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국가 The Star-Spangled Banner의 작사가는 Francis Scott Key
‘콜럼비아 만세’는 1789년 워싱턴 초대 대통령 취임식에 맞추어 작사 작곡을 한 노래인데 처음 제목은 ‘The President’s March (대통령 행진곡)’였으며, 후일 ‘콜럼비아 만세’로 개칭을 하였으나 1차대전 후에 인기가 떨어져 군대의 일반 행진곡으로 편입이 되었다. ‘콜롬비아’라는 말은 미대륙 발견한 ‘콜럼버스’의 이름에서 따온 말인데, 스페인어로 ‘콜럼비아의 땅’이라는 뜻으로 미국을 의미한다.
‘My Country, Tis of Thee’는 1831년 Massachusetts의 모 신학교에 재학 중이던 Samuel Francis Smith라는 신학생이 친구의 부탁으로 독일어 학교에서 사용하고 잇던 가곡집의 가사를 번역하거나 멜로디에 맞추어 작사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작업 중 미국 애국가를 그 책에 있는 가곡의 패턴에 맞추어 작사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떠올라 즉석에서 작사한 것이다.
곡은 ‘Thomas Ame’라는 음악가가 작곡한 영국국가 ‘God Save the Queen’을 그대로 썼다. 이 노래도 ‘Hail Columbia’와 같이 1931년 지금의 애국가가 공식 국가로 채택 될 때까지 비공식 애국가로 애창이 되었다.
지금의 애국가 ‘Star-Spangled Banner’는 미국이 영국을 상대로 일으킨 미영전쟁(1812년 6월18일~1815년 2월18일)때 ‘Francis Scott Key’라는 젊은 변호사가 적의 집중 공격에도 견뎌낸 우군 요새에서 여전히 휘날리는 성조기를 바라보며 불타오르는 애국심을 즉석에서 읊은 시가 가사가 되었다.
미영 전쟁을 미국 사람들은 ‘War of 1812’라고 하는데 ‘제2의 독립전쟁’이라고 일컫는 사가도 있다. 당시 유럽에서는 나폴레옹 전쟁(1796~1815)이 한참이었는데, 미국은 중립을 선언하고 어느 편에도 서지 않았다.
영국은 프랑스의 해로를 막기 위해서 해상봉쇄를 감행을 했는데, 이로 인해서 미국은 프랑스와 영국 등 유럽과의 무역 통로가 막히게 되어 막대한 경제적인 손해를 보게 되었고 또 영국 해군에 의한 미국 선박의 해상검색이 미국인들의 감정을 상하게 했다.
또 하나의 원인은 미국이 독립 후 서부쪽으로 영토 확보를 해 나가는데 현지인(아메리칸 인디언)들의 대항이 심해서 골치가 아팠었는데, 영국이 그들의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었고 싸움을 방조하여 주는 것으로 알고 미영간의 관계가 껄끄러웠던 차에 미국에서는 영국이 나폴레옹 전쟁으로 여념이 없는 기회를 타서 미대륙에서 아예 영국 세력을 근절해야 되겠다는 의도로 선전포고를 한 것이다 (영국이 부분적으로 인디언을 선동, 협조한 증거는 있었음).
개전 당시 북미의 영국군은 캐나다의 수비병력 6,000여명 정도의 미미한 전력이었으므로 전세도 자연히 미국측이 우세했다. 그러나 유럽의 나폴레옹 전쟁에서 프랑스군이 수세로 몰리면서 패전의 기미가 농후해 지자 영국에서 상당수의 병력을 미영전쟁에 투입하게 되었다.
1814년에는 영국군 주력이 미국 수도 워싱턴을 공략할 정도로 전세가 역전되엇다. 워싱턴은 해안 도시는 아니지만 대서양에서 직접 갈라져나간 좁고 짧은 ‘체사피크 만(Chesapeake Bay)’이라는 해로에 인접해 있고 가까운 거리에 그 만(bay)의 종착지점에 ‘Balutimore’라는 큰 항구가 있다.
영국군은 1814년 8월19일에 ‘체사피크 만’의 관문을 돌파하고 워싱턴과 연결되는 포토믹강을 따라 돌진해서 8월 24일에 수도 함락을 하고 백악관, 재무성, 국회의사당 등 중요건물에 불을 질렀다.
이것이 미국 역사에 나오는 ‘Burning of Washington’ 사건이다. 그날 그 지역에 돌풍이 불어서 워싱턴은 불바다가 되었지만 밤사이에 폭우가 내려서 화재는 진압이 되었다. 영국군은 다음날 워싱턴에서 철수를 했다. 미국측에서는 대통령 관저를 우선 보수를 하였는데, 이때 불에 탄 자국이 나타나지 않도록 건물 전체를 백색 페인트로 도장을 하였다는 것이다. 백악관이라는 이름은 이렇게 해서 생기게 되었다.
워싱턴을 공략한 후 영국군은 곧이어 인근 중요 항구도시인 ‘발티모어(Baltimore)’를 수중에 넣기 위해서 육ㆍ해군의 합동작전 체제를 갖추고 미국 수비부대와 대치하게 되었다. 발티모어의 수비병력은 항구를 수비하기 위해서 구축한 해안수비 진지 ‘“먹 헨리 요새(Fort McHenry)’에 집결해 있었으므로 영국해군에서는 우선 함포로 요새를 포격해서 수비세력을 격멸하기 위하여 요새 앞바다인 ‘체사피크 만’에서 공격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때 당시의 젊은 변호사인 ‘Francis Scott Key’가 전날 해군 포로로 잡혀간 친구를 살리기 위해서 군대와 의논하여 영국군 포로들과 그 친구를 교환하는 안을 만들어 상부의 결재를 받고 친구와 함께 배를 타고 그 교섭을 위해 백기를 달고 영국 기함에 갔다. 교섭이 잘 되어 친구의 석방이 가능해 졌지만 그날밤은 함포 사격을 하게 되어 있었으므로 함장이 그들을 발티모어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고 하룻밤을 영국 군함에서 지내게 했다.
밤새도록 영국함대에서 퍼부운 함포로 요새가 남아있지 않았으리라 여기고 다음날 새벽 동이 틀무렵 갑판으로 나가서 요새 쪽을 보니 새벽 여명 사이로 성조기가 보이면서 날이 밝자 자랑스러운 그 모습에 감동해 그 자리에서 지갑에 있던 종이를 꺼내어 그 감격을 담았다.
그것이 바로 지금의 애국가 가사 ‘Star-Spangled Banner’의 가사이다. 작사 당시의 제목은 ‘Defence of Fort McHery’였는데 곡조가 선정되고 널리 퍼지면서 지금의 제목으로 은연 중 변경이 되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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