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시간이 30분이 지나도록 샘은 나타나지 않았다. 은행 입구에서 계속 나를 주시하던 선글라스의 경비원이 결단을 내린 듯 성큼성큼 내게 다가왔다. 그는 오른 손을 옆구리에 찬 권총에 얹은 채 위압적인 어투로 내게 명령했다.
“볼일이 없으면 당장 여길 떠나시오!”
나는 산타아나의 한 뱅크 오브 아메리타 지점에서 노숙자인 샘의 저축계좌 개설을 도울 계획이었다.
샘은 62세의 중국계 캄보디아인이다. 5피트 조금 넘는 땅딸막한 키에 몸무게는 170 파운드쯤 나간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일요일 아침마다 한인교회가 노숙자에게 아침을 제공하는 산타아나 시청 주차장 급식 현장에서였다. 200 명에 가까운 노숙자 가운데 그가 나의 관심을 끈 것은 지독한 체취와 비닐 주머니가 주렁주렁 매달린 쇼핑 카트 때문이었다.
그는 땀에 절어 반질반질해진 갈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 한여름에도 점퍼의 지퍼는 항상 턱 밑까지 채워져 있다. 일 년 이상 지켜보았지만 그는 옷을 갈아입지 않았다.
샘의 쇼핑 카트에는 쓰레기통에서 주은 알루미늄 캔, 플라스틱 용기와 유리 병 등 재활용품을 담는 세 개의 비닐 주머니가 매달려 있다. 그는 수거한 재활용품을 팔아 하루 25달러쯤 번다. 알루미늄 캔을 파운드당 1달러65센트, 플라스틱은 95 센트, 유리병은 11센트를 받는다. 25 달러를 벌자면 눈만 뜨면 쓰레기통 속에서 살아야 한다.
어느 일요일 아침, 샘이 나를 살짝 불렀다. 그는 점퍼의 지퍼를 조금 내리더니 점퍼를 펼쳐보였다. 700 달러를 주고 샀다는 금 목걸이가 목에 걸려있었다. 목걸이를 강도가 낚아채는 바람에 목이 졸려 죽을 뻔 했었노라고 털어놓았다. 그가 점퍼를 새로 구해 입고 지퍼를 턱 밑까지 바짝 올려 채우는 버릇은 바로 그 강도 미수사건 이후부터 시작되었다고 했다. 금 목걸이를 가리기 위해서였다.
그는 이어 지갑 안에서 꼬깃꼬깃 접은 낡은 종이를 꺼내 펼쳐 보여주었다. 입금 날짜와 금액이 적힌 전표였다. 총 입금액이 7,000달러가 조금 넘었다. 식당을 경영하는 캄보디아 동포가 그의 형편을 이해하고 현금을 보관해준다는 것이었다. 샘은 안전하다고 하지만 수납자의 이름도 서명도 없는 입금전표가 나는 도무지 미덥지 않고 불안하기만 했다. 노후를 위해 한 푼이라도 저축하려는 그에게 은행 저축계좌를 만들어주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일었다. 나는 그에게 은행 계좌 개설을 제안했고 그는 흔쾌히 동의했다.
아무래도 샘이 밤새 쓰레기통을 뒤지고 깜빡 잠에 떨어져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 같았다. 나는 은행을 떠나 그의 단골 휴식처인 산타아나의 메디슨 파크로 차를 몰았다. 샘이 이 파크를 애용하는 이유는 화장실에 문짝이 없고 카트의 출입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샘은 다른 공원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는 사이 종일 수거한 재활용품을 카트와 함께 몽땅 도난당한 경험이 있다. 그 뒤 그는 용변 중에도 카트 감시가 가능한 이곳 화장실을 줄 곳 이용했다.
파크에 차를 세우고 그가 잠들만한 곳을 둘러보았다. 나는 곧 큰 나무 그늘 밑에서 자고 있는 그를 발견했다. 샘은 엎어놓은 페인트 통에 동상처럼 앉아 잠들어 있었다. 앉아서 자는 것은 그의 새로운 잠버릇이다. 그는 등을 바닥에 대면 불안감이 스멀스멀 일어나 잠이 싹 달아났다. 잠든 사이 재활용품이 든 카트를 잃은 뒤 샘에게 나타난 증상이었다. 샘은 카트 걱정 없이 앉아서 단잠을 잘 수 있는 예방책을 고안해냈다. 10피트 쯤 되는 질긴 끈의 한 끝을 카트에 매고 다른 한 끝에 주먹이 들어갈 만한 고리를 만들었다. 잘 때에는 고리를 손목에 걸었다. 어느 도둑이 카트가 샘과 끈으로 연결되었다고 감히 상상이나 하겠는가.
샘은 그가 말한 대로 카트와 연결된 끈의 고리를 손목에 걸고 코를 골고 있었다. 손목의 고리는 마치 그를 옭아매고 있는 올가미나 포승줄 같았다. 그는 소유욕이 인간의 원초적 본능임을 온 몸으로 연기하는 행위예술가처럼 보였다.
샘이 일요일 급식현장에서 소문 없이 사라진지도 벌써 몇 개월이 흘렀다. 감사절이 다가오고 있다. 가진 것들을 헤아리며 감사의 조건을 찾다 문득 샘의 모습이 떠올랐다. 샘은 인간이 ‘소유적 동물’임을 전하고 갔다. 보이지 않는 소유의 올가미로부터 나도 벗어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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