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계발서 ‘성공한 사람들의 7가지 습관’으로 유명한 스티븐 코비가 지난 7월 세상을 떠났다. 자전거 사고 합병증으로 3개월간 고생하다 79세로 생을 마쳤다. 이 책이 세계적으로 2,500만부나 팔리며 대 성공을 거두자 그는 좀 의아해 했었다고 한다. 좋은 습관에 따라 행동하면 효과적이라는, 세상사람 다 아는 사실을 말했을 뿐 새로울 게 없다는 것이었다.
그가 말한 7가지 좋은 습관 중 하나가 ‘끝을 생각하며 시작하라’는 것이다. ‘끝’ 즉 목표점이나 종착지를 미리 정하면 가야 할 길이 보이는 이치이다. 이와 관련해 코비 박사는 장례식을 예로 들었다. “내 장례식장에 모인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어떤 말을 하기를 원하는 가”
생각해보면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답이 나온다는 것이다. 인생의 끝에 미리 서보는 경험이다.
끝에 서보는 사람들은 두 가지가 가능하다. 젊어서는 살아갈 방향을 잡을 수 있고 나이 들어서는 후회 없는 끝을 준비할 수가 있다.
지난 6월 본보 토론토 지사 신문에는 특이한 장례식이 보도되었다. 그 지역에서 존경받는 원로의사인 이재락 박사(83)가 가족 친지들을 초청해 자신의 ‘장례식 잔치’를 한 내용이었다.
그 몇 달 전 말기암 진단을 받은 그 분은 신문에 ‘나의 장례식’이란 글을 기고했다. “내가 거동도 하고, 말도 할 때 지인들을 모시고 회식을 하면서 삶의 끝마무리를 하고 싶다. 웃으면서 즐겁게 담소도 하고 작별인사를 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 장례식이라 해도 좋고 마지막 작별인사 모임이라 해도 좋다”는 내용이었다. 장례식 초청의 글인 셈이었다.
6월9일 한바탕의 흥겨운 장례식을 하고 근 3달이 지난 지금 그분의 근황이 궁금해 전화를 드려보았다. 그분의 목소리는 편안했다. 암이 계속 자라고 있지만 체중이 20파운드 줄었을 뿐 별다른 변화가 없고 무엇보다 통증이 없어 지낼 만하다고 했다.
“(장례)식 올린 이후로 간에 있던 암이 더 커지고 양쪽 폐에도 전이가 되었어요. 적당한 시기에 (장례식을) 잘 해서 (갈) 준비가 다 되었어요. 홀가분하고 좋습니다.”
그렇다면 진짜 장례식은 없는 걸까? 캐나다와 미국에 흩어져 사는 세 아들들에게 장례식을 따로 하지 말라고 했으니 아들들도 안 할 것이라고 그분은 말했다.
“어느 날 내가 가면 화장터 직원들이 와서 시신을 가져가도록 조치해뒀습니다. 화장하는 것을 보기 위해 일부러 모이지는 말라고 아들들에게 당부했지요. 화장 재를 담은 유골함을 장의사에 맡기든지 집에 가져가든지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우리 가족이 매년 해오던 대로 7월 초 여름휴가 때 모두 모이면 어느 좋은 날 정해서 유골함을 아내 곁에 묻고 점심이나 같이 먹고 헤어지라고 말해뒀습니다.”
언제 찾아들 지 모를 죽음 앞에서 그분은 담담하고 의연했다. 그의 ‘이상한’ 장례식에 대해서는 이상해하는 사람도 있고 “나도 그렇게 해야 겠다”며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생의 ‘끝마무리’와 관련해 최근 화제가 되었던 인물은 지난 6월말 백혈병 합병증으로 사망한 노라 에프론(71)이었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줄리 & 줄리아’등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이자 감독, 저널리스트로 유명한 에프론의 추모식은 그의 마지막 ‘각본’이었다.
누가 연사로 나와서 어떤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시간은 얼마로 제한하며, 샴페인은 어떤 걸로 준비하는 지 등 세세한 내용을 적어서 그는‘퇴장(EXIT)’이라는 서류로 준비해두었었다고 한다. 덕분에 미국 최고의 유명 인사들이 모인 그의 추모식장은 에프론이 베푼 마지막 파티, 멋졌던 한 삶을 축하하는 잔치자리가 되었다.
에프론은 몇 년전 가장 친한 친구를 암으로 잃은 후 죽음을 같이 이야기하며 마음으로부터 준비하지 못한 데 대한 후회의 글을 쓴 적이 있다. 죽음은 저격수 같아서 사랑하는 사람들, 아는 사람들을 마구 저격하고 그 다음이 나일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모두가 죽는다고 그는 썼었다. 이런 경험 때문에 그는 삶의 끝에 미리 서보며 자신의 죽음의 의식을 꼼꼼히 챙겼던 것 같다.
9월이다. 연초에 하루, 하루, 지나가던 시간은 어느새 한주 두주, 한달 두달씩 성큼성큼 달려가고 있다. 한 해의 끝이 또 코앞이고, 인생의 끝 또한 그렇게 한순간에 다가설 것이다. ‘끝’에 대한 생각을 이제는 좀 해야 할 것 같다.
junghkwon@koreatimes.com
권 정 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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