 대도시 현대인들 사이에 무관심의 벽이 너무 높다. 낯선 사람, 모르는 사람에 대해서는 일단 경계심부터 발동되는 것이 오늘의 우리 모습이다.
크리스마스는 사랑의 회복을 시도하는 절기이다. 신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의 막혔던 벽을 허물고 사랑의 소통을 시도하는 시즌이다. 우리의 냉담, 무관심, 무신경을 돌아보았으면 한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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