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네 번에 걸친 하혈 때문에 핏기 사라진 창백한 얼굴과 주체 못하는 몸가짐으로 응급실엘 갔는데 수혈은 거부하니까 염수 공급과 산소 호흡기 등이 즉각 몸에 부착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팬티만 남기고 환자복을 입힌다. 경미한 증세로 입원하는 사람들은 예외이겠지만 입원 환자들은 끈이 뒤에 달려 있어 스스로 끈을 매어 뒷모습을 가릴 수도 없는 환자 복장이 상징하는 것처럼 입원하면 의료진 특히 간호사의 개입이 없이는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신세가 된다.
더군다나 현기증 때문에 넘어질 위험이 있는 사람은 하다못해 대소변마저 간호사나 보조 간호원의 도움이 없이는 혼자서 해결할 수 없으니 일시적인 현상인지 몰라도 신체의 부자유는 노예보다도 못하다는 느낌이다.
그러자니 병원에는 환자 한 명당 종업원들이 여럿일 수밖에 없다. 실버스프링의 홀리 크로스 병원에는 신생아들의 침대를 합쳐 도합 455개의 침대가 있는데 병원과 관계가 있는 의사들 수는 1,200명이고 간호사들 1,000명을 포함한 종업원들의 수는 3,200여명이란다. 1년에 병원 환자 누계 수는 18만 이상이라니까 작은 시설이 아니다.
필자의 입원 첫날은 자못 비장한 생각이 들곤 했다. 예를 들면 내가 누어있는 침대에서 몇 명이나 죽어나갔는가라는 공상이 들면서 나도 다음 차례가 아닌가라는 근심마저 생겼다. 침대에 전기 모터가 부착되어 상반신이나 하반신의 위치 변화를 쉽게 한다지만 자신의 침대가 아닌 곳에 누어있는 자체가 끌끌해서 잠간 졸다 말다 깨기를 수십 차례 겪었다. 워낙 50년 동안 동고동락해온 아내가 옆에 없으면 잠들기가 어려워 평소에 아내가 처제 집에 혼자 갔다 온다고만 해도 기분 나빠 하는 나 같은 사람은 불과 며칠이지만 입원 생활이 지겹기만 했다.
마침 아내는 냉방 기계 수리를 밤 12시경에나 하러 온 기술자를 기다려야 한다든지 집을 팔고 나서 다른 집을 찾아야 하는 막내딸을 도와주느라고 눈 코 뜰 새 없이 바빴기 때문에 병실로 나를 찾아오는 것이 뜸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나의 소견머리 없는 짜증을 여러 번 듣게 되었다. 나의 투정은 특히 같은 병실의 다른 침대에 누워 있는 81세의 환자에게는 딸, 사위, 아들 등 자주 올 뿐 아니라 와서는 두어 시간씩 담소하는 것과 비교되었기에 그랬을 것이다.
잔병에 효자가 없다는 한국 속담은 아무리 착한 자식도 장기적인 병치레를 하는 아버지나 어머니를 돌보는데 있어 한계가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직장이 있고 자식들을 돌보아야 하는 입장에서 노부모의 심각한 병구완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병원에 더해 양로원이 있고 심지어는 비교적 안락한 가운데 임종을 맞게 하는 종생원(終生院)마저 생겨난 것이리라. 그러나 간호사들이나 보조 간호인들은 잔병 정도가 아니라 아무리 고통스러운 질병 때문에 오 분이 멀다 하고 울부짖는 환자들에게 불평을 하기는커녕 계속 친절하게 대한다. 간호사들을 백의의 천사라고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81세의 옆 침대 환자가 들어오기 전에 두 세 시간 내 방에 있었던 젊은 환자는 아마도 마약 때문이었든지 ‘나 죽겠다’라는 고성을 몇 분 간격으로 뱉어 나의 참을성에 대한 적지 않은 도전이 되었다. 그러나 간호사들은 한마디 불평도 없이 계속 달려와 그에게 극진한 관심을 보이며 곁에 앉아 있는 그의 어머니를 위로하는 것 같았다. 돈 만 벌어가기 위한 직업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환자들에게 대한 자비와 사랑과 친절이 간호사의 길을 선택하는데 한 몫을 했을 것이 분명하다.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 19세기 크리미아 전쟁 이후 간호학교를 세우고 간호원들의 질을 향상시켰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간호원들은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흰색 옷을 입고 흰 모자도 머리에 쓰곤 했었다. 20세기 중엽까지의 영화를 보더라도 그랬었는데 언제부터인지 흰 상의와 흰 스커트가 사라지고 푸른색 바지의 간호복이 표준이 되어버렸다. 어렸을 때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당시에는 도립 병원 등 큰 병원 안이나 옆에 간호고등학교가 있었고 졸업생들이 간호원으로 배출되었다. 스승 사자가 붙은 간호사라는 칭호는 아마도 종합대학교나 의과대학에 간호대학들이 생기기 시작한 1960년대 초부터가 아닌가 싶다.
이번 홀리 크로스에서 만난 간호사들은 미국 태생은 두엇뿐이고 한국, 에티오피아, 가나, 라이베리아 등 거의 유엔 수준의 여러 나라 출신들이었다. 개인적인 차이들은 있건만 환자들을 돌보고 위로하는 그들의 노고는 칭찬 받아야 마땅하다. 질병이 없는 세상이 되기 전에는 간호들의 헌신적인 친절과 돌봄이 꼭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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