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식탁의 보고(寶庫)인 ‘동해바다’가 선대들이 목구멍이 포도청일 때 내 것을 소홀히 했던 죄 때문에 지도상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는데 이번엔 ‘역사’를 ‘선택’으로 바꿔 버렸으니 우리 후손들은 을지문덕 장군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도 모를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바닷물 밑에서는 서식처로 돌아가는 오징어 떼가 ‘학익진’으로 펼친 선박들이 길목을 막고 쳐놓은 그물에 깡그리 포획 당하는 절명의 위기를 맞고 있는 가운데 수산청이 거액의 포상금을 걸어놓고 기다리는 ‘알밴 명태’의 소식은 또 한 해를 넘기나 보다.
이른 새벽안개 속을 뚫고 한일 공동어장인 동해 동북단의 대화퇴(大和堆)로 향하는, 최신장비로 무장한 오징어 선단을 배웅하는 은퇴한 노선장의 눈에는 그 옛날 외줄낚시 하나로 한 달여 작업 끝에 만선을 하고 방향 탐지기 하나에 의존해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포항에 세운 로란-c 송신탑에서 쏘는 전파에 주파수를 맞추며 북풍 속을 뚫고 먼 길을 돌아 귀항했던 때를 회상하며 격세지감(隔世之感)에 물안개에 온몸이 젖는 것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이 철이면 스시의 꽃인 참치를 비롯해 광어 도미 방어 연어 고등어 등 기름진 횟감들이 심해가 빚어준 결 고운 자색을 수줍은 듯 내보이며 가는 해를 아쉬워 하는 손님들을 바로 유혹할 때이고 우리 스시 맨들은 한해동안 스시 바를 찾아준 손님들을 위해 단단히 인사를 치루어야 할 때다.
천년 고도인 일본 교토, 도꾸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1603년 이곳에 이조(二條)성을 짓고 제2의 정사를 펼 때 성내 식구들을 위해 세웠던 어용시장(현 니시끼(錦)시장) 한곁에 생선 가게를 열었던 이요마타의 가게는 4백년이 지난 지금도 20대 주인은 초록등을 문에 걸고는(중국산을 안 쓴다는 표시다) 여전히 고등어 스시 하나만으로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을 터이다.
올 6월 일본은 결국 혼마구로(참다랑어) 포획제한에 합의 했는데 얼마전 도쿄의 스끼지(築地) 수산시장에서 이 참치 한마리가 무려 8억5천만 원에 경매 낙찰이 됐었다. 이 참치가 그 옛날 풍운검객 사사끼 고지로가 썼다는 긴 바지랑 대칼에 의해 해체될 때 이를 지켜보는 수많은 이들은 칼날이 살을 파고드는 순간 모두 숨을 죽였고 눈꽃 같은 지방살이 가슴 가득히 펼쳐 있는 걸 확인 하는 순간엔 모두가 환호했단다. 이 명품은 kg당 3백만원에 거래가 됐고, 이날 저녁 긴자의 스시바에서 쉐프의 한자나 되는 긴 칼이 허공을 가르며 베어낸 3치도 안되는 크기의 이 참치살로 빚은 스시는 2쪽에 10만원에 값이 매겨 졌었다.
칼을 쥘 수 있었던 사내들만의 직업으로 전통을 이어가는 ‘스시’는 기수(奇數, 홀수)로는 상에 오르지 못한다. 한 칼은 적을 베는 것이고 세 칼은 할복이다. 따라서 스시는 반드시 짝수로 접시에 올려지는 것이다. 혹자는 그런다. 이건 허영이고 사치라고. 하지만 결코 부자가 아닌 손님들이 70만원이나 되는 식대를 치루면서도 생애 가장 행복한 날이었다고 쉐프에게 신뢰의 빛을 던지는걸 보면 스시 문화가 얼마나 뿌리 깊게 이들의 마음속에 녹아 내려있는지 짐작이 된다.
이쯤 되면 7백년 역사의 마사무네(政宗) 철인이 찍힌 스시 칼을 쉐프가 왜 그토록 아끼는 지도 , 그 옛날 장군가의 도검사(刀劍士)였던 소로리 신자에몽의 칼 가는 솜씨가 지금도 스시 맨의 입에 오르내리는지 이해 할 수 있고, 지바(千葉)현에 있는 칼의 무덤이 비록 상징적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쉐프들이 무덤을 찾는 이유도, 요리의 사당이 왜 있는지도, 스시 입문생이면 일본초밥협회 천황연수센터에 들어가 보기를 소원하는지도 이해 할 수 있는 것이다. 진정한 쉐프는 살아 숨 쉬는 도미를 그 숨소리 조차 헤어가며 한칼에 잠재우면서도 결코 무용을 자랑하지 않으며 스시 입문시 배우는 다도(茶道)에서 다실(茶室)의 문이 낮은 이유가 고개를 수그리고 들어가야만 되는 겸손함을 가르쳐 주고 있음을 깨달을 줄 아는 자인 것이다.
워싱턴 DC 18가 한 블럭을 통째로 차지한 ‘세계은행’ 본사 건물 안에는 시중보다 색다른 음식이 많은데 이중 한인 쉐프가 이끄는 스시 바가 수많은 상주인과 외래객에게 다양한 레서피의 스시를 가지고 호기심 많은 이들을 상대로 바쁘게 스시를 빚고 있는데 한식은 없다. 14가, 세계인의 귀와 눈이 쏠려있는 프레스 센터 안에도 한식이 없다. 바야흐로 한식의 세계화란 구호를 내걸고 저마다의 책략을 펼치는데, 몇 유명인사들 앞에서 무슨 기성복 펼쳐 보이듯 하는 홍보도 좋겠지만 이런 ‘세계’ 속에 동아리를 틀고 앉아 승부를 걸어봄도 어떨까 싶다.
싸이가 말춤을 추는 날, 땀만 훔칠게 아니라 삼계탕이라도 한그릇 맛있게 먹어 주었으면 천군만마를 얻음과 같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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