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게일 에반스란 네 살짜리가 “브롱코 바마(버락 오바마)와 미트 롬니가 지겨워요”라고 훌쩍거리면서 말하는 장면이 유튜브에 떠올라 많은 사람들이 조회했었다는 사실은 미국 시민들 중 다수가 금년도 대선과정에 대해 식상함을 느끼고 있었다는 점을 잘 묘사한다.
한 시간 안에도 몇 십번씩이나 오바마와 롬니가 번갈아 나타나 상대방이 이기면 미국에 큰 탈이 날 것이고 자기를 지지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처럼 때로는 읍소(泣訴) 그리고 때로는 위협에 가까운 종용(慫慂)을 해댔으니까 선거가 끝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이게일과 그의 엄마만이 아닐 것이다.
쌍방의 격전지 중 하나였던 오하이오 주의 어떤 도시에서는 하루에 1,400건의 선거광고가 방송되었다는 보도마저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선거 메시지들이 뻔뻔스러운 거짓말이거나 참말과 거짓말이 반반 섞인 언사의 농간이었기 때문에 정권쟁취에 있어서는 정당들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역사가 반복되었다고 할 수 있다.
좌우지간 금년 선거는 양당 합쳐서 20억 달러였다는 추산이니까 미국 역사상 가장 비싸게 먹힌 선거였다. 워싱턴포스트의 퓰리처상 수상 칼럼니스트인 캐슬린 파커 여사는 선거직후의 글에서 20억 달러면 얼마나 많은 보험가입이 가능했을 것이며 얼마나 많은 허리케인 피해복구가 이루어졌을까를 한탄한다. “그래도 둘 다 좋은 사람들이다. 점잖으며 똑똑하며 재능을 타고 난 사람들이다. 좋은 남편들이며 아버지들이다. 그러나 우리의 정치제도는 성인군자들로부터도 선량함을 빼앗아 갈 수 있다”고 파커는 이어간다.
미국 정치제도의 큰 문제점중 하나는 선거에 드는 큰돈이다. 선거본부와 각 주와 각 도시마다 진치고 있는 선거운동원들의 보수는 물론이고 선거운동원들을 독려하기 위한 각종 이벤트에 드는 비용 또한 엄청나다. 그리고 TV 광고 등 선거홍보 비용은 밑 빠진 독에 물붓기식이다. 워싱턴 포스트에 흑백 전면광고를 하는데도 한번에 10만 달러가 드는 편이니까 청취자 수에 따라 들쑥날쑥하지만 특히 전국 네트워크의 경우 TV방송 비용이 대단할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 선거는 1972년 워터게이트 사건이래 전적으로 개인자금에 의해 진행된 첫 번째 대선이었다. 그와 아울러 연방 대법원에서 2010년에 회사들이나 각 이익단체들이 후보자들과 협의를 하지 않는 한 특정 후보의 정견을 지지하는 광고에 무제한 비용을 쓸 수 있다고 판결한 다음에 있게 된 첫 선거였다.
특히 각종 정치활동위원회(Political Action Committee, PAC)의 모금과 지출이 문제시되고 있다. 그 이유는 어떤 개인이나 회사가 정당이나 후보자에게 기부금을 내는데 있어서는 한도액이 있으며 기부자의 신분을 연방 선거위원회에 신고해야 하는 등의 투명성이 있는 반면 정치활동위원회에 내는 돈은 액수에 제한이 없을 뿐 아니라 제 3자나 급조된 단체를 통해 헌금을 하기 때문에 기부자의 신원을 알기가 어렵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나마 수퍼 PAC들은 결국은 선거 끝나고나면 모금 액수와 헌금 기부자들을 간접적으로나마 밝혀 IRS(501)(C)(4) 규정에 따르는 단체들 보다는 나은 편이란다.
연방선거위원회와 IRS를 전문으로 다루는 변호사들의 해석에 따르면 IRS규정에 의한 ‘사회복리’단체들은 시민들의 ‘공공교양’을 증진시키기 위해 활동하는 단체들로서 그런 활동을 지지하는 기부자들의 신원을 밝힐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이 법의 허점을 발견하게 자기들 고객의 이익을 대변하는데 부지런하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예이다.
IRS(501)(C)(4) 규정을 원용하는 단체들 중에는 보수를 지지하는 단체들만이 아니라 진보를 선호하는 노동조합들도 있어 피장파장이다. 롬니가 여러 명으로부터 돈을 받아 기부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밝히기를 거절했다면 오바마는 대통령직 수행 중에도 헐리웃이나 뉴욕 등지에 모금을 위해 자주 방문하는 등 어느 선에서 공무가 끝나고 어느 선에서 재선운동이 시작되는 지가 알쏭달쏭한 인상을 주어왔다.
그리고 1% 아니 0.1%에 속하는 대부호들의 정치헌금도 문제다. 라스베가스의 카지노 부호 한 사람이 자기 부인과 함께 이번 선거에 무려 5,300만 달러를 기부했다는 것이 단적인 예이다.
선거에 돈이 들어가는 것은 철칙이다. 또 돈을 모으는데 무리가 뒤따르며 선거헌금을 한 사람들이나 단체들이 각종 형태의 반대급부를 자기들 돈으로 집권한 정권에게서 기대하는 것이 현실이다.
왕정, 귀족정치, 과두정치, 공산주의, 전체주의 보다는 민주주의가 낫다고 정치학자들이 설파하지만 민주주의의 결함이 선거전에서 드러나는 것을 보면 환멸을 느끼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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