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내가 나의 삶을 무대 위에 올린다면 / 관객들은 말할 거야, / ‘너무 시시하군.’ …” 김형영의 시 ‘만약에’의 첫 부분이다. 사람의 사는 모습은 시대가 바뀌어도 크게 달라지지 않지만 21세기 우리의 삶은 이전 세대와 뚜렷하게 구분되는 한 가지가 있다. 그 길이이다. 20세기 초 47세였던 미국인의 기대수명은 지금 80세로 늘어났다. 2020년대에 태어나는 아이들은 기대수명이 100세가 될 전망이다.
그래서 만약에 우리의 삶을 무대 위에 올린다면 이제 관객들은 말할 것이다. “너무 길군.”
생이 너무 짧아서 아쉬운 것도 문제지만 너무 길어서 가족들이 지치다 못해 무관심해지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20세기가 인간의 수명을 연장시킨 빛나는 세기였다면 21세기는 긴 수명으로 인한 개인적 사회적 부담을 끌어안아야 하는 답답한 세기이다.
장수는 인류의 오랜 꿈이었다. 오래 오래 사는 것이 복이라는 데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환갑’ 잔치를 할 만큼 평균수명이 길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이 너무 오래 사는 것이 현실이 되면서 장수에 대한 시각이 바뀌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영생의 행운을 누렸던 티토노스가 어떤 말로를 맞았는지를 보면 그림이 그려진다.
티토노스는 여신을 홀릴 정도의 꽃미남이었다. 새벽의 여신 에오스가 반해서 그를 남편으로 맞았다. “하지만 인간은 이슬처럼 곧 죽어버리니 어쩌지?” 생각한 에오스는 제우스에게 부탁해 티토노스를 영원히 죽지 않는 존재로 만들었다. 그것이 실수였다.
죽지만 않을 뿐 나날이 늙어간 티토노스는 나중에 껍질밖에 남지 않은 노인이 되었다. 에오스는 볼품없는 그를 구석방에 가둬버렸고 늙고 늙어 매미 같은 신음소리만 겨우 내던 티토노스는 결국 매미가 되었다.
신화시대에 인간에게 영생을 선물한 것이 제우스라면 21세기 인간에게 장수의 선물을 준 것은 현대의학이다. 위생적 생활환경과 충분한 영양섭취로 전반적 건강상태가 개선된 데 이어 항생제에서부터 심장우회 수술, 장기 이식수술, 항암 치료 등 의학의 발전이 이전 같으면 죽을 사람들을 살려내고 있다. 그 결과는 날로 늘어나는 노인 인구이다.
지난 1일은 유엔이 정한 국제 노인의 날, 2일은 한국의 노인의 날이었다. 노인의 날을 맞아 유엔이 내놓은 ‘21세기 고령화’ 보고서에 의하면 전 세계에서 60세 이상 인구는 앞으로 10년 안에 2억 명이 증가, 10억 명을 돌파할 전망이다. 이어 2050년이 되면 20억명에 달하면서 지구상에는 15세 이하 어린이보다 노인이 많아진다. 지구는 노인의 행성이 되는 것이다.
100세 이상 고령자 역시 급속히 늘어서 2011년 31만6,600명이던 것이 2050년이면 10배가 뛰어 320만 명이 될 전망이다. 가족사진을 찍으면 100세 부모에 70대 자녀, 40대 손자로 3대가 모두 늙은 모습이 될 것이다.
만약에 수명을 선택할 수 있다면 몇 살까지 살고 싶은가. ‘오래 오래’ 보다는 ‘좀 아쉬울 정도’를 원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노부모나 은사가 양로병원에 계신 분들은 특히 ‘오래 오래’에 거부반응을 보인다.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는 치매 환자, 간호사가 기저귀 갈아주기도 지쳐서 아랫부분을 아예 벗겨 놓은 환자, 약기운으로 생명만 연장하고 있는 환자 등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모두 잃어버린 모습을 보다보면 “오래 사는 게 오히려 욕”이라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바이오텍과 인간수명에 관한 책 ‘164살 때’를 쓴 저널리스트 데이빗 던컨이 지난 3년 간 3만명을 대상으로 질문을 던졌다. “얼마나 오래 살고 싶으냐?”며 4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게 했다. 현재의 기대수명인 80살, 인간의 최고수명으로 알려진 120살, 바이오텍의 혁신적 발전이 있으면 가능할 150살, 그리고 영생.
결과를 보면 60%가 80살, 30%가 120살을 원했다. 150살을 원한 사람은 10% 미만, 영원히 살고 싶다는 사람은 1%가 못 되었다. 늙고 쇠약한 상태로 오래 살아봤자 낙이 없다, 100살 넘도록 산다면 일자리, 의료, 복지 등 사회적 부담이 너무 커진다는 이유였다.
장수의 나라 일본은 과거 장수가 큰 자랑이었다. 백세 노인을 ‘보석’이라고 부르며 귀하게 모셨다. 지금 백세 노인은 ‘화석’으로 불린다. 고령층은 사회적 부담이라는 말이다.
수명을 선택할 수는 없지만 첨단의학으로 연장하지 않겠다는 선택을 할 수는 있다. “나의 때가 다하면 품위 있게 이 세상을 떠난다”는 자세로 살면 좋겠다. 티토노스가 제때 죽었다면 여신의 아쉬움 속에 영원히 꽃미남으로 기억되지 않았겠는가.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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