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발달 과목의 마지막 강의는 인생의 마지막 장인 ‘죽음’이다. 20대 초반의 청년들에게 이 주제는 죽도록 재미없다. 자신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사항이라고 생각하므로 관심을 갖고 경청하기란 쉽지가 않다. 그래서 나는 요령을 부린다. ‘행복’에 관한 이야기로 ‘죽음’에 관한 강의를 시작한다. 아이들 귀가 쫑긋, 해진다.
어제도 ‘죽음’을 강의해야하는 마지막 수업시간에 우선 이런 질문을 던졌다. “행복지수가 바닥을 치는 나이가 언제라고 생각하는가? 또 그 피크 시기는?” 학생들의 답은 주로 ‘사춘기’에 바닥을 치고 40대쯤이 피크라고 했다.
물론 엉뚱하거나 철학적인 답을 내놓는 녀석(주로 남학생들이 그런다)들도 없는 것은 아니어서 5살 혹은 엄마 뱃속에 있을 때가 가장 불행하다고 하는 녀석도 있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사춘기에 행복지수가 바닥이라고 말한 것은 자신들이 살아온 날들 중에서 그 시기가 가장 힘들었다는 말일 것이다. 40대가 피크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졸업하고, 취직하고, 결혼해서 아이 낳고 살면 행복의 조건이 다 갖춰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있기 때문이리라.
이에 상반되는 연구결과를 말해주자 학생들은 목소리를 높여가면서 이런저런 논박을 펼쳤다. 그러면서 눈들이 초롱초롱해졌다. 내 작전은 성공했다. 이제 수업 받을 자세가 된 것이다. 그 주제가 죽도록 재미없는 ‘죽음‘이라도 말이다.
이코노미스트의 발표에 의하면 행복지수와 나이는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 행복지수는 나이에 정비례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반비례하지도 않아, U 자의 패턴으로 변한다고 한다. 이 자료를 모으기 위해 갤럽 등 잘 알려진 기관을 통해 각 나이층의 사람들에게 다음의 두 가지 질문을 하고 그 답을 모아 분석했다고 한다.
“당신의 인생을 포괄적으로 생각해볼 때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어제 당신은 행복했습니까? 만족스러웠습니까? 화를 냈습니까? 마음이 불안했습니까?”
이에 대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행복지수는 30세 쯤 까지 증가하다가 40대 후반에는 바닥을 치고 50대부터 다시 올라가기 시작해서 70대까지 상승 추세가 계속하는 U 자의 패턴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 추세는 재산, 직장, 가족관계, 문화배경과 관계없이 같다고 했다.
미국에 살고 있는 30만 명을 대상으로 또 다른 연구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는데, 이 연구에서는 행복의 반대요소를 더욱 세밀하게 연구해 이런 결론을 내렸다. 20대에서 30대 사이에 걱정과 스트레스는 감소하는데, 이때부터 40대 중반까지는 다시 상승세를 보이다가 50대부터 다시 감소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엎어놓은 U 자의 패턴이다.
건강에 이런 저런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또 특별한 질병이 없더라도 몸이 말을 듣지 않는 70대에 행복지수가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한 마디로 종합해보면 이렇지 않을까?
인생이란 여정에서는 계속 내려가기만 하는 길도, 계속 올라가기만 하는 길도, 계속 반듯한 길도 없다는 걸 온 몸으로 터득한 지혜가 아닐까 한다. 그래서 구불구불 구부러진 인생이라는 길을 가면서 쉬엄쉬엄 쉬면서 갈 줄도 아는 지혜 말이다.
이준관 시인의 시 ‘구부러진 길’을 보면 시인은 이 지혜를 이미 터득한 듯하다.
“나는 구부러진 길이 좋다./ 구부러진 길을 가면/ 나비의 밥그릇 같은 민들레를 만날 수 있고/ 감자를 심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날이 저물면 울타리 너머로 밥 먹으라고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구부러진 하천에 물고기가 많이 모여 살듯이/ 들꽃도 많이 피고 별도 많이 드는 구부러진 길./ 구부러진 길은 산을 품고 마을을 품고/ 구불구불 간다./ 그 구부러진 길처럼 살아온 사람이 나는 또한 좋다./ 반듯한 길 쉽게 살아온 사람보다/ 흙투성이 감자처럼 울퉁불퉁 살아온 사람의/ 구불구불 구부러진 삶이 좋다/ 구부러진 주름살에 가족을 품고 이웃을 품고 가는/ 구부러진 길 같은 사람이 좋다.”
이 해가 다 가기 전에 마무리해야할 일이 매일 늘어만 가는 12월로 들어섰다. 자칫 행복지수가 바닥을 칠 수 있는 이 달에 ‘구부러진 길’을 자주 조곤조곤 암송하면서, 이 모퉁이만 돌아서면 나올 길을 구체적으로 그려보려고 한다. 아직 안 보이지만 조금만 더 가면 “들꽃도 많이 피고 별도 많이 드는” 길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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