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영옥을 줄인 나의 영어 이름),
카드와 선물까지 준 당신의 친절, 감사합니다. 토마스 킹케이드의 그림은 보고 있으면 참 편안합니다. 카드를 책상 위 잘 보이는 곳에 두고 하루 종일 감상했습니다. 장구(핸드폰 고리)는 게시판에 꽂아놓았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금색과 노란색이네요. 사무실에서 행운을 가져다줄 마스코트가 될 거예요! 내 생일에 나를 기억해줘서 고마워요 :)“
평소에 친절하게 나를 챙겨주는 60대의 사무실 직원 다이앤 아주머니의 생일이 주말이었다는 소리를 듣고 가벼운 마음으로, 책상서랍에 있던 카드에 간단히 축하인사를 쓰고, 책상서랍에서 빛을 못 보고 있던 핸드폰 고리를 넣어서 드렸더니, 이렇게 장황한 감사의 메일을 보내왔다. 별 것 아닌 것에 대한 인사가 너무 과분해서 무척 당황스러웠다.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당황스러웠다. 그 후 며칠 동안은 사무실에서 그녀와 마주치면 또 과분하게 고맙다는 말을 할까봐 강의가 끝나면 일부러 사무실에 들르지 않고 퇴근을 했다. 참으로 불편했다.
소노 아야코가 <착한 사람은 왜 주위사람을 불행하게 하는가>라는 책을 쓴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소노 아야코는 ‘착한 사람에 대한 강박증’에 관해 세 가지 유형이 있다며 이렇게 말한다. 첫째 남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유형, 둘째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는 유형, 셋째 타인에게 평가받고 싶어 하는 위선적인 유형.
남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경우는 선의의 언행이 자기만족에 그칠 때 일어난다고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남에게 권하는 것은 친절한 듯 보이지만, 원치 않는 상대방에게는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며 이런 예를 보여준다. 손님에게 최대한 맛난 것을 대접해 주고자 오랜 시간 기다리게 하는 주인이 있다. 하지만 상대방이 그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기다리는 손님에겐 그 시간이 고역이고 이럴 때 착한 사람은 자신의 행동에 확신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난감하다는 것이다.
둘째,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는 선의의 언행으로 착한 사람으로 평가받고자 할 때 일어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빌려준 돈을 갚지 않는 친구에게 갚으라는 말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말하자니 야속해 할 것 같고, 차라리 말하지 않는 것이 착한 사람으로 남을 듯한데, 가슴 속에 원망이 남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셋째, 타인에게 평가받고 싶어 하는 경우는 선의의 언행이 거짓되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하며 이런 경우는 당사자에게도 혹은 타인에게도 스트레스를 남긴다고 말한다.
최인호 작가의 수필집 <인연>에도 이런 대화가 나온다. 작가가 결혼 허락을 받기위해 사랑하는 사람을 집에 데려오고 난 직후 그의 어머니와 나누는 대화이다.
“그 애 어디가 그렇게 좋으냐?”
“착합니다. 그 앤 착해요.”
“착하기만 하면 못 쓴단다.”
착한 것만으로 살아지지 않는 세상이라고 그 어머니는 말하고 있었다. 실제로 우리는 착하다는 것을 종종 이렇게 폄하해서 표현하지 않는가. ‘착해빠져서는...’ ‘착하긴 한데...’ ‘착하면 뭐해...’
그래도 역시 나는 다이앤 아주머니의 순수함과 착함이 좋다. 지나치게 착한 감사메일 때문에 며칠 동안 부담이 되어 불편하긴 했어도, 역시 착한 사람이 좋다. 믿음이 간다. 착하다는 단어 자체가 참 좋다. 글을 읽다가도 ‘착한‘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오래오래 머물게 된다.
그래서 정일근 시인의 ‘착한 시‘는 내가 참 좋아하는 시다.
“우리나라 어린 물고기들의 이름 배우다 무릎을 치고 만다. 가오리 새끼는 간자미, 고등어 새끼는 고도리, 청어 새끼는 굴뚝청어, 농어 새끼는 껄떼기, 조기 새끼는 꽝다리, 명태 새끼는 노가리, 숭어 새끼는 동어, 방어 새끼는 마래미, 누치 새끼는 모롱이, 숭어 새끼는 모쟁이, 잉어 새끼는 발강이, 괴도라치 새끼는 설치, 작은 붕어 새끼는 쌀붕어, 전어 새끼는 전어사리, 열목어 새끼는 팽팽이, 갈치 새끼는 풀치…, 그 작고 어린 새끼들이 시인의 이름 보다 더 빛나는 시인의 이름을 달고 있다. 그 어린 시인들이 시냇물이면 시냇물을 바다면 바다를 원고지 삼아 태어나면서부터 꼼지락 꼼지락 시를 쓰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그 생명들이 다 시다. 참 착한 시다.”
나도 이 세상을 원고지 삼아 꼼지락 꼼지락 시가 쓰고 싶어진다. 참 착한 시를. 아니다. 최정례 시인의 말에 의하면, 질긴 사람은 시를 쓰고 착한 사람은 시를 읽는다니 시를 더 많이 읽어야 하겠다. 질긴 사람이기보다는 착한사람이고 싶으니까.
이영옥
대학강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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