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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eking means: to have a goal;
but finding means: to be free,
to be receptive, to have no goal.
찾음은 어떤 목적이 있다는 거다.
그러나 찾아냄은 자유롭다는 것,
예민하다는 것, 목적이 없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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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도반(道伴) 고빈다[Govinda]가 이제 노인이 된 뱃사공 싯다르타에게 구도(求道)에 관해 묻습니다. 뭔가 꼬집어 말하긴 어렵지만, 뱃사람 싯다르타의 전 존재에서 잔잔히 스며나오는 달관의 향기에 흠뻑 취해버린 붓다의 제자 고빈다. 오랜 옛 친구 싯다르타, 이젠 강둑에 살며 오가는 사람들을 실어나르는 뱃사공이 되어버린 도반 싯다르타, 그에게 구도의 열매를 청해 듣는 고빈다.
바라문 집안 귀족 청년들이었던 고빈다와 싯다르타. 삶과 죽음의 근원적 질문을 평생 가슴에 담고, 답이 따로 없는 질문의 녹아듬을 위해 향해 속세를 떠났던 두 청년. 숲속의 고행을 거쳐, 고빈다는 인도 전역에 고매한 스승으로 자자한 명성을 떨치던 석가모니의 제자로 입문하고 …… 하지만, 구도란 오로지 스스로 체험하는 길 밖엔 없다는 걸 이미 알았던 싯다르타는 샤카족 붓다 고타마와의 선문답을 마치고 그 분의 은총 속에 무소의 뿔처럼 홀로걷기를 시작합니다.
그러던 중, 운명의 실타래가 미묘하게 풀리면서싯다르타는 관능적 사랑과 세속의 파도 속에 탐닉의 노예로 전락합니다. 사랑을 파는 여인, 이제 막 갓딴
무화과처럼[like a freshly cut fig] 관능적인 입술을 가진 카말라는 결국 싯다르타의 아이까지도 갖게 되는데...... [늙은 뱃사공이 될 싯다르타는 뒷날 배를 저을 때까지도 이런 사실은 모른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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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eking means: to have a goal;
but finding means: to be free,
to be receptive, to have no goal.
찾음은 어떤 목적이 있다는 거다.
그러나 찾아냄은 자유롭다는 것,
예민하다는 것, 목적이 없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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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으막에 운명적으로 상봉한 고빈다에게 그렇게 말하는 노인 뱃사공 싯다르타. 그의 모든 표정과 몸짓, 그 안에서 결코 놓칠 수 없는 깊은 내면의 평화를 감지하는 고빈다. 스스로도 평생 찾아 해맸건만 아직 자기에겐 찾아오지
않은 그 평화. 바로 그 은총의 속내를 알고 싶은 고빈다. 그에게 싯다르타가 …… 마지못해 이릅니다.
자네가 찾는다는 것, 그거 말인데. 글쎄, 뭔가 찾을 게 있을지도 모르지. 그런데 말일세, 찾는다는 그 자체가 문제가 있는 거 아닐까? 찾아 다니는 건 목적이 있다는 걸세. 하지만, 뭔가 찾았다는 건 이미 자유롭다는 걸세. 더 이상 찾음에 매달리지 않는다는 거지. 다만, 세상이 주는 메시지에 아주 민감한 상태로 사는거지. 삶과 죽음 사이에 벌어지는 온갖 드라마가 전하는 의미를 예민하게 받아 들이는 거야. 결국 따로 목적은 없는 셈이지.
You, O worthy one, are perhaps indeed a seeker,
for in striving towards your goal, you do not
see many things that are under your nose.
“오, 고귀한 친구여, 그대는 실로 구도자일지라도
그대의 목적 달성을 위해 애쓰는 나머지 바로 그대
코앞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들을 간과하는 거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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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eking means: to have a goal;
but finding means: to be free,
to be receptive, to have no goal.
찾음은 어떤 목적이 있다는 거다.
그러나 찾아냄은 자유롭다는 것,
예민하다는 것, 목적이 없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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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읽었다고 생각했던 헤르만 헷세의 "싯다르타," 이제 보니 결코 읽은 게 아니었습니다. 오늘 아침, 우연히 서재에서 책상 위로 떨어져 내린 조그만 문고판 "싯다르타." 영문으로 다시 읽는 헷세의 싯다르타. 아, 이게 이런 거였구나! 아, 그 분은 이런 영롱한 얘기들을 이미 한 편의 소설로 소상히 전하셨구나!
"옴"[OM]의 신비, 강물의 소리, 시간의 허상, 사랑과 자비의 대섭리, 사랑의 성전(性典) 카마수트라의 깊은비의(秘意), 그리고 구도의 끝은 결국 찾지않음에 저절로 찾아지는 거란 앤티클라이맥스[anticlimax]! 헤르만 헷세의
"싯다르타," 미국 중/고등학교의 필독서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이 소설을 영문으로 찬찬히 읽고 난 후, 제 생각은 아주 다릅니다.
이런 책은 어릴 때 읽는 게 아니란 생각입니다. 공연히 그저 한번 읽었다는 기억 속에 평생 묻어둘 책이 결코 아니란 얘기죠. 아니, 일생에 걸쳐 적어도 세 번은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 말하는 게 나을 듯합니다. 모르고 한번 읽고,
알듯하면서 다시 읽고, 그리고 … 알고 난 후 고개를 끄덕이며 한번 더 읽을 책이 바로 헷세의 싯다르타란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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