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make me an instrument of your peace.
Where there is hatred, let me sow love.
Where there is injury, pardon.
Where there is doubt, faith.
Where there is despair, hope.
Where there is darkness, light.
Where there is sadness, joy.
주(主)여,
저를 당신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심게 하소서.
상처가 있는 곳에 용서를,
의심이 있는 곳에 믿음을,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이 있는 곳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게 하소서.
영어공부를 진지하게 여기는 이들께 늘 전하는 말은 "애써 외우라"는 것 뿐입니다. 단어를 익혀 외우고 좋은 문장을 ‘통채로’ 외우고 삼켜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라는 겁니다. 옛날 우리 선조들은 천자문을 외우며 한학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점점 어려운 내용, 동몽선습/명심보감/사서삼경같은 엄청난 분량도 온통 모조리 외우고 익혀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우리가 우리말에 제법 능숙한 이유는 제법 많은 우리말 문장들을 알게모르게 외우고 삼켜 ‘온전(穩全)히’ 내 것으로 만들어 온 까닭일 뿐입니다.
그런데, 외국어인 영어를 공부하는 한국 사람들 대부분은 대충 겉핡기 식으로 이것저것 둘러보다 정작 꼭 익히고 외울 내용들을 무심코 지나칩니다. 그러다 보니, 오랜 동안 영어공부를 했다는 데도 말이든 글이든 거의 반벙어리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참으로 애석하고 애석한 일입니다. 나라 전체가 그토록 엄청난 시간과 재산을 소모하는데도 영어공부의 진척은 슬플 정도로 기대 이하에 그치고 있는 참담한
실정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래 전부터 ‘영어 서당(書堂)’이란 개념 도입이 절실하다고 외쳐온 바입니다. 서당식 공부란 한마디로 ‘닥치고 외워!"입니다. 시쳇말의
속된 느낌을 빌면서까지 서당식 영어공부의 구체적 실효성을 강조해보는 겁니다.
평생 영어공부에 나름대로 열정을 불살라온 체험에 근거한 저의 소박한 결론이기도 합니다. 문법적으로 따지지 말고 우선 무작정 외우란 겁니다, 특히 사람의 정신과 영혼에 유익한 좋은 문장들을 잘 골라서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지문(地文)은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 성인께서 선물하신 "평화의 기도"입니다. ‘무작정’ 따라 읽고 이번 기회에 꼭 외워두시기 바랍니다.
O Divine Master,
grant that I may not so much seek
to be consoled, as to console;
to be understood, as to understand;
to be loved, as to love.
For it is in giving that we receive.
It is in pardoning that we are pardoned,
and it is in dying that we are born to
Eternal Life.
Amen.
오 거룩하신 주여,
위로 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 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 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 받으며,
자신을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원한 생명으로 탄생하기 때문입니다.
아멘.
영어 비교구문 중 ‘not so much A as B’를 공부한 기억이 나실겁니다. ‘A라기 보단 B’란 뜻입니다. ‘B rather than A’와 같은 뜻이죠. 예를 들면, "I am not so much a scholar as a teacher." 난 학자라기보단 선생이란 말입니다. 바로 이 구문을반복적으로 잘 가르치는 명문장이 바로 오늘의 지문 프란치스코 성인의 ‘평화 기도’입니다.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A라기 보단 차라리 B’란 우리말 표현을 익히고 쓸 때 구태여 문법적으로 따져 배웠던가요? "싫어, 난 짬뽕보다 짜장면이 먹고싶단 말이야!" 이렇게 단박에 의사표현하던 어린시절의 내가 굳이 문법을 따지며 말했던가요?
자기도 모르게 익숙한 우리말이 과거의 재생학습 덕분에 술술 말해진 겁니다. 영어론 어떨까요? 우리말처럼 자연스레 말해지고 쓰여질 수 있으려면 숱하게 여러번 반복학습된 결과가 아니곤 사실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길래, ‘영어서당(書堂)’인 겁니다. ‘닥치고 외워!’를 거듭거듭 반복한 후에야 비로소 입이 열리고 글줄이 열리는 겁니다.
물론 시간이 걸립니다. 주기도문도 그렇고 성모송도 그렇습니다. 반야심경도 그렇고 법구경, 도덕경 모두 그렇습니다. 몽땅 외우는데는 그만큼 절실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절실한’시간이라 했습니다. 그만큼 긴요하고 절실한, 그렇게 ‘긴실(緊實)’한 심정으로 외우고 삼켜버려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한 영어공부는 결국 사상누각(沙上樓閣)일 뿐입니다.
When the worker is ready, the WORK will appear!
일할 자가 준비되어 있으면 ‘그 일’은 저절로 나타난다.
When the student is ready, the teacher will appear.
준비된 제자에게 스승은 결국 나타난다는 이 말씀을
살짝 바꿔봅니다. 차제에 스스로 영어서당 훈장(訓長)
자격을 가늠해보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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