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프라이데이, 스몰 비즈니스 새터데이, 온라인 먼데이… 바야흐로 샤핑 시즌이다. 백화점등 소매업체들은 연중 최고의 대목을 맞아 분주하고, 소비자들은 선물 목록 만들어 샤핑몰을 헤집고 다니느라 몸도 마음도 바쁘다.
특히 주부들은 더 나은 물건, 더 나은 가격을 찾느라 발품을 팔다 보면 연말 매 주말마다 파김치가 되곤 한다. 그렇게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도중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한 해의 끝을 이렇게 보내도 되는 건가.”
추수감사절에서 성탄절, 새해로 이어지는 연말이 소비문화에 점령당한 지 오래다. 가족 친지들과 조촐하게 사랑의 마음을 나누던 전통이 상업주의에 이용당하면서 이제 ‘마음’ 은 뒷전이고 ‘물건’이 주인 행세를 한다.
연말은 불우이웃들의 어려움이 더 한 계절. 온통 ‘샤핑’에 쏠린 관심의 물꼬를 ‘자선’으로 좀 돌릴 길은 없을까 - 뉴욕의 비영리 봉사단체 ‘92가 Y’의 헨리 팀스 부소장은 생각했다. ‘블랙 프라이데이’ 하면 샤핑이 떠오르 듯 자선을 강하게 떠올리게 할 뭔가가 없을까 그는 구상을 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기부하는 화요일(Giving Tuesday)’이다. 온라인 먼데이 다음날을 ‘기부 화요일’로 정하고 올해 그 첫 시도를 했다. 지난 27일의 제1회 ‘기부 화요일’에는 2,500여 기업·자선단체들이 참여해 총 1,000만달러의 기부금을 모았다. 블랙 프라이데이에 첨단기기를 싸게 사서 신나는 만큼 ‘기부 화요일’에 뭔가 좋은 일을 해서 신나는 경험이 연말의 새로운 전통으로 자리 잡아야한다는 데 많은 사람들이 호응하고 있다.
미국은 자선의 전통이 강한 나라이다. 특히 부자들은 자선을 의무로 여기는 전통이 살아있다. 이번 ‘기부 화요일’을 적극 지원한 스티브 케이스 AOL 창립자이자 전 회장은 기부와 관련, 이런 말을 했다. “돈으로 할 수 있는 건 세 가지이다. 자녀들에게 물려주거나, 누군가에 게 맡겨 내가 죽은 후 자선사업을 하게 하거나, 내가 직접 다 나눠주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직접 기부하겠다며 빌 게이츠, 워렌 버핏 등 미국의 대표적 기부 대열에 동참했다. 버핏은 재산의 99%를 기부하기로 서약했고, 게이츠 부부는 빌 & 멜린다 게이츠 재단을 통해 이미 280억달러를 기부했다. 아프리카 아시아 등 제3세계 어린이들의 교육, 보건 등을 지원해온 게이츠가 지금 추진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화장실 혁명’이다.
21세기인 지금도 세계 인구의 40%는 제대로 된 화장실을 쓰지 못하고 있다. 열악한 간이변소나 야외에서 용변을 보는 사람이 25억명에 달한다. 그로 인해 식수 오염 등 위생문제가 심각하고, 무엇보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에 관계되는 문제라며 게이츠는 화장실 개선에 650만 달러를 투자한다.
그들은 그 엄청난 재산을 왜 그냥 내어놓는 것일까? 한 푼이라도 더 챙겨서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것이 보통 부모들의 마음이 아닌가. 태산 같은 돈을 벌어본 그들은 돈의 특성을 잘 알기 때문이다. 노력하지 않고 얻는 돈은 말 그대로 ‘돈 벼락’, 돈으로 자녀들의 인생을 망치는 우를 범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돈은 최선의 하인이자 최악의 주인”이라는 베이컨의 말, “알맞으면 복이 되고 너무 많으면 해가 되나니, 세상에 그렇지 않은 것이 없거니와 재물에 있어서는 더욱 그것이 심하다”는 장자의 말을 그들은 행동으로 따른다.
둘째는 사회적 책무 의식이다. 엄청난 부를 축적했으면 이를 사회로 환원해 다른 사람들의 삶을 개선할 의무가 있다는 의식이 뿌리 깊다. 20세기 초 전 재산을 내어놓고 사망한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의 기부철학을 버핏과 게이츠가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 “부자로 죽는 것은 불명예”라는 명언을 남긴 카네기는 기부규모에 있어서 여전히 최고기록을 유지하고 있다.
셋째는 아마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끈을 보는 눈이 있기 때문일 것 같다. 내 가족, 내 이웃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서로 연결된 한 가족이라는 인식이다. 게이츠 부부는 아프리카에 특히 관심을 갖고 지원하고 있다. 그 계기가 된 것은 1993년의 사파리 여행이었다. 재미있고 즐거운 여행이었지만 그런 한편으로 어쩔 수 없이 그곳 사람들의 삶이 눈에 들어오더라고 게이츠 부부는 말했다.
12월을 인디언들은 ‘무소유의 달’이라고 부른다. 울창하던 잎과 꽃 열매를 다 내어주고 맨 가지로 서있는 나목이 떠오른다. 한 해의 끝 혹은 한 인생의 끝은 내어줌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순리일 것 같다. 넉넉하게 나누는 연말이 되었으면 한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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