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이고 버무려‘엄마 손맛’ 재현해 볼까
▶ 섭씨 0~5도에서 4~6주 지나면 숙성
임진왜란 후 도입된 고추를 가지고 우리 선조들은 ‘김치’라는 세계 식품사상 획기적이고도 위대한 발명을 해냈다. 발효돼 우러나는 김치의 맛깔스러운 ‘삭은 맛’은 세상 어떤 식품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8월에 심은 배추와 무가 통통하게 자라 가장 맛이 좋아지는 계절, 11월의 김장은 고된 연중행사이면서 동시에 즐거운 이벤트이다. 어렸을 적 김장하는 날의 재미있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김치 버무릴 때 엄마 옆에 앉아 입에 쏙쏙 넣어주시는 생김치를 얻어먹으며 느꼈던 행복, 김장을 마치고 겉절이를 흰밥에 얹어 겁도 없이 마구 먹고 나서 속 쓰리고 배 아파 고생했던 경험, 기다리고 기다려 잘 익은 김치의 톡 쏘는 맛에 함성을 지르던 그 모든 기억이 김치 속에 고스란히 들어 있다.
옛날 우리 조상들의 김장하는 날은 어땠을까. 김장 항아리는 모두 깨끗이 씻어 볕에 말려놓고, 고추는 마당에서 빨갛게 말린 다음 그 것을 하나하나 손으로 닦아서 빻은 고춧가루를 준비한다. 봄에 담근 멸치젓국을 달여 걸러내고, 젓갈 가게나 행상에서 육젓을 넉넉히 사두기도 한다. 찹쌀방아를 찧어 찹쌀 풀을 준비하며, 살얼음 낀 밭에서 신선한 배추와 무를 뽑아내어 잘 씻어 손질한다. 따뜻한 날을 잡아 품앗이로 일손을 나누고, 하루 종일 함께 만든 김치를 나누어 가진다.
요즘의 김장과는 크게 다른 모습이지만 이 김장의 계절에 자연의 어김없는 섭리와 노동의 수고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보면 좋겠다. 거기다 김치 속의 미생물들의 작용으로 기가 막힌 맛을 내며 김치를 익혀가는 과정은 아이들에게 설명만 해주어도 한편의 근사한 이야기가 탄생할 만큼 복잡하고 흥미롭다.
모든 것이 간소화되고 편리한 지금, 사먹을 수도 있고, 절인 배추를 배달받아 버무리기만 하면 되는 간편함도 있지만 직접 담근 김치의 그 ‘귀함’은 어디에도 비할 수 없다. 김장을 처음 시도하는 사람이나 외국인들에게 전해 주어도 무리 없이 성공적인 김치를 만들 수 있는 정확한 배추김치 레서피를 알아보자.
즐거운 이벤트였던 김장하는 날
갓 담은 생김치 맛있게 먹던 추억
직접 만들어 이웃에 선물해 보자
* 어릴 적‘엄마 김치’가 그리운 이유는 무엇일까?
맛은 짠맛이나 단맛처럼 혈중염도와 혈중당도를 좌우하는 생리적인 맛과, 신맛 쓴맛처럼 정서를 좌우하는 정서적인 맛으로 나눌 수 있다. 어릴 때부터 체질화된 어머니의 손맛대로 먹어야 생리나 정서가 안정되는 데서 기인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며느리가 시집의 손맛을 익혀서 음식으로 남편의 생리와 정서를 안정시켜 줄 의무가 있다고 여겨왔다. 이처럼 항상 어머니의 음식과 김치 맛이 그리운 것은 머리와 마음에 각인되어 쉽게 바뀌지 않는다.
■ 쉽게 만드는 배추김치 레서피
<통배추 김치 만들기>
▶재료 배추 4포기(1포기에 2.5kg 정도), 굵은 소금 1kg, 물 10리터, 무 2개(개당 1.5kg 정도), 쪽파와 갓 각 200g씩
<양념재료> 고춧가루 1½컵, 액젓 1컵, 신선한 생새우 200g(또는 새우젓 1/4컵), 양파 150g, 마늘 80g, 생강 20g, 설탕 ⅔컵(선택), 소금 약간
▶만들기
1. 배추는 떡잎과 상한 잎을 떼 내고 뿌리 쪽에 칼을 넣어 1/4정도 가른 후, 손으로 나머지를 쪼갠다. 배춧잎까지 칼로 잘라내면, 나중에 배추를 절이고 씻을 때 속잎 부분들이 모두 떨어지게 된다.
2. 통에 물을 붓고 소금을 ⅔분량을 풀어 소금물을 만든다. 여기에 1의 배추를 담갔다 건져서 큰 통에 담는다. 줄기 쪽만 물에 흔들어 웃소금을 뿌려 8시간 동안 절인다. 중간에 두 번 정도 아래위를 바꿔준다.
3. 배추가 다 절여지면 잎 사이사이를 물에 흔들어 3회 정도 씻어서 엎어놓아 물기를 뺀다.
4. 무는 씻어서 껍질을 벗기고 가늘게 채 썬다.
5. 믹서에 분량의 양파, 마늘, 생강을 넣고 생새우와 액젓을 부어서 간 다음 볼에 쏟아 고춧가루와 설탕(선택)을 섞는다.
6. 뿌리를 자른 쪽파는 겉잎을 벗기고, 갓은 떡잎을 떼 내고 뿌리 끝을 다듬은 다음 모두 씻어 물기를 빼고 4cm 길이로 썬다.
7. 4의 채 썬 무에 5의 양념을 버무리고 6의 쪽파와 갓을 넣어 버무린다. 이때 배추 절인 것에 싸서 먹어보고 약간 짠 듯해야 익었을 때 간이 맞는다. 싱거우면 소금을 가감한다.
8. 3의 배추는 길이로 반 쪼개서 뿌리 부분을 저며 내고 물기를 짠 다음 배춧잎 사이사이에 7의 소를 골고루 펴 넣는다. 그런 다음 잎 부분을 접어서 겉잎으로 싼 다음 김치통에 배추 속부분이 위로 보게 담는다. 뚜껑을 덮고 실온에서 익혀 냉장 보관한다.
가을엔 시원담백한 김치가 생각나
■ 집에서 해보는 물김치 레서피
섞박 동치미
잔치상 · 고기요리에 어울려
늦가을이나 초겨울에 제철의 신선한 무 배추를 섞어 담근 국물김치인 섞박 동치미는 가을 겨울의 밥상을 더욱 생기 있게 만들어 주는 반찬이다. 모양이 볼품 있고 격이 있으며 바비큐, 찜, 산적 같은 각종 고기요리는 물론이고, 떡에도 잘 어울려 잔치음식으로도 그만이다. 낼 때는 무와 배추를 먹기에 알맞은 크기로 썰어 담고, 붉은 고추는 썰지 않고 그릇에 띄워 장식한다. 입맛에 따라 설탕이나 매실청, 얼음 등을 김치 그릇에 첨가해 내도 좋다.
▲재료
무 2kg(신선하고 연한 것으로 깨끗이 씻어 소금물에 담가 숨죽인다), 배추 2kg(무와 같이 소금물에 담가 숨죽인다), 붉은 고추 4개, 대파 1컵, 마늘 1/2컵(가늘게 채 썬다), 생강 1/3컵(가늘게 채썬다), 식수와 소금
▲만들기
1. 숨죽인 무는 두 쪽, 배추는 네 쪽으로 쪼갠다.
2. 쪼갠 배추 속에 무, 고추, 마늘, 생강, 파를 넣고 배추를 반을 접는 듯 둥글게 말고, 배추의 겉잎으로 감싼다.
3.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게 단단히 쥐고 통에 담는다. 눌림을 하고 뚜껑을 덮어 하룻밤 재운다.
4. 다음날 소금물(농도 3%)을 가만히 붓는다. 소금물은 내용량의 4-5배가 적당하며, 보통 김치 통을 가득 채우면 된다. 재료의 양을 고려해서 알맞은 크기의 김치 통을 선택하면 된다.
5. 섭씨 0도 내외에서 약 4-5주간 익히면 가장 맛있다.
더덕 물김치
더덕도 김치 종류로 훌륭
더덕은 보통 구이나 무침, 막김치형 절임으로 요리하는데, 산사의 공양식에서 물김치로도 담근다. 일반인에게는 생소하지만 김치 종류로 훌륭하다.
▲재료
생더덕 3kg(2% 소금물에 2-3시간 담가둔다), 무 0.5kg(나박김치 담그듯 네모로 썬다), 미나리 0.5kg(줄기를 4cm 길이로 썬다), 파 2컵(4cm 길이로 썬다), 마늘 1/3컵(곱게 채 썬다), 생강 1/4컵(곱게 채 썬다), 붉은 통고추 1/2컵(꼭지를 떼고 두 쪽으로 갈라 씨를 빼서 어슷 썬다), 밤 1/2컵(곱게 채 썬다), 잣 1/3컵, 실고추 1/4컵, 소금 약간
▲만들기
1. 소금물에서 더덕을 건져 칼등으로 두들겨 조직을 부드럽게 한다. 4cm 길이로 썰어 무와 함께 통에 담는다.
2. 미나리, 파, 마늘, 생강, 고추, 밤, 잣을 넣고 실고추도 뿌려 넣어 섞는다. 소금으로 간을 맞춘 국물을 붓고, 병을 가만히 흔들어 고루 섞이게 한다.
3. 2-3시간 뒤 국물 간을 알맞게 맞춘 다음, 시원한 곳에 두어 익힌다.
언제 먹느냐 따라 부재료량 조절… 화학첨가제, 자연발효 방해
<그밖에 알아둘 것>
*온도-김치의 저장온도는 온전한 발효숙성을 위해 영상의 낮은 온도일수록 바람직하다. 숙성을 위한 실험에서 김치는 평균 섭씨 0~5도에서 4-6주면 숙성된다. 그 후 6~8주 동안 맛에 큰 변화 없이 PH 4.0 내외 상태로 품질이 유지된다.
*부재료의 역할-첨가 젓갈의 종류와 풀죽의 가루 종류, 입맛에 따라 첨가하는 각종 재료, 밤, 대추, 잣, 배, 사과 등은 김장의 목적인 장기간 저장에는 저해요인이 될 수 있다. 김장 김치에는 이듬해 늦은 봄까지도 보존되도록 염분 함량을 높인 것에서부터 염분함량이 낮은 것, 주재료 자체를 달리한 종류가 있는데 어느 것에도 풀죽, 설탕, 인공조미료 등을 첨가하면 저장성은 낮아진다.
*화학 첨가제-시판용 김치에는 방산제, 항생제, 중화제 등이 들어간 경우가 많다. 이는 김치의 자연발효(숙성)를 주도하는 인체에 유익한 미생물의 활동번식이 억제되며, 이상발효를 일으킨다. 이로써 김치의 향과 색상, 조직이 변화돼 본래의 맛을 잃고, 자연발효로 형성되는 풍미도 잃게 된다.
재미있는 김치 이야기
한국인 유별난 김치 사랑은
타인종 못 느끼는‘삭은 맛’ 탓
*심기가 불편하면 김장을 망친다?
조상들은 김치 절이는 날, 일을 도맡아하는 며느리가 화가 나지 않도록 철저히 보호했다. 김장거리를 절이는 날 며느리의 심기가 불편하고 불안하면 그해 김치 맛은 끝장나는 것으로 알았는데, 이는 미신적인 의미 때문이 아니라 체험에 의한 것이며 과학적인 근거도 있는 관습이다. 화가 났거나 심기가 불편하면 염분의 혈중농도에 이상에 생기면서 미각을 교란시켜 간을 별나게 짜게 보게 된다는 사실. 김장하는 날은 힘든 노동이지만 마음만은 즐겁고 재미있게 일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져야 맛있는 김치를 겨울 내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한국인은 왜 김치를 잊지 못할까?
외국에서 살 때는 물론이고 잠시 여행 중에도 김치와 고추장을 못 잊어 부지런히 싸서 다니는 민족은 우리뿐이다. 이민 3세대가 사는 집에도 주거형태와 방식은 서양식이라 하더라도 음식은 한식을 먹는 경우도 많고, 보통 한국인이 외국에 나가면 현지 음식만으로는 서너 끼를 못 넘기고 한식을 찾게 마련이다. 유독 별나 보이는 한국인의 한식 사랑은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혓바닥에는 짜고, 달고, 시고, 쓰고, 매운 다섯 가지 맛인 오미를 감지하는 공간 즉 ‘미역’이 있다. 서양인의 혀는 한국 사람과 달리 제6의 맛인 삭은 맛을 느끼는 감각이 발달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간장, 고추장, 된장으로 구성된 기조식품이 발효에 의한 삭은 맛을 내고 이로 만든 젓갈, 장아찌, 찌개 등 많은 음식이 모두 삭은 맛을 내는 범주에 속해 있다.
한국 사람이 중국 음식을 먹을 때 예외 없이 간장을 찍어 먹거나, 외국에 나가서 양식을 몇 끼 못 먹고 한식으로 돌아오고 마는 맹렬 회귀성도 모두 우리의 체질과 혀에 각인된 ‘삭은 맛’의 기억 덕분이다. 고깃국은 질려서 몇 끼 못 먹지만 된장국이나 김치는 평생 먹어도 괜찮은 이유는 고깃국이 느끼해서가 아니라 삭은 맛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은영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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