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을 동반했던 한여름 날에 또 정전사태가 일어났다. 이번에는 태풍이 쓸고 간 지역이 광범위해 일주일 이상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는 뉴스를 접한 아이들은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인내심이 없는 아이들이 견디지 못하는 건 더위가 아니라 인터넷 세상과의 단절인 듯했다. 나는 아래층 거실로 이부자리를 옮겼다. 찬 기운이 도는 마루 위에 누우니 더위는 그런대로 견딜만 했지만 쉽사리 잠이 오지 않았다.
수면을 방해하는 건 우습게도 낮선 정적이었다. 수면 중에도 들려오는 온갖 소음에는 익숙해져 있던 청각이 낯선 고요함에 예민하게 반응을 했다. 게다가 머릿속은 정전사태가 오래 지속될 경우 부딪쳐야 할 여러 가지 난관들에 대한 생각으로 어수선해지기 시작했다. 잦은 정전사태 때마다 자가 발전기를 설치해 놓으리라 벼르기만 하고 유야무야 되어버렸던 일이 생각났다. 하필 월초이니 일주일씩이나 문을 닫아야 한다면 가게들의 렌트비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자연재해인데 왜 빌딩주인들이 감당해야 되는 몫은 따로 없는 것인지,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먼데서 들리던 찻소리도 끊어지고 함께 고민하던 남편마저 잠이 들었는지 고른 숨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억지로 끌어당기던 잠의 끈을 놓아버리고 눈을 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거실의 긴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희뿌연 하늘이었다. 거센 태풍을 몰고 왔던 하늘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고요했다. 다음으로 뒷집과의 사이에 서 있는 측백나무들이 눈에 들어왔다. 몇 년 전에 폭설로 쓰러진 나무의 자리에 이가 빠져 있긴 하지만 나무들은 펜스의 키를 곱절이나 넘으며 무성히 자라고 있었다.
무심코 어둠 속에 검은 장승처럼 서 있는 나무들을 바라보다가 무언가 반짝이고 있다는 게 감지되었다. 나의 눈조리개는 수축을 거듭했다. 반딧불이들이었다. 어렸을 때 길가 바랭이나 강아지풀, 혹은 개울가의 돼지풀에도 흔하게 앉아 반짝이던 바로 그 반딧불이들이 뒤뜰에 가득 찾아와 있었다. 이 집에서 산 지 아홉 해를 넘기고 있었는데 나는 어떻게 한 번도 밤의 뒤뜰을 바라보지 않은 채 살아왔을까. 나는 밤이 이슥토록 마치 별 부스러기를 흩뿌려 놓은 것 같은 나무 위의 반딧불이들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들었다.
시골집에 전기가 들어온 것은 내가 여남은 살 먹었던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30촉쯤 되었을까, 그보다 더 낮았을까. 지금 생각하면 그리 밝지 않은 촉수의 전구였지만 그 빛은 눈을 찌를 만큼 강렬한 것이었다. 소켓트에 붙은 스위치를 돌려 불을 켜고 끄는 시간을 관리하는 것은 할머니의 몫이었는데 웬만한 어둠이 찾아와서는 전등을 켜지 않았다. 초가의 안방과 마루와 사랑채에 대롱거리며 매달려 있던 전구들은 그냥 거기 매달려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밝히기에 충분했다.
살면서 사용하는 전기의 촉수는 높아만 갔다. 내 삶에 있어 추구하고 쫒아가던 것들도 마찬가지였다. 멀리 보이는 진달래 꽃무덤이 더 탐스러워 보여 자꾸만 산 속으로 들어가듯이 더 멀리 더 반짝이는 것들을 잡기 위해 나는 항상 바쁘고 분주하게 살아왔던 것 같다.
하루 이틀이 지나자 전기가 없는 생활에도 익숙해졌다. 일찌감치 저녁 설거지를 끝내놓고 이부자리를 펴고 누우면 마음이 홀가분해지기까지 했다. 찬 마룻바닥에 누워 바라보는 하늘은 반딧불이가 지천이던 어릴적의 시간 속으로 나를 데려가기도 했다. 달챙이 숟가락으로 감자 껍질을 벗겨내던 어머니 곁에 앉아도 보고, 모깃불 옆 평상에 누워 논둑을 무너뜨릴 듯이 울어대던 개구리 소리를 들어보기도 했다. 전화를 걸어 노란 호박꽃에 반딧불이들을 잡아넣고 같이 놀던 남동생의 안부를 묻기도 하며 오랜만에 느리게 느리게 한여름 밤들을 보냈다.
정전된 지 닷새째가 되던 날, 가게 한 곳에 전기가 들어왔다. 뒤늦게 구입해 카운터만 겨우 가동시키던 자가 발전기를 집으로 옮겨와 데크에 놓고 가동시켰다. 그날 밤 뒤뜰의 반딧불이들은 흔적도 없이 다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발전기가 내뿜는 고약한 매연 탓이었으리라.
집에 전기가 들어온 것은 꼬박 일주일을 채운 다음이었다. 이부자리를 침실로 옮기며 짧은 휴가가 끝난 것처럼 섭섭한 마음이 들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전기불을 밝힌 그 소란스런 일상으로의 복귀가 짐짓 두려워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진실로 깨끗한 것은 더러움에서 나오고 밝은 것은 언제나 어둠에서 나온다 했던가. 가장 긴 정전사태를 겪으며 잃어버린 것들은 많았지만 분명 얻은 것도 있었다. 어둠 속에 앉아 한가하게 나를 돌아보고 나는 어디쯤 와 있나 생각해보는 시간들이 그것이었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오랜만에 촛불 밑에서 읽은 고은 시인의 ‘그 꽃’이란 시이다. 열다섯 자로 함축시켜 끝낸 이 짧은 시에는 깊은 메시지와 삶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때로 내리막을 걸어보는 일은, 어둠을 맞닥뜨리는 일은 그 어떤 일보다 값지다. 내려가는 길에 보이는 것들은, 어두워진 다음에 빛나는 것들은 우리 삶에 있어 아주 소중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맑은 물의 수초에서부터 시작한 반딧불이들의 생은 마지막 보름 동안을 이슬만 먹고도 꽁무니에 빛을 달고 날아다니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나의 삶도 이제는 이울기 시작하는 시점에 서 있는 것 같다. 시력마저 약해져 먼 곳을 바라보는 것도 가까운 곳을 바라보는 것도 시원치가 않다. 흐려진 시력 앞에서는 모든 풍경이 두루뭉술하게 보인다. 이제는 모든 사물을 두루뭉술하게 바라볼 줄 알아야 되는 나이가 되었다는 표시이리라. 세세하게, 낱낱이 들여다볼 이유가 있는 것들은 돋보기를 쓰고 들여다보듯 따뜻한 시선으로 여과시켜 보라는 뜻일 것이다.
다시 찾아든 뒤뜰의 반딧불이들을 바라보기 위해 가만가만 밤의 데크로 나가본다. 생의 마지막 며칠을 향해 치열하게 날고 있는 반딧불이들의 생애가 별처럼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달을 보기 위해 현관 밖의 외등마저 끈 채 고요히 서 있어 보면 이틀만치 이운 열이렛날의 달이 어두워진 내 이마 가까이로 노랗게 내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pinkmd411@hanmail.net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