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얼굴은 환했다. 뉴욕타임스에 실린 그 사진을 보는 독자들의 얼굴도 반사적으로 환해졌으리라. 환한 것은 그들의 얼굴만이 아니고, 몸 주위에 아우라가 있는 듯 몸 전체도 환했다.
한 사람 한 사람 환한 것에 그치지 않고, 그들이 모여 있던 제네바 오디토리움의 공기 자체도 빛을 발하고 있는 듯 했다. 우주의 비밀을 한 꺼풀 더 벗겨내었다고 믿는 그들의 환희가 발하는 빛이었다. 세계 곳곳의 실험실에서도 과학자들이 모여 온라인으로 이 발표를 듣고 함께 샴페인으로 자축을 했다고 한다.
태초의 순간에만 잠깐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돼 ‘신의 입자’로 불려왔던 입자를 발견해 이제 우주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물질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우주 탄생의 비밀’을 풀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하니 환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현대 물리학의 기본 모델인 ‘표준모형이론’에 의하면 우주는 기본입자 12개, 힘을 전달하는 매개입자 4개, 그리고 이 ‘신의 입자’ 이렇게 17개의 입자로 이뤄져 있다고 한다. ‘신의 입자’는 1960년대에 물리학자들이 우주 만물의 존재를 설명하려면 모든 입자에 ‘질량’을 부여하는 입자가 존재해야 한다는 가설을 내세우면서 세상에 알려졌다고 한다.
이번에 새로 확인된 입자는 이렇게 물체에 ‘질량’을 부여하는 역할을 맡은 아주 중요한 구성요소이기 때문에 ‘신(神)의 입자’라고 까지 불리게 되었고, 이 입자로 인해 입자들은 각자의 질량을 받아들여 물질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이론인 것이다. 이 입자를 발견하는데 한 몫 단단히 한 첨단의 거대강입자가속기를 만드는데 10억달러가 들었고, 2년 전부터 가동하기 시작했으며, 6,000명의 과학자가 연구에 참여했다고 한다.
이 대단한 발견은 마치 “그동안의 연구 성과가 외계인이 지나간 흔적을 발견한 것이라면 이번에는 외계인을 포착한 것” 이라고 하는데, 우주의 비밀을 풀려고 애를 쓰는 이들이 어찌 과학자뿐이랴. 시인 역시 끊임없이 우주의 깊은 비밀을 풀고 있다. 사물의 실체와 본질을 밝히기 위해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을 세심하게 관찰해 한 편의 시로 그 비밀의 열쇠를 우리에게 선사한다.
안도현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시인의 관찰은 과학자의 관찰에 버금가는 것이어야 한다. 아니, 사물의 현상이나 외피에 집중하는 과학자의 관찰을 넘어 시인은 현상의 이면을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
“외계인이 지나간 흔적이 아니라 외계인을 포착한 것과 같다”는 이 ‘신의 입자’의 발견은 바닷가 백사장 위에 있다가 없어진 발자국 흔적의 행방을 설명해줄 수 있을까? 김명수 시인은 그의 시「발자국」에서 그걸 벌써 알아버렸음을 알 수 있다.
“바닷가 고요한 백사장 위에/ 발자국 흔적 하나 남아 있었네/ 파도가 밀려와 그걸 지우네/ 발자국 흔적 어디로 갔나?/ 바다가 아늑히 품어 주었네”
바다가 품어 주었다는 시인의 설명은 10억달러의 거대강입자가속기는 제아무리 애를 써도 알아낼 수 없을 것이다. 과학자의 관찰을 넘어 현상의 이면을 보는 시인은 이렇게 우주의 비밀을 풀어나간다. 아주 작은 것, 우리 가까이 있는 것부터.
현대 물리학의 이 획기적인 발견은 과연 앞으로 사랑의 물리학을 과학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을까? 김인육 시인은 이미 우리에게「사랑의 물리학」을 이렇게 가르쳐주고 있다.
“질량의 크기는 부피와 비례하지 않는다/ 제비꽃같이 조그마한 그 계집애가/ 꽃잎같이 하늘거리는 그 계집애가/ 지구보다 더 큰 질량으로 나를 끌어당긴다./ 순간, 나는/ 뉴턴의 사과처럼/ 사정없이 그녀에게로 굴러 떨어졌다/ 쿵 소리를 내며, 쿵쿵 소리를 내며/ 심장이/ 하늘에서 땅까지 아찔한 진자운동을/ 계속하였다/ 첫사랑이었다. ”
태초의 순간에만 잠깐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신의 입자’가 발견되었으니, 태초에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 야채들이 어떤 모양이었는지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미 김경미 시인은 그의 시「야채사」에서 이 비밀을 이렇게 일러준다.
“고구마, 가지 같은 야채들도 애초에는/ 꽃이었다 한다/ 잎이나 줄기가 유독 인간 입에 달디단 바람에/ 꽃에서 야채가 되었다 한다/ 달지 않았으면 오늘날 호박이며 양파들도/ 장미꽃처럼 꽃가게를 채우고 세레나데가 되고/ 검은 영정 앞 국화꽃 대신 감자 수북했겠다”
10억달러의 거대강입자가속기를 쓰지 않고서도 시인이 이 많은 비밀을 풀어서 우리에게 말해줄 수 있는 이유는 아마도 그들은 마음의 현미경과 망원경을 곁에 두고 사랑으로 세상을 보기 때문이 아닐까.
이영옥 / 대학강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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