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glish for the Soul
[커뮤니케이션 학 박사/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
Arjuna inquired:
Which is considered to be more perfect,
those who are properly engaged in
Your devotional service,
or those who worship the impersonal Brahman,
the unmanifested? [12:1]
아르주나가 묻기를
당신을 사랑하는 헌신자 박티수행자와
당신을 무형(無形)의 실재(實在)로 여기고
지혜로 당신을 찾는 갸나수행자 중
누가 더 요가(합일, 合一)의 길을 가는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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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과 인사동에서 저녁을 마치고 많은 사람들이
뒤섞이는 길을 걷습니다. 어수선한 분위기 사이로
서양사람 한 분이 등 뒤에서 내 이름을 부릅니다.
"옴 나모 바가바테 바수데바야!" ‘바수데바’는
산스크릿트 말로 ‘모든 것에 거하시는 그 분’이란
뜻입니다. Vasudeva means "He who dwells in all
things." 이미 오래 전, ‘요가 티처’란 타이틀을
하나 선사 받을 때 덩달아 따라온 내 요가 이름이죠.
바로 그 이름을 내 등 뒤에서 고요히 외치며
인사동 큰 길에서 나에게 함박웃음을 짓던 파란 눈의
친구는 아주 얇은 책 한 권을 내 손에 쥐어줍니다.
크리슈나 신의 가르침을 집대성한 바가바드 기타의
요약본 비슷한 우리말 책이더군요. 비틀즈의 멤버
죠지 해리슨이 온 세상 들으란 듯 노래한 ‘하레
크리슈나’ 챈팅, 바로 그 ‘헌신 요가’를 담담히
설명하는 소책자를 선물한 인사동 서양남자가 나를
부른 이름이 바로 ‘바수데바’. "옴 나모 바가바테
바수데바야!" "옴 나모 바가바테 바수데바야!"
"옴 나모 바가바테 바수데바야!" 그렇게 내 안의
노래를 대신 불러주던 벽안의 젊은이.
어젯밤 그렇게 내 손에 쥐어진 소책자를 오늘 아침
커피 한 잔에 읽다보니, 늘 내 안에 있던 바가바드
기타 구절들이 몇 개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헌신과
지혜 중에 무엇이 낫냐는 아르쥬나의 질문에 답하는
크리슈나 신의 가르침이 새삼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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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lessed Lord said:
He whose mind is fixed on My personal form,
always engaged in worshiping Me with great and transcendental faith, is considered by Me to be
most perfect.
슈리 바가반께서 말씀하시길
순수한 믿음으로 나에게 집중하고
흔들리지 않고 헌신의 길을 가는 것이
완벽한 요가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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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yoga)라는 말은 합일(合一)이란 뜻입니다.
’그 분’과, 또는 말과 인식을 넘는 ‘그 무엇’과 합쳐져
둘이 아닌 "하나’의 경지에 이른다는 게 바로 요가의
본래 뜻입니다. 지금 당장은 내가 있고 하나님도 따로
계시지만, 본래 내가 ‘그 분’으로부터 잠시 나왔고 결국
다시 ‘그 분’께로 돌아갈 예정으로 걷는 게 인생이란
여정임을 늘 마음챙겨 깨닫는 수행이 바로 요가의
길입니다.
신이란 개념은 허상이다.
하지만, 신의 본질은 실체다.
"The concept of God is an illusion;
but, the essence of God is true."
오래 전 어느 티벳 스님으로부터 전해들은 이 말씀이
바로 오늘 바가바드 기타에 나오는 말씀과 꼭같은
내용입니다. 신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마치 사람의 모습과
꼭 닮은 듯 신봉하는 게 얼핏 어리석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신비주의자들이 얘기하는 초월적 지혜에 비해 ‘짚신’을
하나님으로 믿는 자들이 무지몽매한 군상으로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무슨 문제가 되리오?
"순수한 믿음’으로 신에게 ‘집중’하고 어떤 헛소리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굳굳하게 헌신[devotion]의 길을 걷는
박티 요기에게 신학적 논의와 신비철학의 세계는 별로
의미있는 일이 아닙니다. 일단 믿고 따르기에도 너무 바쁜
까닭이죠. 따로 시간을 내어 철학이나 신학을 공부하고
논할 여유가 없습니다. 아침에 눈떠 밤에 눈 감을 때까지,
그리고 심지어 ‘잘 때’에도 헌신[devotion] 삼매에 푹 빠져
있는 박티 요기 [Bhakti Yogi], 그에게 헌신과 지혜는 이미
’하나’입니다. 따로 둘이 아니죠.
Wisdom and Devotion are One!
지혜의 요가, 헌신의 요가, 이 둘이 사실 하나임을
신앙으로 체험한 이에게 ‘모습 있는 신’과 ‘모습 없는
신’은 이제 더 이상 따로 둘이 아닙니다. ‘불이(不二)’란
말은 그 자체가 모순입니다. 둘이 아닌 데 굳이 둘이
아니라 말하는 그 자체가 허황되기 때문입니다.
인사동 밤길에 내 이름을 친하게 부르며 등 뒤에
다가온 벽안의 젊은이가 손에 쥐어준 소책자는 바로
이 ‘불이(不二)’를 내내 파헤치고 있었습니다.
"옴 나모 바가바테 바수데바야!"
"Om Namo Bhagavate Vasudevaya!"
그렇게 함께 챈팅하며 잠시 걸은 인사동 길이 왠지
아주 옛날 꼭 한 번 있었던 일같은 기시감(旣視感)이
드는 건 또 왠일일까요?
Cheers!
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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