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준우가 만난 셰프들
▶ 교카이젠 황다훈 셰프
한국 돈가스계는 그야말로 춘추전국시대다. 대중에게 익숙한 메뉴라 저마다 작은 디테일에서 승부를 건다. 이 중에서도 최근 돈가스 애호가들의 주목을 끄는 곳이 있다. 경기 안양시의 돈가스 전문점 교카이젠(境界線)이다. 이곳의 특별함은 메뉴판에서 드러난다. 포항 송학농장 토종돼지, 제주 삼호농장 난축맛돈, 남원 다산육종 버크셔K, 예산 호은농장 순종듀록, 횡성 우리들농장 퀸즈포크, 경산 덕유농장 우리흑돈, 김천 한마음농장 지례흑돈 등 8, 9가지 서로 다른 지역과 품종의 돼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표기해 놨다. 돼지고기는 품질 관리가 까다로워 식당에선 여러 품종을 취급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황다훈(33) 교카이젠 셰프를 만나 굳이 어려운 길을 걷게 된 연유를 물었다.
■ 돼지고기라고 다 같은 게 아니다황 셰프도 처음은 막연한 아이디어로 출발했다. “일본에서 여러 품종의 돈가스가 있는 걸 봤어요. 선택해서 비교하며 맛볼 수 있는 점이 재미있더라고요. 그래서 찾아보니 우리도 생각보다 많은 품종의 돼지가 있다는 걸 알게 됐죠."
한국에서 생산되는 돼지고기의 98%는 품질과 생산성을 고려해 요크셔(Y), 랜드레이스(L), 듀록(D)을 교잡해 만든 삼원교잡종(YLD)으로 흔히 ‘백돈'이라고 부른다. 일반 고깃집이나 대부분의 돈가스집들도 백돈을 사용한다. 시장이 한쪽으로 완전히 쏠려 있지만, 한국에서 다양한 품종을 키우려는 노력도 한편에서 계속되고 있다. 교카이젠이 돼지고기를 공급받는 농장들이 대표적이다.
“다 같은 돼지고기가 아니더군요. 어떤 고기는 깔끔한 맛과 산미를 내고, 어떤 것은 감칠맛과 단맛이 강해요. 이런 미세한 차이들을 알고 맛보면서 동시에 생산자의 마음을 이해하고 먹는 것, 이게 진짜 미식이 아닐까요."
황 셰프의 요리 여정은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시작됐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자 중학교를 자퇴하고 무작정 일본으로 향했다. 유명 일본 만화 ‘미스터 초밥왕'의 주인공처럼 일단 부딪혀 보자는 심정이었다. “누가 중학생을 써주겠어요. 3년 동안 요리는커녕 우동집, 이자카야 등에서 허드렛일을 했죠.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무모한 선택이었지만 그 경험이 지금의 저를 만든 것 같아요."
검정고시를 위해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는 내세울 경력도 없었지만 운 좋게 압구정 ‘스시 마이’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요리를 배웠다. 카운터가 아닌 뒷주방에서 일식의 기본기를 쌓았는데, 이때 튀김요리에 대한 감각을 익혔다. 특별한 레시피대로 하기보다는 온도와 손끝의 감각을 통해 재료를 다루고 결과물을 내는 일이었다. 스시를 쥐고 싶었지만 직접 손님에게 요리를 선보일 기회를 얻기까지는 너무 오랜 시간이 필요했던 그는 결국 독립을 결심하고 고향인 안양에 가게를 얻었다.
■ 돈가스의 주인공은 '고기'“사실 돈가스를 할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그냥 내 음식을 한번 해보고 싶었는데, 부동산 사장님이 주변에 돈가스집이 없으니 한번 해보라고 하시더군요." 튀김에 대한 경험도 있겠다 싶어 처음에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보통의 바삭한 돈가스를 만들어 냈다. 하지만 일본의 유명 돈가스집인 나리쿠라에서 돈가스를 맛보고는 노선을 바꿨다. 나리쿠라는 100도 정도의 낮은 온도에서 천천히 익혀 내는 저온조리 돈가스로 유명하다. “겉은 하얗고 바삭하지도 않고 낙엽 같은 느낌인데, 정말 맛있는 거예요. 튀김보다 고기의 맛이 선명하게 느껴지면서 돈가스의 주인공은 고기구나 깨달았죠."
고기 본연의 맛을 살리는 요리를 하겠다고 결심한 그는 한국 돼지농장을 무작정 찾아다녔다. ‘일반 돼지의 10배나 비싼 우리나라 토종 돼지'라는 기사를 읽고는 송학농장을 찾았다. 여기서 이한보름 대표와 만나 토종 돼지에 대한 사연을 들은 황 셰프는 그때부터 차별화를 위한 요행이 아닌, 요리 음식의 진정한 가치와 철학을 고민하게 됐다.
이후 각 농장을 다니며 공부했다. 버크셔K를 개발한 박화춘 박사는 순종 혈통 유지에 대한 확고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고, 호은농장은 한국 최대 규모의 스마트팜으로 냄새 하나 나지 않는 지속가능한 축산업의 모델을 보여줬다. 하지만 농장주들이 공통적으로 토로하는 건 경제적 어려움이었다. “1980년대부터 돼지고기 도매가격이 ㎏당 6,000원에서 더 오르지 않았다고 해요. 40년이 지났는데도 말이에요. 인건비는 몇 배가 되었는데 원료 가격은 그대로니까 농장들이 힘들 수밖에 없죠." 이런 현실을 접하며 그는 단순히 좋은 재료를 쓰는 것을 넘어, 지속가능한 축산업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됐다.
■ '테이블투팜'을 위해그가 추구하는 것은 1차, 2차, 3차 산업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다. “박화춘 박사님이 ‘팜투테이블이 아니라 테이블투팜이 되어야 한다'고 하신 게 인상적이었어요. 식탁에서 먼저 가치를 찾아야 농장까지 이어진다는 뜻이죠. 지속가능한 농업이 가능하려면 소비자들도 더 비싼 값을 지불할 의향이 있어야 하는데 그 이유를 저 같은 요리사들이 만들어 줘야 하는 거죠. 더 나은 재료에 합당한 값을 지불하면 농장은 더 좋은 환경에서 돼지를 키울 수 있고, 결국 소비자는 더 맛있고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는 거죠."
교카이젠이라는 이름의 의미도 그의 철학에 따라 변화했다. 원래는 핀란드의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젠'에서 영감을 받아 ‘경계선'이라는 뜻의 일본어를 사용했다. 처음에는 일반 음식점과 레스토랑의 중간 단계라는 의미였지만 품종 돼지를 다루면서 의미가 바뀌었다.
황 셰프는 교카이젠의 특별한 레시피는 없다고 설명한다. 돈가스는 나리쿠라보다 조금 높은 110도에서 시작해 단계적으로 온도를 올리는 방식을 택한다. 대신 기름 속에서 변화하는 고기의 무게감을 손목으로 느끼며 최적의 타이밍을 찾는다. “기름을 먹으면 무거워지고, 수분이 빠지면 가벼워져요. 원하는 익힘 정도가 됐을 때 건져내는 건 모두 감각이죠." 그 결과 겉은 바삭하면서도 속은 촉촉한,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나기 직전의 절묘한 순간을 포착한 돈가스가 탄생한다. 품종별로 지방의 융점과 수분 함량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방식으로 조리해도 전혀 다른 맛과 식감을 경험할 수 있다.
휴일 없이 매일 평일 180인분, 주말 220인분 한정으로 운영되는 교카이젠 앞에는 오픈도 전에 줄이 길게 늘어선다. 돈가스 애호가들의 발걸음이다. 황 셰프는 곧 서울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 단순한 매장 확장이 목표는 아니다. “센트럴 키친을 만들어서 농장과의 계약을 더 체계화하려고 해요. 단가 계약을 통해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게 하고 그걸 보관하고 가공해서 매장에 공급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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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우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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