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년이 시작된 지 거의 두 달이 되자 이 집 저 집에서 큰 소리가 난다. 새 교실, 새 선생님 앞에서 초롱초롱한 눈으로 수업에 집중하던 아이들이 슬슬 긴장이 풀리기 시작한 것이다. 수업 중 장난을 치고 숙제를 잊어버리고 하는 일들이 생겨난다. 운전면허를 갓 딴 고등학생들이 수업을 땡땡이치는 ‘모험’을 시도하는 것도 대개 이 즈음이다.
부모는 속을 끓이며 아이를 다그치고,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고 나면 으레 하는 말이 있다. “넌 왜 그 모양이니?” 이다. 한글날을 맞아 한국 교원단체 총연합회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아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 바로 이 말이다. 4학년 이상 초중고생 194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학생들은 이 말이 가장 마음에 상처가 된다고 했다. 그 다음으로는 “누구누구처럼 공부 좀 잘 해라” “도대체 누굴 닮았냐?” 등이 아픈 말로 꼽혔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 ” “혀 아래 도끼 들었다” 는 속담 등으로 그 위력을 익히 알면서도 통제가 잘 안 되는 것이 말이다. 예의를 차려야 하는 남들 앞에서는 말을 가려서 하다가도 가족들, 특히 자녀들에게는 감정적으로 말을 쏟아내는 경우가 많다. 기대와 사랑이 클수록 감정이 격해져서 생기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날아간 말은 종종 화살이 되어 아이의 가슴에 박힌다. 때로는 평생 박혀서 자신감과 자긍심을 깎아내린다.
부모의 부정적인 말은 아이에게 얼마나 영향이 클까. 거의 절대적이라고 정신과 의사들은 말한다. 어린아이들은 부모의 태도를 통해서 자기상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각인’ 현상과 ‘거울보기’ 이론으로 설명이 된다.
오스트리아의 동물행동학자 콘라드 로렌츠는 회색기러기를 대상으로 각인현상을 실험했었다. 알에서 갓 부화한 새끼 기러기에게 거위를 보여주면 거위를, 진공청소기를 보여주면 청소기를 어미로 생각하고 어디든 졸졸 따라다니는 것이다. 태어난 순간, 즉 생명체로서 가장 무력한 상태에서 제일 먼저 마주한 대상이 의식 속에 뚜렷하게 각인되면서 절대적 의존의 대상이 되는 현상이다. 아이들에게 엄마와 아빠는 그만큼 절대적이다.
그리고 자라면서 아이들은 거울을 보듯 부모의 반응을 살핀다. 부모가 ‘착하다’ ‘잘 한다’ 칭찬하면 “나는 괜찮은 아이구나” 스스로 생각하고, ‘나쁘다’ ‘잘못 한다’ 꾸짖는 말을 계속 하면 자신에 대해 부정적 이미지를 형성하게 된다. 온기를 뿜는 말과 냉기를 뿜는 말의 차이이다.
지난 봄 앞마당에 화초 모종을 심었다. 같은 모판에 담긴 모종들을 같은 흙에 심고 똑같이 물을 주었는데 5개월이 지난 지금 차이가 많이 난다. 싱싱하게 자라 잎이 탐스러운 것들이 있는가 하면 바닥에 붙은 듯 거의 자라지 않은 것들이 있다. 햇빛이 잘 드는 곳과 그늘 진 곳의 차이이다. 똑같은 밥을 먹어도 따뜻한 말의 햇빛, 그 온기를 받지 못하면 아이들 역시 활짝 피어나기가 어렵다.
아이들을 어떤 말로 훈육하는 것이 바른 방식일까. 스탠포드의 심리학자 캐롤 드웩 박사는 두 가지를 말한다. 첫째 아이의 능력이 아니라 노력을 칭찬하라. 관련 실험에서 그는 어린 아이들에게 간단한 문제를 풀게 했다. 대부분 쉽게 할 수 있는 문제였다. 문제를 푼 아이들 중 일부에게 그는 “정말 똑똑하다”는 칭찬을 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할 것 같지만 결과를 보면 칭찬받지 않은 아이들이 오히려 다음에 나온 어려운 문제들을 더 열심히 풀고 더 좋은 성적을 냈다. ‘똑똑하다’ 보다는 노력을 칭찬하라는 말이다.
둘째는 딴 아이와 비교하지 말고 그 아이 자신의 성적·성취를 비교하라는 것이다. 딴 아이와 비교하는 것은 한인부모들의 주특기이다. “누구누구는 9학년 때 미국에 왔는데 하버드 갔다. 너는 여기서 태어난 아이가 왜 그 모양이냐?” “옆집 아이는 올 A 받았다는데 너는 ~ ” 같은 말이 거의 입에 배었다. 그보다는 “네가 지난번에는 정말 잘 했는데 이번에는 왜 이렇게 떨어졌느냐”를 비교하라고 그는 조언한다.
“넌 왜 그 모양이니?”의 문제는 고정된 시각이다. 아이의 관심과 적성을 보지않고 부모의 기준으로 비판하는 말이다.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고 말은 달린다. ‘물고기’로 태어난 아이에게 왜 날지 않느냐고 왜 그 모양이냐고 꾸짖는 것은 맞지 않다. 그래서 “커서 뭐가 되려고…” “공부도 못하는 게 무슨…” “아이구 내가 못 살아” “누굴 닮아서 저 모양이야?”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어” 같은 날 선 말들을 뿜어낸다면 그 냉기에 아이는 기를 펴지 못한다. 부모는 아이에게 두가지를 줄 의무가 있다. 따뜻한 밥과 따뜻한 말이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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