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봐요, 안 되겠어요. 4년을 같이 지냈는데, 당신은 변했어요. 돈 씀씀이는 걷잡을 수 없고 항상 골프장에만 나가 있고, 항상 할리웃 연예인들과만 어울리잖아요. … ”
그러니 “우리 그만 헤어지자”는 광고가 새로 나왔다. 은은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식당에서 한 여성이 결별 선언을 하는데 카메라 앵글이 돌아가 맞은 편 의자를 비추니 실물크기의 오바마 사진이 놓여 있다. 민주당 전당대회 마지막 날인 지난 6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후보지명 수락 연설을 하기 몇시간 전 공화당 전국위원회가 내놓은 캠페인 광고이다.
광고의 직접적 타깃은 독신여성들. 4년 전 오바마를 열렬히 지지했던 집단이다. 공화당이 그들 여성, 그리고 넓게는 오바마를 지지하는 모든 유권자들의 옆구리를 찌른다. “그렇게 좋아하더니 4년 지나보니 어떤가. ‘변화’와 ‘희망’의 메시아는 도대체 어디로 간 건가. 사는 게 좀 나아졌는가” 라며 결별’을 부추긴다. 오바마로는 안 되니 공화당의 미트 롬니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올해 대선은 4년 전 같은 흥분이 없다. 드라마가 성공하려면 극적인 스토리와 빛나는 배우가 있어야 하는 데 이번에는 그런 요소들이 약하다. 4년 전 미국사회의 특징은 부시 행정부에 대한 터질 듯한 불만이었다. 길고긴 전쟁으로 국가부채는 눈덩이같이 불어나고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경제는 곤두박질치면서 불만은 변화에 대한 갈망으로 이어졌다. 이때 혜성과 같이 오바마라는 정치 신인이 나타나 변화와 희망을 외치자 선거전은 열광의 도가니가 되었다.
그리고 4년이 지난 지금, 유권자들을 흥분시켰던 오바마의 빛은 퇴색했다. 골수 지지층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서‘대통령 되더니 변했다’는 말이 나왔다. 서민들의 살림은 여전히 어렵고 실업률은 8%를 넘는다. 어려운 경제는 현직 대통령의 재선을 막는 높고 높은 장벽이다.
하지만 상대후보가 마침 억만장자 롬니이니 오바마로서는 행운인 셈이다. 지금 미국 사회의 가장 큰 이슈는 양극화이다. 극심한 빈부격차로 ‘월가를 점령하라’ 운동이 민심을 뒤흔드는 시대, 소득 최상위 계층과 일반 서민층이 ‘1% 대 99%’로 극명하게 대비되는 시대에 롬니는 대표적‘1%’이다. 오바마는 자연 스럽게 ‘99%’를 끌어안고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미국사회의 양극화만큼이나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것이 이번 선거에서는 후보 부인들이다. 백인 부유층 출신 앤 롬니(63)와 시카고 흑인 근로계층 출신 미셸 오바마(48)는 이제까지 어떤 대선에서도 볼 수 없을 만큼 극과 극의 후보부인들이다.
앤은 한마디로 한국이 못 살던 시절 우리가 막연히 머릿속으로 그리던 미국사람. 풍족한 백인의 이미지이다. 웨일스 태생 이민자의 후손인 그는 16살에 만난 첫사랑 롬니와 19살에 결혼해 아들 5명을 키우며 평생 부잣집 마나님으로 살았다.
반면 미셸은 우리가 미국으로 이민와서 속을 들여다보며 알게 된 미국사람. 노예의 후손으로 시카고 도심지역에서 가난하게 자라고 학자금 융자로 어렵게 프린스턴과 하버드 법대를 나온 변호사 출신이다. 남편이 지역사회 활동을 하느라 돈을 못 벌던 때는 가계의 주 수입원 역할을 하기도 했다.
전당대회에서 두 후보 부인은 각자 남편의 인간적 면모를 유권자들에게 알리느라 애를 썼다. 앤이 한 연설의 초점은 서민층과 너무 거리가 멀어 보이는 자신들도 알고 보면 ‘보통 사람’이라는 것. 결혼 초기 파스타와 참치만 먹으며 살던 시절이 있었고, 다발성경화증과 유방암으로 고생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며, 아들 다섯을 키우는 일이 만만치 않았음을 털어놓았다.
미셸은 산더미 같은 학자금 융자 빚을 안고 시작한 결혼생활, 그 시절 자동차가 너무 삭아서 문짝의 틈새로 지나가는 도로변이 보이던 추억, 하지만 오바마는 돈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에 얼마나 변화를 주느냐를 성공의 잣대로 삼는다는 연설로 전당대회장을 감동에 빠트렸다. 시카고 흑인지역의 어린 소녀가 퍼스트레이디가 될 수 있다면 아메리칸 드림은 누구에게나 가능하다고 그는 증거 한다.
지도자의 상이 바뀌고 있다. 혼자 높이 서서 지휘하는 지도자 보다는 자신들의 사정을 잘 알고 이해하는 지도자를 현대인들은 원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경험 밖을 헤아리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앤이 살아온 미국과 미셸이 살아온 미국, 어느 쪽이 더 자신과 가까운 지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junghkwon@koreatimes.com
권 정 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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