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올림픽에서 주몽의 후예인 한국 양궁선수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올림픽이 시작된 고대 그리스에서는 아폴론이 궁술을 관장했다. 태양의 신인 아폴론이 활솜씨를 발휘해 일가족을 무참하게 벌하는 이야기가 그리스 신화에 나온다. 테베의 왕비 니오베의 비극이다.
암피온 왕의 부인인 니오베는 모든 것을 가진 여성이었다. 권력과 부, 미모에 더해 다산의 축복까지 누렸다. 아들과 딸 각 일곱씩 14명의 자녀를 둔 것을 그는 특히 큰 자랑으로 여겼다. 자만심에 가득 차 자랑을 일삼던 왕비는 여신 레토 앞에서 말실수를 했다.
레토는 자식이 둘밖에 없지만 자신은 14명이나 두었으니 자신이 더 낫다고 뽐내다가 여신의 노여움을 사고 말았다. 레토에게는 제우스와의 사이에서 낳은 쌍둥이 남매 아폴론과 아르테미스가 있었다. 진노한 여신은 남매에게 오만방자한 니오베를 벌하라고 명령했고, 둘은 즉각 활을 쏘아 니오베의 14남매를 모두 죽여 버렸다. 그 충격으로 암피온 왕은 자살하고 니오베는 슬픔에 몸과 마음이 굳어져 돌이 되고 말았다.
이때 니오베가 저지른 죄를 ‘휴브리스’라고 한다. 오만, 특히 신의 영역을 넘보는 인간의 오만이다. 가톨릭의 7가지 대죄 중 첫 번째인 교만도 이에 해당한다.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분수를 알고 겸손해야 한다는 것인데, 교만·오만이 이렇게 중죄로 꼽히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올림픽에서 이변들이 속출하고 있다. 정상에 있던 금메달 후보들이 바닥으로 추락하고 예상 밖의 선수들이 정상을 차지하는 역전 드라마가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다. ‘더 빨리 더 높이 더 세게’를 추구하는 올림픽에서 ‘더’는 항상 상대적일뿐 누구도 영원히 정상의 주인이 될 수는 없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수영 황제’ 마이클 펠프스이다.
개막 다음날인 지난 28일 세계는 눈을 의심했다. 베이징 올림픽 8관왕인 펠프스가 개인혼영 400m에서 4위를 한 것이었다. 15살 때 처음 올림픽에 나가 5위를 한 이래 그에게 이런 성적은 없었다. 다른 누구보다도 펠프스 본인은 특히 어리둥절한 것 같았다. 경기 후 으레 향하던 시상대 대신 밖으로 나가는 그에게 방송기자가 소감을 묻자 그는 반쯤 혼이 나간 모습이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펠프스는 본래 실력을 회복해 개인혼영 200m, 접영 100m에서 각각 올림픽 3연패, 올림픽 사상 최다 메달, 최다 금메달 획득이라는 기록들을 세웠다. 앞으로 오래도록 전설로 남을 성과이다.
하지만 그는 이제 더 이상 정상에 홀로 군림하는 ‘황제’는 아니다. 그의 앞에만 서면 작아지던 동료 라이언 락티에게도, 그를 우상으로 삼는 남아공의 채 드 르 클로에게도 금메달을 내주었다. 펠프스는 사람이 아닌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우리 같은 사람이더라고 그들은 말했다. 이런 착각은 아마도 펠프스 자신의 착각이기도 했을 것이다. ‘나를 대적할 자 누가 있으랴’ 싶은 자만심, 휴브리스이다.
베이징 올림픽 이후 그는 한동안 뭘 해야 할지 모르는 방황의 시기를 겪었다. 다른 선수들과의 실력차이가 워낙 현격하다보니 동기부여가 없는 것이었다. 마리화나 문제로 몇 달 경기출전정지를 받는 등 구설수에 휩싸이기도 하고 은퇴를 생각하기도 했다. 자연히 연습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시간과 땀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법이다.
또 다른 황제도 비슷한 전철을 밟았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이다. 요즘 골프 대회에 나선 그를 보면 더 이상 ‘황제’가 아니다. 머리는 듬성듬성 빠지고 얼굴은 초췌하다. 과거의 자신만만하던 모습, 그냥 서있기만 해도 빛이 나던 모습은 이제 찾아볼 수가 없다.
우즈는 테베의 왕비 니오베만큼이나 모든 것을 가진 행운아였다. 돈과 명예 그리고 모델 출신의 미인 아내에 귀여운 아이들까지. 너무 일찍 너무 많이 성공한 그 역시 휴브리스의 마수에 걸려든 것 같다. 자만심이 오만을 낳고 오만이 부분별한 행동을 불러오면서 가정 잃고 황제 자리를 잃었다.
성공은 종종 발목 잡는 수렁이 된다. 우리 보통사람들은 성공한 사람들이 부럽지만 성공 때문에 오히려 불행을 맞는 경우들이 적지 않다. 너무 높이 올라가면 그 달콤함에 취해 현실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신이 아니라는 사실, 아무 것도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 지금 가진 것을 당장 내일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에 대한 망각이다.
추락한 황제들은 겸손을 배웠으리라고 믿는다. 현실로의 귀환이다.
권 정 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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