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한국은 비슷한 데가 많다. 생김새와 검은 정장 차림의 샐러리맨 그리고 퇴근 후 유흥가를 떼 지어 몰려다니는 술꾼들을 비롯해 ‘약속’과 ‘남보쿠’(남북) 등 말까지 닮은 것이 한둘이 아니다.
우리가 서로 다른 것이 있다면 한국 사람들은 무뚝뚝한데 비해 일본 사람들은 인사성 하나 기차게 밝다는 점. 아카사카에 있는 숙소 호텔 옆의 세븐-일레븐에 물 한 병 사러 갔더니 얼굴에 여드름이 잔뜩 난 총각 점원이 공손히 두 손을 배 위에 올려놓고 “아리카토” 하며 허리를 굽혀 절을 한다. 그래서 나도 일본에 있는 동안 “아리카토”를 입에 물고 다니다시피 하면서 지냈다.
그런데 그렇게 인사성이 밝은 사람들이 왜 자신들의 과거의 잘못은 뉘우칠 줄 모르는 것일까. 전철을 거꾸로 탔다가 다시 갈아타고 찾아간 야스쿠니 진자(신사-일본에는 곳곳에 신사가 있다) 입구에 ‘대동아전쟁 개전 70주년전’이라는 대형 포스터가 붙어 있다.
자기들이 침략전쟁을 벌여놓고 기념전을 한다니 콧방귀와 함께 입에서 쓴맛이 났다. 본전을 향해 가는데 교복 차림의 초등학생 소녀들이 견학을 마치고 돌아 나온다. 저 아이들에게 선생님은 대동아전쟁을 과연 어떻게 가르쳤을까. “역사란 역사가가 쓰는 거짓말”이라는 조지 버나드 쇼의 말이 생각났다. 전시관 내에 진열된 전쟁에 사용된 대포와 기차 그리고 폭격기와 기관총을 둘러보면서 이것들에 의해 희생된 수많은 목숨들의 부질없음이 안타까웠다.
깊은 오후 신사를 보고 돌아서는데 갑자기 늦가을 기운이 처녀 귀신의 정기처럼 나를 감싸 안고 절망케 만든다. T.S. 엘리옷이 말한 ‘4월은 잔인한 달’은 너무 이르고 진짜 잔인한 계절은 쇠락과 통한 그리고 작별과 그리움이 위협적인 가을이다.
도쿄 국제영화제(사진)에 참석차 지난 1주일간 일본엘 다녀왔다. 이른 아침에 명품점들이 즐비한 로폰기힐스에 있는 토호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나머지 하루는 도쿄의 이 곳 저 곳을 구경했다. 그런데 도쿄는 지난 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로 절전 중이어서 실내가 후덥지근했다. 점심은 라면과 우동으로 때웠는데 물가가 살인적이다.
아카사카 유흥가의 한국 식당 영빈관의 매니저 정영희씨에 의하면 최근 한일 간의 긴장관계 때문에 지난 9월 매상이 절반까지 줄었었다. 한국 식당과 한류 상점이 밀집된 신주쿠의 코리아타운의 한식집 미락미의 웨이터도 한때 위협적인 분위기까지 느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 분위기가 점차 나아지고 있다고 한다.
야쿠자 사무소가 더러 있다는 신주쿠에서는 행인들이 한국말을 해 LA의 코리아타운에 온 듯 편안한데 연길향이라는 식당에선 개고기를 판다. 미락미에서 저녁으로 족발에 소주를 마시고 있는데 옆에서 일본인 아주머니 2명이 돼지고기 삼겹살을 맛있게 구워 먹으면서 연상 모니터에 나오는 한국 뮤직비디오를 본다. 신주쿠 바로 옆의 ‘잠들지 않는 거리’ 카부키초는 총천연색 네온이 명멸하는 환락가. 파친코 소리가 요란해 마치 라스베가스에 온 기분이다.
지난 628년에 세운 도쿄에서 가장 오래된 아사쿠사의 센소지 사찰에 가기 위해 아사쿠사 역에서 내리니 지하철역 입구에 일렬로 늘어선 인력거 앞에서 인력거꾼들이 호객행위를 하고 있다. 사찰까지 가는 길 양 옆에는 에도시대부터 있었다는 상점들이 촘촘히 늘어섰는데 그 중에 센베이 가게도 보인다. 내가 초등학생 때 맛있게 먹던 씹으면 바삭바삭 소리가 나는 얇은 과자다.
센베이와 내가 중·고등학생 때 입은 것과 똑같은 세운 칼러의 검은 교복을 입은 일본 학생들을 보자니 내가 마치 시간여행을 하면서 옛날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다. 이런 걸 두고 ‘데자 부’라고 하나 보다. 일본은 이래저래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하루 종일 전철을 타고 또 걸어 다니면서 말 한 마디 제대로 안 통하는 일본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물어 다니다가 저녁에 호텔에 돌아오면 온 몸이 곤죽이 되곤 했다. 절정에 이른 것처럼 아찔한 객고와 함께 잠이 들곤 했다.
일본 영화에서 자주 본 직선과 대각선 교차로로 유명한 소니 빌딩이 있는 긴자 번화가에는 영화사 토호와 쇼치쿠 및 토에이 그리고 요미우리와 아사히신문사 등이 이웃해 있다. 긴자역 구내에서 기록영화에 나온 적어도 반년 전에는 예약을 해야 한다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스시 집을 찾아냈다. 카메라셔터를 누르니 종업원이 나와 찍지 말라고 한다.
한국의 명동거리와도 같은 긴자와 4정목에 있는 미츠코시 백화점. 옛날에 나의 어머니가 얘기 해 주시던 그 유명한 백화점 앞에서 나는 센베이를 사다 주시던 어머니가 그리워 속앓이를 했다. 백화점 안엘 들어갔다. 백화점은 어디나 다 마찬가지.
일본을 떠나기 전 날 밤에는 술집이 즐비한 긴자 뒷골목을 헤집고 다녔다. 퇴근한 월급쟁이들이 술집을 가득 메우고 있었는데 원체 실내가 좁은 일본 술집들이어서 길바닥에 즉석 상을 차려놓고 마시고 떠들고들 있었다. 나도 옥외에 한 자리 하고 야키토리에 맥주를 마셨다. 객고가 목구멍을 통해 뱃속 아래로 침전한다. 결론을 말하자면 부산영화제가 질이나 규모 면에서 도쿄영화제보다 훨씬 낫다.
<박흥진 편집위원/ hi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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