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 밭에 굴러도 이생이 좋다는 우리 말 속담이 있다.요즘 주위에서 세 사람이 세상을 등졌다. 한사람은 가깝게 지내던 친구였으며 두 사람은 지인의 가족이었다.그 세 사람중 한분은 갑작스런 죽음이었기에 더욱 놀라고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정말 누구 차례인지 몰라" 친구들은 한숨을 쉬며 각기 이런 말들을 했다.정말 누가 먼저 저승 사자가 와서 데려 갈지 이제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 되었다.그만큼 우리들은 나이를 먹을만큼 먹고 늙었다는 말이다.
아무리 운동을 많이 하고 생체 나이가 젊었다 해도,또 얼굴에 보톡스를 맞고 좋다는 화장품들을 다 쳐 바르고 치장을 있는대로 한다 해도 들을 만큼 들은 나이를 피해 갈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것이 바로 비극이며 슬픔이다.
그러나 인간에게 신이 준 최고의 선물은 망각이다. 이 고마운 망각 때문에 우리들은 며칠 지나면 다 잊어버리고 또 깔깔대며 웃을수가 있고 행복해 질수가 있다.
나는 젊었을때 늙어지면 행복할수 있을까를 두고 고민 한적이 있다.그런데 놀라운 일은 행복이란 젊을때나 늙어서나 공평하게 즐길수 있는 감정임을 깨닫고 스스로 놀라고 있다. 물론 행복을 느끼는 일이나 감정은 분명히 다르다.
젊어서는 불타는 정열이 있었다면 늙어서는 조용함과 편안함이 있다.이 편안함은 아마 치열했던 삶에서 한발 자욱 물러나고 모든 것을 버리고 내려 놓은 데서 오는 일종의 안도감이나 한가로움 같은 것이 아닐까.
나는 다섯살때 아버지를 잃어 버렸기 때문에 어릴때 아버지가 있는 아이들을 부러워 하며 자랐고,누구보다 아버지가 없는 쓸쓸함을,그리움을 느끼며 살았다.
내 이복 오빠도 내가 국민학교 시절 자살이라는 끔찍한 종말로 인생을 마감했고, 유명한 축구선수였던 형부도 나이 삼십대 중반에 돌아 가셨기 때문에 너무 많은 죽음을 어릴때 부터 접하고 살다가 미국에 이민 오면서 부터 우리 집은 죽음의 그림자로 부터 멀어지게 되었다.
그 이유가 선산에 있던 산소들을 모두 화장하고 없애고 부터였다고 집안의 어른들은 믿고 있다.그 이유가 어떻든 그후 죽음의 그림자들은 한동안 멀어져 있었다.미국에 오고난후 축복 받은 제 이의 인생을 마음껏 즐기며 살았다.그야말로 고생 끝 행복 시작이었다.
이십대에 나는 너무도 많은 인생의 아픔을 견디며 살았다.첫 결혼의 파경과 아이들과 떨어져 살아야 하는 아픔과 그리움으로 내 삶은 오랫동안 슬픔으로 얼룩져 있었다.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라는 말이 있다. 어떤 고통이나 슬픔이나 괴로움은 시간이 지나가면 다 사라지게 마련이다.
고생은 젊어서 해야 한다. 젊음은 고생 속에서도 희망과 꿈이 있기 때문이다.늙어서 당하는 고생은 꿈이 없기에 더 비참하고 슬프다. 요즈음 한국에서 쪽방촌에 사는 노인들의 이야기가 가끔 방송에 나오는데 늙은것도 서러운데 가난으로 찌들고 병으로 고통 받는 그들을 보며, 미국에 사는 사람들은 그래도 행운아들이란 생각이 든다. 적어도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데 최소한의 필요한 돈은 나라로 부터 받기 때문이다.
나는 칠십대에 들어선후 제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아침에는 운동을 한후 친구들과 함께 걷고, 클럽에 가서 공짜 커피 한잔을 마신후, 삼사십분 온갖 수다를 떨다가 다시 각자가 헤어져서 볼일들을 본다.
집에 와서 신문을 꼼꼼히 읽고 일주일에 두세번은 딸네 가서 손주 둘을 보아주고 함께 논다. 한동안 너무 바빠서 며칠 딸네 집에 못갔더니 꼬마 둘이서 할머니를 기다린다고 대문 밖에서 한시간 이상을 서성였다는 딸애 말을 듣고 마음이 짠했다.
며칠전 네살이 된 아이는 나를 끄랜마로,이제 두돐이 되어가는 꼬마는 나를 겐마!로 부른다. 그애들을 보며 사랑을 주고 받는 이 일상의 평범함이 바로 행복임을 느낀다. 아이들은 작은 일에도 깔깔대며 웃는다. 그 맑은 웃음이 푸른 창공으로 퍼져 갈때 나는 또 무한한 행복을 느낀다.
그들을 사랑하되 야단은 치지 않는다.이게 바로 늙은이의 특권이다.야단 치는 것은 우리 딸애 몫이다.
우리 집은 요즘 들어 더 북적인다.성경 공부를 끝내고 집에 오자 남편이 스파게티를 만들어 놓았다. 열 두어명이 식당 보다 더 맛있다고 이구동성으로 칭찬을 하자 그는 싱글벙글 한다. 자신의 친구는 없지만 우리 집에 오는 모든 사람들을 좋아하고 반긴다. 그것도 팔자인가 보다.
내가 사는 로스모어 안에 드디어 한국인의 교회가 생겼다. 우리들의 골은 앞으로 한국인만이 아닌 모든 인종들을 막라한 이중언어의 교회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 꿈이다. 마지막 인생 길에서 쓸쓸하고 외로울때 그들을 편안히 떠나게 해주는것도 아름다운 사랑의 행위다. 종교를 가진자들은 안 가진자보다 죽음을 편안히 맞는것 같다. 이제 네 차례가 되었다고 했을때 네!하며 당당히 갈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늙어서 가질수 있는 행복의 비결 중에 모든 것을 함께 나눌수 있는 친구들이 포함돼 있다고 한다. 친구중에는 산 같은 친구,땅 같은 친구,또 좋을때만 날아오는 나비나 늘 저울질 하며 왔다 갔다 하는 친구가 있다는 애기를 들었다. 이왕이면 나는 언제나 묵묵히 거기 있어 주는 산 같은 친구나 모든 것을 내어 줄수 있는 푸근한 땅 같은 친구가 되었으면 한다. 이런 친구를 한사람이라도 가진 사람은 진정 부자일 것이다.
가끔 살아 가면서 나는 과연 행복한가? 를 우리들은 질문하며 살아야 될것 같다. 나 자신만의 행복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주위를 행복하게 만드는 비결을 터득해 간다면, 우리네 인생은 허무하지도 않고 인생은 아름다워!라고 말하며 살아갈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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