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잘 먹었다고 해야죠, 뭐”
“어떻게 거짓말을 해?”
“그래도 어떻게 못 먹고 버렸다고 해요? 미안해서…”
우리는 며칠 전에 친구가 유기농 햇콩을 알맞게 삶아 곱게 갈아 정성껏 만든 콩국을 한 병씩 받았었다. 그런데 다음 날 막상 먹으려고 하니 이미 쉬어서 먹을 수가 없어 버려야했던 것이다. 이상기온으로 90도가 넘게 더웠고 햇살까지 강렬했던 그 날, 지인도 나도 그 콩국을 몇 시간동안 차에 싣고 다닌 것이 사단이었다.
그렇게 어정쩡하게 며칠을 보내고 있는데 콩국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그녀의 이름이 액정화면에 뜨는 순간 당황했고,‘받지 말까 …’하는 생각까지 잠깐 스쳐갔다. 다행히 확실한 용건이 있어 한 전화였다. 게다가 가게에서 한 전화여서 용건이 끝나기도 전에 손님이 왔다며 다급하게 끊어준 게 얼마나 고마웠던지.
그래도 아마 친구는 콩국에 관해서 일체 한마디도 하지 않은 내가 의아했으리라. 야속한 마음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평소에는 솜씨 좋은 그녀가 만들어주는 음식을 먹고 나면 곧바로 전화를 걸어 호들갑을 떨면서 그 맛을 얘기해주고(실제로 그녀의 음식솜씨는 정말 일품이다), 고맙다는 인사를 해왔기 때문이다.
‘그냥 잘 먹었다고 한마디 할 걸 …’ 하는 생각을 하루 종일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일부러 다시 전화를 해서 그 말을 하는 것은 더 내키지 않았다. 이젠 별 수 없이 시치미 떼고 있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캘리포니아 대학 연구 자료에 의하면 사람은 하루에 평균 무려 200번, 시간으로 따지면 약 8분에 한번 꼴로 거짓말을 한다고 한다. 믿을 수 없는 통계지만 거짓말이라는 것이 사실의 축소, 과장, 왜곡, 은폐 같은 것이 다 포함되는 걸 감안하면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거짓말 심리 연구의 대가로 꼽히는 폴 에크먼은 <텔링 라이즈>라는 책에서 이런 통계를 소개하면서 만일 오늘 하루 동안 단 한 번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사회생활에 문제가 있거나 진짜 거짓말쟁이일 확률이 높다고까지 말한다.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친구와 친구, 교사와 학생, 의사와 환자, 변호사와 의뢰인, 상사와 부하직원, 세일즈맨과 고객, 경찰과 범인 사이에서 거짓말은 빈번히 오가며 이렇게 거짓말은 우리의 일상에서 떼어낼 수 없는, 인간 삶의 중요한 특성이자 인간 존재의 일부와도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면 상사에게 기분 나쁜 감정을 감추고 미소를 짓는 것에서부터 의사가 환자에게 불치병임을 알리지 않는 것, 간호사가 환자의 끔찍한 상처를 보고도 표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 정치인이 선거운동에 내세웠던 공약을 잊어버리고 이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것 등이다. 이 책을 읽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꼭 나쁜 의도에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모두가 편하니까, 혹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될 수도 있으니 있는 그대로 말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도 거짓말을 해서는 안되는 게 글 쓰는 일이 아닌가 한다. 정호승 시인의 시 ‘거짓말의 시를 쓰면서’에서 시인은 이렇게 따끔하게 말한다:
“창밖에 기대어 흰눈을 바라보며/ 얼마나 거짓말을 잘 할 수 있었으면/ 詩로써 거짓말을 다 할 수 있을까/ 거짓말을 통하여 진실에 이르는/ 거짓말의 詩를 쓸 수 있을까/ 거짓말의 詩를 읽고 겨울밤에는/ 그 누가 홀로 울 수 있을까/ 밤이 내리고 눈이 내려도/ 단 한번의 참회도 사랑도 없이/ 얼마나 속이는 일이 즐거웠으면/ 품팔이 하는 거짓말의 詩人이 될 수 있을까/ 생활은 詩보다 더 진실하고/ 詩는 삶보다 더 진하다는데/ 밥이 될 수 없는 거짓말의 詩를 쓰면서/ 어떻게 살아 있기를 바라며/ 어떻게 한 사람의/ 희망이길 바랄 수 있을까”
다음 주에 문학 서클에서 콩국친구를 만나면 나는 사실대로 고백하련다.‘한 사람의 희망이길’바라서 라고 고상하게 말하고 싶지만, 나의 속내는 그게 아니다. 앞으로도 그녀의 소문난 겉절이, 만두, 그리고 콩국을 먹고 싶기 때문이다.
이영옥
대학강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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