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동안 전화벨이 울리면 내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건 혹시나 바다 건너 한국 쪽에서 걸려올지도 모르는 달갑지 않는 전화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제도 어제도 나는 전화벨 소리를 듣고, 겁먹은 어린아이 같이 전화통 쪽으로 다가 갔다. 수화기를 들고 보니 그 지긋지긋한 광고 전화다. 하지만 그 지겨운 광고 전화 소리가 오히려 반갑게 들린다.
그러나 나와 전화벨 소리와의 씨름은 지난 달 9월11일로 끝났다. 그날 한국에서 걸려 온 한통의 전화! 전화선을 타고 내 귀에 전해진 한국아동극협회 곽영석 회장의 전갈은,“이영준 선생님이 돌아가셨습니다.”였다“언제?”라는 나의 물음에 곽회장의 대답은“어젯밤” 이었다.
나는 수화기를 내려 놓고 힘 없이 내 서재로 되돌아 가면서 마음 속으로“이형! 미안하오, 미안하오”를 소리없이 외치고 있었다.
6,70년대에 나를 도와 그 길, 아동극 개척길에서 같이 삽과 괭이를 들었던 동지들 거의가 저세상으로 가버린 마당에 이영준 형마저 떠나가 버리고 만 이제, 아동극 1세로는 나 혼자만이 마지막 잎새 마냥 댕그라니 붙어 있는 것 같은 서글픔이 오늘 따라 내 가슴에 나울처럼 밀려 든다.
아무리 고령화시대라고는 하지만, 80살 나이로 생을 마감한 이형의 죽음이 짧게 산 죽음이 아니었지만, 내가 그와의 이별연습을 끝낸 시점에서 그에게“미안, 미안, 미안”이란, 유행가 가사 같은 독백을 되뇌임은 지난 세월에 그를 내가 운영하던 단체의 사무국장 자리에서 물러나게 한 사건 때문이다.
그러나 이민 이후, 내가 서울에 나갈 때마다 그와 항상 자리를 같이 했고, 지난 5월에도 한국에 나갔을때 우리만의 옛이야기로 꽃을 피우기도 했지만, 이제 이형은 내 곁에 없다.
그런데 궁금한게 있다면 그건 이형이 우리 둘 사이의 지난 날의 앙금을 그의 가슴에서 깨끗하게 걸러내고 갔을까 하는 생각이랄까, 의문이다.
우리 일상생활에서 예감이란게 존재하는게 사실일까? 지난 달 9월 초순, 나는 이형에게 전화를 걸어야 하겠다는 어떤 독촉감에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전화통을 통해 들려온 그의 힘 없는 목소리는“나, 지금 병원에 눠 있어요!”였다.“왜?”라는 다급한 나의 물음에, 되돌아 온 대답이“폐암말기 래요!”라는 실망스러운 목소리 였다.“우리 다시 만날때까지 힘 내시오”라는 나의 말에,“글쎄요?”라는 대답이, 그가 나에게 들려준 마지막 말이었다.
오늘 나는 이형의 죽음과 나를 앞서 간, 아동극 개척의 옛 동지들에게 내 마음 속으로‘미안, 미안, 미안’이란 나 혼자의 독백을 외치는 까닭이 있다면 그건 아동극 분야의 보스(?) 격이던 내가 그들을 남겨 두고 훌쩍 이민길에 올라버린 매정한 처사에 대한 내 나름의 죄책감에서 인지 모른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60년과 70년대에 내가 창단한 아동극단‘새들’에 입단하고 싶어 하는 부유층 자녀들과, 4차례의 일본공연 때, 그 당시만 해도 해외여행길이 막혀 있던 시절에 해외공연 참가 어린이와 함께 공연여행을 떠나는 학부모들에게서 넉넉한 경비를 걷었더라면, 한편 문교부 주최 우리 한국아동극협회 주관의, 9차례에 걸쳐 1정자격강습(승진) 때 보다 많은 강습회비를 거두었더라면…
그뿐인가. 그 당시만 해도 전국의 수천 초등학교에서 학예회를 의무적으로 개최하다시피 했을 때, 많은 학교에서 공연한 나의 동극작품의 상연료를 거두었더라면 충무로 바닥에 사무실 하나는 마련할 수 있었을 것이고, 우리 동료들에게 보다 나은 보수를 줄 수 있었을텐데 하는 후회랄까, 아쉬움이 고개를 쳐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하지 못했던 이유를 변명 삼아 내세운다면, 학예회 때 공연된 내 작품의 상연료를 굳이 받지 않았던 것은 아동극의 진흥을 위해서 였고, 한편으로 내가 강습회나 해외공연 때 과다한 경비를 거두지 않았던 까닭은 나의 고지식한 성격탓 말고도, 그 당시만 해도 모든게 허가제 였던 시절에 만일 내가 많은 경비를 거두었더라면 정부가 어떻게 나를 믿고 내가 신청한 허가서에 쉽게 결재도장을 찍어 주었겠는가 말이다.
그리고 내가 이끄는 어린이 극단인‘새들’에게 15년에 걸쳐 어찌 국립극장 무대를 제공해 주었겠느냐 말이다. 그렇게 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한국 땅에 아동극이란 존재가 살아 남아있다고 지금도 나는 확신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오늘 새삼 색바랜 사진첩을 꺼내어 펼치고는, 나를 앞서간 옛 아동극 동지들의 얼굴을 나의 까칠한 손길로 쓸어 보면서 그저‘미안, 미안, 미안’이란 용서를 비는 내 마음의 독백을 되뇌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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