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명인지 세 명인지 괴한들이 날카로운 칼로 나를 난도질을 하는 흉몽을 꾸었으니 간담이 서늘해져 잠을 깰 수밖에 없었다. 시계를 보니까 7월6일 새벽 2시쯤이었다. 변의를 느껴 변기에 앉자마자 상당히 큰 대변이 나오더니 항문에서 무엇이 죽죽 쏟아지는 게 아닌가. 넓적다리를 들고 변기 속을 보았더니 새빨간 선혈로 가득 차 있었다. 곤히 자던 아내를 깨울 수밖에.
아내도 나도 피 색깔이 검은 것이 아니라 새빨갛다는 사실을 우려하면서도 날이나 밝아야 병원에 갈 수 있으니 도로 침대에 들어갔다. 그러나 10분도 못되어 급한 변의를 또 느껴서 변기에 앉기가 무섭게 피가 죽죽 쏟아져 내리는 게 아닌가. 변기통에 가득 찬 피를 물로 씻어 내리고 또 침대에 들어가자마자 꼭 같은 과정이 두 번 더 되풀이 되었다. 내가 점점 어지러워 쓰러질 것만 같다고 하니까 구급차를 부를까 어쩔까 얘기 끝에 아내가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나를 부축하여 이층에서 아래층까지 13계단을 내려오는 고충이야말로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짐작할 수조차 없는 고통과 현기증의 절정이었다.
더구나 그 전날 냉방기계가 고장났기 때문에 실내 온도가 95도쯤이었으니까 아내가 차를 가지러 간 잠간 사이라도 입구에 서 있을 수조차 없게 힘든 상황이었다. 피를 그처럼 많이 흘렸으니까 병원엘 갔다가 집에 못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공포심마저 느껴졌다. 죽는다는 것이 이런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면서 아내의 부축으로 간신히 차에 올라타고 아내는 15분 거리에 있는 홀리 크로스 병원으로 내달렸다.
워낙 많은 양의 출혈이었던지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는 아마도 내 얼굴이 백지장 상태였던 모양이다. 식은땀이 흐르면서 한기를 느끼는 동시에 정신이 몽롱하여 누어있는 동안 간호사 두 명이 두 손의 혈관과 양 팔굽 안쪽의 혈관에 주사 바늘을 찔러 넣어 염수와 기타 약물이 공급되게 하면서 심전계 등 각종 계기에 나의 현 상태가 측정되도록 가슴팍에 열 곳 이상의 연결고리를 부착시키는 것 같았다.
아내가 이미 등록하면서 어떤 상태에서도 수혈을 거부하는 확인서를 제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응급실 의사는 나에게 혈압이 85/50이며 혈색소 수치가 0.6인 상황에서 수혈을 안 하면 죽을 수도 있다고 단언한다. 없는 기운에도 안간힘을 내어 내가 수혈을 거부하는 이유는 하나님께 대한 충성 때문이며 죽더라도 부활의 소망이 있으니까 병원 쪽에 책임을 안 묻겠다고 답변했다.
곧이어 감마선 방사실험실로 옮겨졌다. 내 피를 뽑아 동위원소를 섞어서 다시 혈관으로 집어넣으면서 방사선 의사인지 기사인 인도인은 내가 왜 수혈을 거부하는가를 궁금해 했다. 성경을 많이 아는 사람인 모양으로 피를 먹지 말라는 여호와 하나님의 율법은 유대인들에나 적용되었으니까 크리스천들에게는 문제될 게 없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 등으로 구성된 예루살렘 회중의 통치제가 이방인들이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을 때 필요한 것으로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찌니라”가 결정한 내용이 언급된 사도행전 15장29절을 인용하게 되었다. 그 인도인은 멀리해야 되는 피가 동물의 피 아니냐고 대꾸했기에 동물의 피도 고귀한 것이면 사람의 피는 얼마나 더 값지겠느냐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원형의 전자 촬영기 아래로 왔다 갔다 하는 좁디좁은 딱딱한 실험대에 누어있는 불편함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한 시간 이상 걸린 검사 결과로는 아무 곳에서도 출혈되는 것을 발견할 수 없었다는 내용이었다. 일단 중(中) 중환자(Intermediate Care)실로 옮겨졌다가 두 번째로는 컴퓨터 X선 체축단층사진 검사(CAT Scan)실로 보내진다. 마침 주말이 끼어 결장 내시경 검사를 월요일 아침에 하게 될 위장전문의인 굽다 박사가 병실로 찾아와서 하는 이야기는 감마선 검사 결과와 마찬가지로 피가 나오는 곳을 발견 못했으니까 일단 안심하라는 내용이었다.
내 배속의 대장과 소장 위치가 뒤틀려 있지만 아마 날 때부터 그런 상태였을 텐데 74세까지 살았으니까 긁어 부스럼을 만들 것이 아니라 그냥 놔두는 것이 상책이라는 말도 했다. 그러면서 결장 검사(Colonoscopy) 결과에 따라 월요일(7/9)에 집으로 보내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듣던 중 반가운 소리를 들려주었다.
팔과 손등마다 바늘이 꽂혀 있는 상황에 병실 침대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해서 아내로 하여금 한국일보에 전화를 걸어 7월7일 칼럼은 쉬는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병실에서 첫날밤을 지내면서 만감이 교차되는 느낌이었다. 이 글은 두어 차례 더 쓸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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