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80년 80세로 사망한 ‘서스펜스의 장인’ 알프레드 히치콕이 올해 새삼 각광을 다시 받고 있다. 얼마 전 히치콕의 걸작 ‘버티고’(1958)가 영국의 권위 있는 영화 전문지 ‘사이트 & 사운드’에 의해 그 동안 줄곧 챔피언 자리를 지켜온 오손 웰즈의 ‘시민 케인’을 제치고 사상 가장 훌륭한 영화로 선정됐다.
이어 지난 10월에는 히치콕이 ‘새들’을 만들 때 주연으로 기용한 금발 미녀 티피 헤드렌에 대한 병적 집착을 그린 ‘걸’이 케이블-TV HBO에 의해 방영됐다. 히치콕 역은 토비 존스가 했다.
한편 지난 23일에는 히치콕이 ‘사이코’를 만드는 과정과 그와 아내 알마 레빌과의 관계를 코믹하게 다룬 ‘히치콕’이 개봉됐다. 여기서는 앤소니 합킨스가 히치콕으로 나온다.
그리고 케이블-TV A&E는 내년 봄 방영을 목표로 현재 ‘사이코’의 주인공으로 외디퍼스 콤플렉스 증상이 있는 노만 베이츠의 어린 시절을 다룬 시리즈 ‘베이츠 모텔’을 만들고 있다.
그런데 ‘걸’과 ‘히치콕’에서 특기할 만한 사실은 히치콕의 탁월한 협조자이면서도 늘 남편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알마가 비로소 정면으로 부상한다는 점. 알마는 히치(히치콕의 애칭)의 제작 동료요 오른 팔이며 자문 노릇을 하면서 항상 남편의 일거수일투족을 그의 옆에서 지켜본 충실한 아내였다. (사진) ‘걸’에서는 이멜다 스턴튼이 그리고 ‘히치콕’에서는 헬렌 미렌이 각기 알마로 나온다.
알마는 지난 1920년대 베를린에서 히치콕을 처음 만났을 때 이미 독일 영화사 우파의 떠오르는 스타로 자리 매김을 하고 있었고 히치콕은 그 당시 영화사에 일자리를 구하고 있던 처지였다. 그런데도 알마는 히치콕과 결혼을 한 뒤로는 묵묵히 남편을 내조하면서 그의 성공만을 위해 전 생애를 헌신했다. 알마는 히치콕의 각본 검토가요 작품 내용 협의자이며 콘티와 음향 담당자였는데 히치콕도 알마를 절대적으로 신뢰했었다.
영화 ‘히치콕’을 보면 알마가 이 영화 제작에 얼마나 깊이 그리고 창조적으로 개입했는지가 잘 묘사돼 있다. ‘사이코’의 가장 충격적인 ‘샤워 신’에서 베이츠 모텔에 투숙, 욕실에서 샤워를 하다가 노만(앤소니 퍼킨스)이 휘두르는 식칼에 난도질을 당해 욕조에 쓰러진 재넷 리의 모습을 남편과 함께 편집하던 알마가 한 컷에서 죽은 재넷 리가 침을 삼키는 것을 발견, 이 부분을 잘라냈다. 이 컷은 오직 알마의 형안만이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샤워 신’을 더욱 충격적으로 만든 버나드 허만의 현들이 미친 듯이 리드미컬한 불협화음을 내는 음악도 알마가 고집해서 쓰여졌다. 히치콕은 이 장면을 음악 없이 만들려고 했으나 알마의 주장을 따른 것인데 이는 히치콕이 그만큼 알마의 말을 믿었기 때문이다.
히치콕이 티피 헤드렌과 베라 마일스 등 자기 영화에 쓴 금발미녀들에게 집착했던 사실은 그 동안 공개된 비밀처럼 취급돼 왔으나 이제 이 두 영화로 인해 온 세상이 다 알게 됐는데 알마도 남편의 그런 증세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알마는 남편의 이런 편집광 증세를 못 본 척 했는데 히치콕의 금발미녀 애착증에 관해서는 서로 다른 의견들이 있다. 히치콕이 금발미녀를 좋아한 것은 사실이나 영화에서처럼 광적으로 집착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 그의 영화에 나오고 또 그의 친구였던 노만 로이드(98)의 말이다.
로이드는 최근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히치콕이 금발미녀를 병적으로 좋아했다는 것은 과장됐다”면서 “히치콕이 이를 부인 안한 까닭은 선전의 귀재인 그의 자기 영화를 위한 작전”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오직 남편 영화의 성공만을 위해 애쓴 알마도 히치콕의 이런 태도에 동조했다. 둘 다 모두 막대한 부를 가져다주는 영화의 성공을 위해서는 과장된 소문 정도는 묵인할 줄 아는 노회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얼마 전 ‘걸’의 기자회견에서 만난 헤드렌의 말은 이와 아주 다르다. 그는 “히치콕은 내 옷을 골라주고 데이트 상대까지 간섭하고 내 필적까지 분석했다”면서 “그는 내게 강제로 키스를 하고 스토커처럼 따라붙었다”며 맹렬히 비난했다.
히치콕이 금발미녀들에게 집착하게 된 까닭은 그와 알마 간의 불편한 성관계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히치콕은 키 5피트가 채 안 되는 알마와 생전 딱 한번 성관계를 가졌다는 것. 여기서 나온 딸이 아버지의 영화 ‘사이
코’와 ‘열차 안의 낯선 사람들’에 단역으로 나온 패트리샤(84)다.
히치콕 전문가들은 고약한 유머를 좋아하던 히치콕이 자신의 이런 성적
불만을 해소하는 수단으로 영화에서 금발미녀들을 학대하고 죽여 버리기까지 했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히치콕과 알마 간의 성적관계가 어땠던 간에 알마는 히치콕의 작품 활동에 지극한 기여를 해 그의 천재성을 더욱 빛나게 해준 숨은 공로자였다.
<박흥진 편집위원/ hipark@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