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우리 막내 아들이 사십이 되었다. 그애가 사십이 되고보니 정말 이제 내가 늙었구나 하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사실은 나도 막내 딸로 태어났다. 이상하게 내 주변에는 막내들이 많다. 막내들의 성격적인 특징은 쾌활하고 긍정적인데 비해 좀 이기적인 면도 없지 않아 있다. 그래서 막내들은 막내 티를 낸다고 하나 보다.
여러 명의 형제들 중 제일 마지막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가족들의 귀여움을 독차지 하지만 부모들이 나이가 많아서 손해를 보는 경우도 있다.
나는 우리 아버지가 거의 육십이 되어 태어났기 때문에 내 나이 다섯살에 아버지를 잃어 버렸다. 언니들은 어릴 때 기억으로 보면 아버지를 무서워 하고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나는 아버지와 함께 자기도 하고 살아 있을때 아버지의 사랑을 흠뻑 받았다. 아버지는 다섯살인 나를 유치원에 데리고 가기도 하고 또 데리러 오셨다.
그 시절 나는 알록달록한 원피스에 앞치마가 달린 에프론을 하고 다녔는데 아버지는 아침마다 알사탕 두개를 그 작은 주머니에 넣어 주시곤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나는 다른 애들이 ‘아버지!’하고 달려갈 때마다 그들이 부러워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곤 했다. 아버지가 없던 내 어린 시절은 아버지를 그리워 하는 마음으로 점철되곤 했다. 아마 그런 그리움이 밑바닥이 되어 나는 일찍부터 시를 쓰고 문학을 지향하게 되었나 보다.
우리 막내 아들도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 그애는 심성이 여리고 착해서 가족들 간에는 물론이려니와 주변에 많은 친구들이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같이 자란 친구들을 지금도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다.
자식 자랑은 바보들이나 한다고 하지만 그애는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배려심이 넘쳐서 말하자면 전형적인 젠틀맨이다. 우리 막내 며느리도 그애의 외모보다 그런 성격에 반했다고 한다. 그들 부부가 결혼한 지도 벌써 십년이 지났다.
그애들은 한국에서 만났다. 십여년전 한국에 뿌리를 찾아 갔다가 며늘애를 만나서 그곳에서 아들 애는 삼년을 연애하고, 결국은 며늘애의 부모들의 반대도 극복하고 결혼에 골인했다.
처음엔 결혼에 반대하던 사돈들이 이제는 사위라면 껌뻑 죽는다. 그들이 한국에 귀국할 때마다 아들의 장인은 주변의 친구들에게 사위 자랑에 입에 침이 마른다고 한다. 아마 우리 아들애의 친절함과 배려에 반한 것 같다.
사돈 부부가 미국에 왔을 때 영어를 잘못 발음해서 지적을 받을 때마다 우리 아들은 극구 장인의 편이 되어 변명을 해주곤 했다. 무릎이 신통치 못한 장인의 손을 잡고 여행을 할 때마다 길 안내가 되어준 것도 아들이었다. 얼마 전 거의 사십년 만에 영구 귀국하신 우리 큰언니도 쟈니의 친절함에 목이 메시고 결국 울면서 헤어졌다.
"나는 그애한테 별로 해준 것도 없는데 돈까지 주니 내가 몸둘바가 없구나"그렇게 말하면서 자꾸만 뒤를 돌아보다가 헤어졌다.
그들 부부는 소문난 잉꼬 부부다. 그로서리 쇼핑도 함께 하고 무엇보다 정원 일을 할때면 늘 며느리가 뒷마당에 나가 도와준다. 몸집도 호리호리하고 가느른 애가 전기톱까지 들고서 일을 하는걸 보면 슬그머니 웃음도 나오고 기특하기도 하다.
나는 젊을 때 남편을 도와준 적이 없다. 예쁜 꽃이나 가꾸었지, 잡초도 한번 뽑은 기억이 없다. 우리집은 늘 정원이 큰 집에 살았지만 잔디도 깍고 늘 일하는 사람은 남편이었다. 바깥 날씨가 구십도가 넘었던 텍사스에서도 테니스는 열일을 제쳐 놓고 치러 나갔지만 정원 일은 본척도 하지 않았다.
이제 세월이 한참 지나서 우리 아들 부부를 볼 때마다 나는 좀 남편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며느리는 아마 제 남편을 너무 사랑해서 일할 때도 함께 있고 싶어서일까. 아무튼 그애들을 보면 알콩달콩 산다는게 저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좋은 배우자를 만난다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성공한 것이라고들 말한다. 그런 면에서 그들 부부는 성공한 사람들이다. 한가지 아쉬운게 있다면 아직 슬하에 자식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공평한 것이라고들 사람들은 말하는 것일까. 모든 것을 다 가졌다면 누가 신께 부르짖고 기도하겠는가. 인간들은 간사해서 자신들이 필요할 때만 하나님을 찾는 존재들이다. 아마도 망각이라는 병을 우리들은 모두 가진 것 같다.
내 큰 아들은 오십이 넘었고 막내도 이제 사십이라는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고 보니 마음이 쓸쓸하기 짝이 없다. 내 자신이 늙어서 보다 자식들이 나이 먹고 하루하루 늙어 간다는 생각이 더 서럽고 슬프다.
오늘은 가을이 깊어서 첫번 찾아온 우기다. 아름답게 채색 되었던 단풍잎들이 간밤에 내린 비에 하나둘씩 떨어지고 있다. 오솔길에는 낙엽들이 수북히 쌓여가고 내 가슴 속에 우수가 몰려 든다.
생각해 보니 다음주면 추수 감사절이다. 온 가족들이 다 모이고 손주들 때문에 즐거운 시간이 될 것 같다. 가난했던 조국을 등 뒤에 하고 이 멋진 미국이라는 나라에 와서 내 아이들과 또 자라날 손주들이 이 나라에서 당당하게 주인으로 살아갈 것이 감사하고 또 기쁘기 짝이 없다. 무엇보다 내게 막내가 있어서 내 삶은 즐겁고 풍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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