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중국의 시각장애인 인권변호사 천광청 사건으로 미국과 중국 간의 외교관계가 초긴장으로 치달았었다. 그리고 그 사건 해결에 제롬 코헨 뉴욕대 법대 교수의 역할이 컸다는 언론보도를 접했다. 천 변호사가 미국 관리들에게 자신이 믿을 수 있는 조언자로 코헨 교수를 지목했다는 것이다. 코헨 교수는 과거에 김대중 대통령의 구명운동도 벌였고, 대만의 여성 부총통이었던 여수연을 돕기도 했다고 한다.
코헨 교수에 관한 보도를 보면서 생각난 사람이 있었다. 대학에 다닐 당시 그곳 법대에 한국에서 연구 교수로 와 계시던 분이다. 당시 한국 정권의 탄압에 할 수 없이 미국으로 오셨다고 들었는데, 그 분도 역시 코헨 교수의 도움을 받고 있다고 했다. 한국에서 오신 이 교수님은 상당한 멋쟁이셨다. 헌팅캡 모양의 모자를 쓰셨고, 전형적인 아이비 대학교수 풍의 양 팔꿈치에 둥그런 가죽 패치를 박은 재킷을 입으셨다. 풍채도 좋으셨고 파이프 담배를 태우셨는데 그 모든 것이 대학생인 나에게는 매력적으로 보였다.
이 교수님이 바둑을 좋아하셨다. 한국에서 대학교수 시절 프로 입단대회에서 준결승까지 진출하셨다고 했다. 그때 한 게임만 더 이기면 프로 입단이었는데 다른 준결승 진출자들과 달리 당신은 프로기사로 활약할 것도 아니었기에 차마 전력을 다 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니 그 교수님의 바둑 수준이야말로 아마추어로서는 최고였다고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그 당시 대학원의 한국 유학생들 가운데 현직 공무원으로 바둑을 이 교수님만큼 좋아하신 분이 또 계셨다. 실력도 출중해 이 두 분은 종종 도서관 밖에 앉아 바둑을 두셨고 나도 가끔 관전을 할 수 있었다. 교수님의 기력이 약간 나아 보였으나 항상 이기시는 것도 아니어 두 분은 연구와 유학 공부라는 본연의 임무도 잊은 채 도서관 안이 아니라 밖에서 여러 날 늦은 밤까지 시간을 보내시던 모습이 기억난다.
허나 바둑이란 것이 예상 외로 자존심을 자극한다. 한 번은 내가 이 교수님과 바둑을 두게 되었다. 나야 기력이 훨씬 쳐졌지만 바둑을 너무 좋아하셨던 교수님은 나라도 붙들고 두기를 원하셨다. 그런데 치수 결정에 이견이 있었다. 그 당시 나보다 거의 스무 살 정도는 위였던 교수님의 말씀을 내가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다른 경우라면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 치수를 정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양보할 수 없었다. 네 점을 놓으라는 교수님의 요구에 죽어도 세 점을 넘길 수 없다는 나의 주장이 서로 한 치의 후퇴도 없이 팽팽하게 맞섰다. 세 점이 아니면 교수님과 바둑 둘 생각이 없다는 말씀을 드리고 내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나의 이러한 행동에 그때 마침 주위에 있던 대학원 선배님 한 분이 난감한 표정으로 쳐다보시던 생각이 난다. 그런데 그 교수님이 얼마나 바둑이 좋으셨던지 떠나는 나의 팔을 잡으시며 그냥 세 점만 놓고 두자고 말씀하셨다. 한참 어린 학생의 불손함을 용서하시면서 말이다.
한 번은 한국 현대 바둑의 개척자인 조남철 대국수가 미국에 바둑 보급 차 보스턴을 방문하셨다. 내가 소개를 받아 조 국수님의 통역을 좀 도와드리게 되었다. 조 국수님의 일정에는 지도대국도 포함되어 있었다. 나에게도 대국의 기회를 주셨는데 그때 내가 왜 사양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법대 연구 교수님과는 한 판 두게 되었다. 그런데 교수님과 조 국수님도 서로 치수를 정하는 것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시는 게 아닌가. 조 국수님은 세 점을 놓으라 주문했지만 교수님은 절대로 두 점이어야 한다고 했다. 조 국수님은 한국서 자신에게 두 점을 놓으려면 아마추어기전 우승자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하셨다. 그러자 교수님은 당신도 그 정도 실력이 된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당시 조 국수님 연배가 교수님보다 한 스물 정도 위였으니 이번에는 교수님이 무례한 행동을 보이는 게 아닌가 생각되었는데 역시 이번에도 어른이 참았다. 조 국수님이 두 점 바둑을 허락하셨다. 바둑의 진행은 전체적으로 교수님이 우세한 국면을 유지하는 듯 했는데 종반에 역전을 당했다. 교수님은 못내 아쉬워했다. 그러나 사실 고수와의 접바둑이 원래 종종 그렇게 끝나기에 아쉬워 하셨을 만큼의 상황은 아니었던 게 좀 더 정확한 형세 판단이었을 것이다.
요즈음 가끔 한 번씩 바둑을 두는 기회가 있다. 그런데 옛날과 달리 수를 읽는데 정신 집중이 잘 안 됨을 느낀다. 나이를 탓하기에는 아직 많이 이르기에 생활의 분주함을 핑계로 댄다. 별 것 아닌 듯 하지만 바둑 두는 사람들 자신의 바둑에 대한 자존심이 대단할 수 있다. 그냥 한 판 져 줄 수도 있고 이겨도 아무것도 아니라 여길 수 있지만 덜컥 수 하나에 좋은 바둑을 그르친다든지 하면 후회의 여파가 오래 가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여파는 인생을 얼마나 살았는지 상관없이 찾아오는 것 같다. 하기야 삶 가운데에서도 가끔 덜컥 수를 두지만 말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