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동해로 흐르는 하천에만 사는 작은 물고기가 있다. 몸길이 5~6cm 정도의 투명한 이 물고기는 습성이 특이하다. 어류로는 거의 유일하게 둥지를 짓고, 다른 작은 물고기들과는 달리 식성이 동물성이다. 암컷 아닌 수컷이 부화와 치어 양육을 맡는 것도 특이하다.
산란철이 되면 수컷은 수초 우거진 곳에 둥지를 만들고 암컷을 불러들여 알을 낳게 한다. 산란을 마치는 즉시 암컷은 둥지를 떠나고 수컷은 이때부터 불철주야 알을 지킨다. 등지느러미 앞에 가시들이 돋아있어 이름이 가시고기, 수년 전 ‘가시고기’라는 소설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바로 그 물고기이다.
소설은 백혈병에 걸린 아들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 아빠의 애끓는 사랑을 담고 있다. 아빠는 10살짜리 아들의 고통을 한 치도 덜어줄 수 없는 무력감에 괴롭고, 전 재산을 처분하고도 모자라 장기까지 팔아 겨우 감당하는 병원비 부담에 목이 졸리고, 아들 살리겠다고 동분서주하는 동안 자신의 몸 안에 퍼진 암으로 또 다른 통증에 시달린다.
그의 헌신 덕분에 아이는 완치되지만 시한부 삶인 그는 이혼한 아내에게 아들을 맡기고 혼자 죽어간다. 아빠는 죽고 아빠의 목숨 건 사랑 위에서 아이는 산다.
소설이 인기를 끌자 그 즈음 KBS TV는 ‘가시고기’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었다. 화면에 담긴 물고기의 부성애는 비장했다. 호시탐탐 알을 노리는 적들을 막느라 물고기는 잠시도 쉬지 못한다. 둥지 짓기부터 10여일 먹지도 않고, 잠도 자지 않고 버티는 아빠 물고기는 새끼들이 부화해 5일쯤 되면 목숨이 다한다.
마지막 순간 물고기는 새끼들이 있는 둥지 앞으로 가서 숨을 거두고, 육식 식성을 가진 새끼들은 그 고기를 먹고 먼 세상으로 헤엄쳐 나갈 힘을 얻는다. 사랑, 희생, 헌신 … 우리가 고귀하게 여기는 가치들은 인간만의 것이 아니다. 자연은 말없이 본능으로 행하고 있다.
당시 소설의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아버지의 사랑을 전혀 다른 시각에서 다룬 때문이었다. 젊은 세대를 제외하면 한국의 전형적 아버지는 눈물겨운 사랑이나 헌신, 다정한 이미지와는 사실 거리가 멀었다. 오렌지카운티에 사는 이성순(53) 씨도 같은 기억이다.
“우리 세대에게 아버지는 늘 어려운 존재였지요. 아버지랑 같이 지내는 시간이 별로 없었고 오순도순 같이 대화하는 분위기도 아니었지요.”
하지만 그는 전혀 다른 아버지이다. 16살 아들을 ‘최고의 VIP 예우하듯’ 세심한 배려와 정성으로 보살핀다. 아들의 눈빛으로 필요한 걸 알고 아들의 편안한 표정에서 보람을 느끼는 섬세한 아버지이다. 지난 3월 백악관 주관 ‘자랑스러운 아버지’ 상을 수상한 그는 뇌성마비 장애아를 키우는 아빠이다.
31살에 미국에 오면서 그는 꿈이 많았다. 돈을 벌어 좋은 일도 하고 명예도 얻고 싶은 꿈, 그리고 아들에 대한 꿈이 있었다. 첫아이가 딸인 그는 둘째로 아들을 낳아 자신의 젊은 시절 꿈이었던 파일럿을 시키고 싶었다.
“아들을 잘 키워 공군에 보내서 제2의 조국인 미국에 헌신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8년을 기다려 얻은 아들은 그러나 전혀 예상 밖이었다. 임신 5개월 만에 너무 일찍 태어난 아기는 새같이 가볍고 작았다. 인큐베이터에서 4개월을 보낸 후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기는 온전치 않았다. 뇌성마비에 청각장애까지 갖춘 아들은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철저하게 무력한 존재로 16년을 자랐다. 16년 그의 땀과 눈물, 기도를 먹고 자랐다.
현재 아들의 지능은 2살, 몸은 열 두어 살 정도이다. 제 또래만큼 몸이 크지는 않지만 보살피는 게 점점 힘에 부친다. 커 갈수록 근육경직으로 팔다리가 뻣뻣해져서 그 몸을 들어 올리고 옮기고 하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아내는 더 이상 감당을 못한다.
“아이한테는 내가 모든 것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내가 꼭 필요한 존재이지요.”
그런 그에게 수년 전부터 이상한 증상이 있었다. 수용소에서 하루 종일 중노동한 노예처럼 몸이 천근같았다. 아침이면 일어나지 않고 그냥 죽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그 원인이 지난 가을 우연히 밝혀졌다. 신장암이었다. 다행히 전이는 없어서 신장 하나를 제거하는 수술로 끝났지만 이제 그는 자신의 앞날이 얼마나 될지 자신이 없다.
“아이보다 내가 먼저 죽으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습니다.”
타자를 위해 나를 온전히 바치는 삶 - 그는 아들을 키우며 신앙이 깊어진 것이 큰 축복이라고 말한다.
권 정 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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