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은 생로병사의 압축장이다. 신생아들이 고고(呱呱)의 성(聲)을 발하면서 탄생되는가 하면 그 아이들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병 때문에 입원실을 차지하고 있다가 더러는 병원에서 최후를 맞기도 한다. 필자가 이유모를 하혈 때문에 7월 초 닷새 동안 입원했던 홀리 크로스 병원만 해도 그렇다. 다행히 지혈이 되었고 암과 같은 중병 증상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큰일 날 뻔했다.
한편 나의 아내가 나이 만 40세에 넷째 아이 기영이를 난 곳도 바로 그 병원이었고 또 큰 딸 아이의 세 아이들도 모두 그곳에서 태어났다. 특히 1986년에 태어난 첫 손녀 크리스티나는 7월 23일부터 그 병원의 조산아실에 간호사로 일하게 되어 더욱 감개가 깊게 생겼다.
그가 메릴랜드 대학을 몇 년 전에 졸업한 후 의사가 되고 싶다고 의과대학 입학 시험에 두어 차례 도전하더니 워낙 수학이나 자연 과학에 있어서 낙제생인 외할아버지를 닮았던지 실패하고는 간호대학을 졸업한 게 두 달 전이었다. 조산아실 간호사를 세 명 채용하는데 400명이 지원했다니까 경쟁이 133대 1이라서 필자가 견습기자 시험 때 겪은 30대 1의 경쟁은 저리가라고 할 정도다. 보수에 있어서도 할아버지를 쉽게 이긴다. 1959년도 동아일보 견습기자 월급이 3만환 시절이었으니까 1년으로 치면 200불 미만이었다.
1969년에 필자의 미국 첫 직장 하와이대학 조교수 연봉이 1만800불이었다. 크리스티나는 주당 36시간 계산으로 기본 연봉이 5만1,000불이고 오버타임과 주말 근무를 하면 6만불이라니까 나보다 다섯 배 이상의 보수로 첫 직장을 시작하는 셈이다. 물론 세월이 달라진 것은 사실이다.
간호사들 중 마취과 전문으로 가면 연봉이 10만불 이상이라니까 미국 직장인들의 수입 중간선을 훨씬 뛰어넘는 숫자다. 간호사들 중 남자들이 늘어나는 이유 중 하나인지도 모른다. 여기서 말하는 간호사들은 간호대학 졸업 후 간호사 시험에 합격한 공인 간호사(RN)를 말한다. RN이 아닌 보통 간호원들은 RN보다 수입이 낮을 것은 분명하다. 병원에는 그밖에도 실험실의 기술자들, 방사선과 기술자들 그리고 청소와 세탁에 종사하는 인원들과 행정 담당 직원들도 많다.
병원의 시설 유지비와 자료비에 더해 인건비가 매년 인플레이션 보다 더 빨리 올라간다는 통계가 있다. 그러니 병원 입원비가 안오를 리 없다. 필자의 입원비 내역을 청구해서 보았더니 도합 1만1,311.34불이었다. 그중 제일 큰 액수가 닷새 동안 있었던 입원실비 7,222불로 하루에 1,444.40불이었다. CAT 스캔 등 방사선 검사료는 1,400불이 좀 넘고 대장 내시경 검사에는 1,300불이 들었다.
많은 노인들처럼 나와 나의 아내는 메디케어 B에 들어 있어 200불을 매달 내고 있는데 병원에 입원하면 80%를 메디케어에서 내주게 되어 있다. 나머지 20%를 충당하기 위해 둘이 매달 422불을 지불하면서 보충 보험에 들어 있다. 그에 더해 혹시 병원, 재활원 또는 양로원 등에 장기적 입원을 할 경우가 있을 때 대비가 되도록 한 달에 206불을 지불하는 장기요양보험에도 들어있으니 보험금 내다가 가난해진다(insurance poor)란 표현이 우리 같은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 같다.
며칠 동안이었지만 입원이라는 것이 얼마나 고역인가를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나의 대장 내시경 검사를 월요일에나 해야 하기 때문에 금요일부터 내내 건더기는 하나도 없는 국, 주스 등 음료식만 마셔야 되는 처지였다. 워낙 시원한 오이김치와 냉면 등으로 여름에도 잘먹어오던 사람이 갑자기 그리된 데다가 옆 침대 사람은 호텔에서의 룸 서비스 식으로 메뉴에서 갖가지 음식을 주문해 먹는 것을 듣는다는 게 여간 괴로운 게 아니었다.
81세라는 그 사람은 여러 차례의 암수술에다가 다른 병발 증세도 있는 것 같아서 하루에도 의사들 서너 명이 몇 차례 다녀가곤 했지만 기억력은 비상한지 방문하는 친척들과의 대화는 끊임이 없었다. 그러나 네 시간이 멀다고 갖가지 약물을 혈관으로 공급받는 사실을 옆에서 듣고 있자니 왜 9988234란 우스갯소리가 생겨났는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무병장수(無病長壽)-참으로 좋은 말이다. 오래 살되 병 없이 그리할 수 있어야 만복이다. 그러나 현 세상이 계속되는 한 장수래야 100살이 넘기 어렵고 늙음과 질병이 수반되는 삶일 뿐이다. 예수께서 주기도문에서 가르쳐주신 대로 그의 왕국이 지상에 임하고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이 땅에도 이루어져 복낙원이 될 때에만 무병장수 정도가 아니라 완전한 건강 가운데서의 영원한 생명이 가능할 것이다. (요한계시록 21:4, 5) 나의 그 같은 믿음이 내 살아 생전에 실현되어 부활이 아니라 아마겟돈을 생존하여 새 세상에 들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만은 혹시나 하고 초조해지는 경우도 있는 것은 아마도 나이 탓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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